"6월 모평서 영어 1등급 급감"…'킬러' 없애니 영어가 변수로 [2025 대입 혼란]
" ‘꾸준히 하면 안정적인 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공교육 교사들의 성실한 노력을 짓밟아 버리는 난이도 아닙니까? "
지난 4일 치러진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 직후, 자신을 ‘24년째 영어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라고 밝힌 한 글쓴이가 평가원 게시판에 남긴 글이다. 어려운 시험에 항의하는 그의 글을 뒷받침하듯, 공교육과 입시업계는 절대평가로 치러진 영어의 1등급 비율이 1~2%대로 추정된다는 분석을 잇따라 내놨다.
사교육비 경감 등을 목적으로 2018학년도부터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뀐 수능 영어는 원점수 90점만 넘기면 1등급을 받는다. 2023학년도 수능까지 5~12% 내에서 등락을 오가던 1등급 비율은 킬러문항 배제 원칙이 적용된 지난해 수능에서 4%대로 대폭 줄었다. 6월 모평은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본 수능의 난이도 조절을 위해 시행하는 평가다. 본 수능에서도 영어가 어렵게 나올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면서 수험생 불안이 커지고 있다.
영어 1등급 1~2%, “평가원 난이도 조절 실패”
서울시교육청에 등록된 교과연구회인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연구회)는 13일 영어 1등급 비율이 1.3%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종로학원 역시 시험 당일 등급컷 추정 점수 발표에서 영어 1등급의 비율을 ‘1~2%대’로 예측했다. 그나마 높은 추정치도 4%대(메가스터디)에 그쳤다.
교육계에서는 N수생 증가, 킬러문항 배제 방침 등으로 수능 난도가 높아지며 상대적으로 쉬웠던 영어도 덩달아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수능 영어 1등급자는 4.71%로, 절대평가로 치러진 일곱번의 수능 중 가장 적었다. 지난해 12월 수능 성적 발표 브리핑에서 오승걸 평가원장은 어려웠던 난도에 대해 “6월과 9월 모의평가에 응시하지 않았던 N수생들이 참여했을 때 변별력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를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또 “기존 사교육을 통해 킬러문항 풀이 기술을 익힌 학생들에 대한 고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기조가 6월 모평에서도 이어졌다. 6월 모평에서 졸업생 등 ‘N수생’ 응시자는 8만8698명(18.7%)으로 2011학년도 시험(8만7060명) 이후 가장 많았다. 이만기 유웨이 부사장은 “평가원이 의대 증원으로 인한 반수생 증가를 너무 의식한 탓에 모든 과목을 다 어렵게 출제한 것 같다”고 했다. 재학생에 비해 수능 경험이 많은 졸업생의 학력이 대체로 높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문제를 어렵게 출제했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선지가 킬러 됐다”…영어 사교육도 들썩
국어, 수학뿐만 아니라 영어까지 어려워지며 사교육 업체들은 영어 사교육 홍보에 나서고 있다. 올해 한 대형 입시업체는 홈페이지에 ‘수험생들의 오해’라는 문구를 내걸고 “1등급=90점 쉬워 보이나요? 절대평가 영어 절대로 만만하지 않습니다”라는 별도 페이지를 만들었다. 킬러문항 배제 이후 나타난 새로운 유형에 대한 분석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 다른 대형업체 영어 강사도 강의 소개 글에 ‘킬러문항 배제에 맞춘 개정에 맞춘 문제 교재’를 강조했다.
종로학원의 한 영어 강사는 “평소에는 영어를 잘 못하던 친구들이 주로 상담을 했다면 이번에는 영어를 잘하다가 망친 애들이 상담하러 많이 왔다”며 “영어 공부 시간을 더 늘리겠다는 학생들이 제법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의 한 영어 강사는 “킬러문항을 없앤다고 한순간부터 지문이 아닌 선지가 킬러가 됐다”며 “매력적인 오답 선지나 일반적인 패턴을 벗어난 정답 번호 등으로 문제 풀기가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학생들의 ‘영어 학습량 부진’에 따른 체감 난도 상승을 지목하기도 한다. 고3 대상 영어 단과학원의 한 강사는 “10년 전 대학 가던 애들과 비교하면 영어 공부량이 절반도 안 된다”며 “절대평가라 ‘90점은 나오겠지, 80점은 나오겠지’ 인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영어 때문에 수능 최저학력 미충족자 늘 수도”
수능을 5개월여 앞둔 수험생들의 불안감은 더 커질 전망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능 최저학력기준 미충족자가 늘어날 수도 있다”며 “영어도 상대평가에 준하는 부담감이 발생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전 입학관리본부 전임대우연구조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절대평가라는 시험 체제보다는 평가원이 영어 시험의 1등급 비율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실제 성적이 나와봐야 알 수 있지만 킬러문항 배제 이후 수능 출제진 그룹들이 바뀌면서 아직 안정적인 출제 경향을 못 만들어 내고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이가람·서지원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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