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친화적 기업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유연한 근로시간”

박상은 2024. 6. 17.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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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 현장을 가다] ① 독일 사회의 ‘일과 삶의 균형’
비도 파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일(현지시간) 본사 사무실에서 워라밸 제도를 설명하는 모습이다. 독일 공동취재단


“누구나 일하면서 육아, 가족돌봄, 공부 등을 병행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근로자가 원하는 근로시간을 제공하는 건 매우 중요하죠.”

독일 뉘른베르크 본사에서 지난 6일(현지시간) 만난 제조 기업 ‘파트’의 비도 최고경영자(CEO)는 파트의 근무 여건 등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제도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회사의 슬로건을 ‘인간 중심 기업’이라고 소개한 그는 긍정적이고 즐거운 회사 생활이 가정은 물론 사회를 평안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1989년 설립된 파트는 직원 평균 연령이 39세인 ‘젊은 기업’이다. 독일 뉘른베르크 본사의 321명을 포함해 모두 469명이 근무한다. 본사에선 74명(24%)이 시간제 근로를 하고, 이 중 자녀가 있는 여성 직원은 주당 20~32시간 일한다. 시간제라고 말하지만 주 40시간 정규직과 같은 근로조건에서 시간만 줄인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단시간 일자리와는 차이가 있다.

독일 뉘른베르크에 있는 기계 부품 제조 기업 ‘파트’ 본사 전경. 독일 공동취재단


파트는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제조업 특성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 육아휴직 등 직원이 원하는 근무 환경을 최대한 지원한다. 동시에 정기적인 업무량 모니터링과 스트레스 설문, 마음 회복 프로그램 등으로 직원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핀다. 육아휴직으로 회사를 떠난 직원은 부서 행사에 꾸준히 초대해 연결을 유지한다.

파트의 인사 담당자는 “남성도 거의 다 육아휴직을 쓴다”며 “4~5개월 육아휴직을 쓰다가 시간제로 전환하는 사례도 있는 등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가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직원 빈자리로 인한 업무 공백을 메꾸는 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비도 CEO는 “생산직과 달리 사무직은 임시직을 구하기 어려워 동료나 다른 부서와 업무를 배분한다”며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황에 따른 개별적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원의 워라밸이 회사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절대적”이라고 답했다.

독일에선 파트처럼 ‘유연한 근무체계’를 도입한 기업이 많다. 독일은 2022년 기준 연평균 근로시간이 1295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가장 짧다.

독일 정부는 2001년 근로시간 단축, 근로시간대 변경 신청 권한 등을 법으로 규정했다. 2019년에는 ‘한시적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도입해 노사가 합의한 단축 기간이 끝나면 본래 근로계약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용자가 거부할 경우 제재 규정은 없으나 노동법원에 제소가 가능하다. 법정 휴가는 24일이지만 대다수 기업이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등을 운영하며 연간 30일 이상 휴가를 제공한다. 근로자의 ‘시간 주권’을 존중하는 법·제도와 기업의 노력이 더해져 2000년 1.38을 기록한 독일의 출산율은 2021년 1.58까지 회복됐다.

지난 7일 독일의 정보기술 기업 ‘마이본볼프’ 뮌헨 사무실에서 사내 행사인 ‘개발자들의 날’ 파티에 참여한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마이본볼프는 남성 직원 29%, 여성 직원 46%가 주 40시간보다 적게 일한다. 독일 공동취재단


독일 정보기술 기업 ‘마이본볼프’ 역시 자유로운 근무체계가 기업 성장을 이끄는 사례다. 소프트웨어 컨설팅 회사인 이곳은 직원 수가 1000명에 육박하지만 절반 이상이 주 2일만 사무실로 출근할 정도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돼 있다. 근무시간은 직접 기재하고, 휴가 역시 팀원과 조율해 자유롭게 사용한다. 업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근로자가 주체적으로 근로시간을 조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현행법상 연장근로는 하루 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직원 4명 중 1명은 하루 8시간보다 적게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다. 자녀가 있는 남성은 50% 정도, 자녀가 있는 여성 70%가량이 시간제로 일한다. 시간제에서 전일제로, 전일제에서 시간제로의 전환도 기간·횟수 제한이 없다.

지난 7일 독일 뮌헨 지점에서 만난 마이본볼프의 홍보 담당자는 “(이 회사에서) 새롭게 만든 워라밸 제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아주 넓은 유연함과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내 워라밸 기업 6위, 14년 연속 ‘일하기 좋은 회사’ 선정 등의 평가는 젊은 인재를 마이본볼프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 회사는 성과와 자유가 결합된 근무 방식을 토대로 연평균 20% 이상의 수익을 기록 중이다. 워라밸 지원 비용보다 인재를 놓쳐서 발생하는 손실이 더 크다는 게 회사 경영진의 시각이다.

홀거 볼프 공동창업자는 “가족친화적 기업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유연한 시간 근무”라며 “가족적 요소와 직업 요소가 조화를 이뤄야 근로자들이 재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뉘른베르크·뮌헨=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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