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혁명 성지', 시진핑 탈빈곤 시범구로…징강산 '홍색경제' 현장[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신경진 2024. 6. 1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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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지난달 23일 중국 장시(江西)성 징강산(井岡山)시의 중심 쇼핑가인 톈제(天街). 황금빛 마오쩌둥(毛澤東) 좌상이 눈에 띄는 매장에 들어섰다. 1.83m 마오 동상에 무려 14만2080위안(약 2700만원)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사장인 궈구이린(郭桂麟)은 “등신상은 기업체 대표들이 선호한다”라며 “코로나19 이전만큼 손님이 많지 않지만 마오 흉상의 인기는 여전하다”라고 전했다.
지난달 23일 찾아간 중국 장시성 징강산시 중심 교차로에 세워진 대형 마오쩌둥 동상 앞으로 “작은 불씨가 초원을 불태운다(星星之火 可以燎原)” 구호가 조명으로 빛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지난달 23일 중국 장시(江西)성 징강산(井岡山)시의 중심 쇼핑가인 톈제(天街)의 마오쩌둥(毛澤東) 동상 전문 매장에 각종 크기와 모양의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 신경진 특파원
중국 외교부의 초청으로 뉴욕타임스 등 외신 특파원과 함께 찾은 징강산은 마오와 홍색(紅色)으로 덮여 있었다. 1927년 1차 국공합작 결렬 후 중국공산당이 주도했던 폭동에 실패하자 마오는 징강산에서 홍군을 조직해 게릴라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시 중심의 대형 마오쩌둥 동상 앞에는 '작은 불씨가 초원을 불태운다(星星之火 可以燎原)'란 구호가 선명했다. 남산공원 정상에 세워진 붉은 횃불 조형물은 이곳이 중국공산당의 '혁명 성지'임을 실감케 했다.
지난달 24일 징강산혁명박물관에 마오쩌둥의 “작은 불씨가 초원을 불태운다” 저서가 전시 중이다. “마오는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기본 사상을 제시해, 중국 혁명을 승리로 이끈 ‘징강산의 길’을 보여줬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신경진 특파원
지난 한 해 189만 명이 찾았다는 징강산혁명박물관에서 마오의 저서『작은 불씨가 초원을 불태운다 』를 볼 수 있었다. “마오는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기본 사상을 제시해, 중국 혁명을 승리로 이끈 ‘징강산의 길’을 보여줬다”라는 설명이 보였다.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및 북반구 저위도의 개발도상국)에 주력하는 최근 중국 외교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현지에서 만난 20대 현지 청년에게 마오에 대해 묻자 “영원한 스승”이라고 답했다. “교과서에서 마오의 어록과 시구를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찾아간 징강산의 대표적인 빈곤마을 선산(神山)촌의 펑둥롄(彭冬連, 사진 앞) 촌민의 거실에 마오쩌둥의 초상화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다. 신경진 특파원
마오는 곳곳에 살아있었다. 대표적인 빈곤마을이던 선산(神山)촌의 80대 펑둥롄(彭冬連) 촌민의 거실에는 마오 초상화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초상화와 함께 걸려 있었다. 마당에는 '2016년 2월 2일 시 총서기가 여기에서 찹쌀떡을 쳤다'고 새겨진 비석이 사진과 함께 세워져 있었다. 펑전양(彭展陽) 촌 당서기는 “지난해 선산촌 관광객이 20만명을 넘어섰다”며 하루 500명 규모라고 했다. 펑 서기도 2016년 시 주석의 방문 이후 고향이 홍색 관광지로 바뀌면서 소득이 늘자 도시에서 농민공 생활을 접고 귀향한 케이스다. 마오의 징강산이 혁명의 요람이었다면 시 주석은 징강산을 빈곤 탈출의 시범구로 바꾸고 있다.
지난달 23일 징강산의 대표적인 빈곤마을이던 선산(神山)촌의 펑둥롄(彭冬連) 촌민 마당에 “2016년 2월 2일 시 총서기가 여기에서 찹쌀떡을 쳤다(習總書記在這打糍粑)”는 비석과 당시 사진 안내가 놓여 있다. 신경진 특파원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탈빈곤 7년 농민 월 소득 25만원


빈곤과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선산촌 마을회관 알림판에는 “환빈(還貧) 방지 감시 대상” 포스터가 붙어 있다. 주택·교육·의료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은 시 향촌진흥국에 신고하라는 안내다. 2023년 연평균 소득 7800위안(148만원)을 빈곤 기준으로 규정했다. 마을 집집마다 빈곤탈출, 불안정, 가난위험, 돌발성 빈곤 가구 네 부류로 구분한 표지가 붙어 있었다. 빈곤호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다.

후난(湖南)성과 경계한 징강산시는 서울시 2.4배 면적에 인구 19만 명인 최말단 향급(鄕級) 행정구역이다. 지난 10년간 시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확인한 소득 수준은 초라했다. 시 주석이 집권한 2012년 농민 1인당 연 소득은 6163위안(117만원), 도시 주민은 1만9462위안(369만원)에 불과했다. 농민 월 소득은 10만원에도 못 미쳤다. 가장 최신 자료인 2022년 연간 도시민 4만4509위안, 농민 1만5974위안으로 2.3~2.6배 늘었다. 그래도 월 소득은 도시 70만원, 농민 25만원 수준이다. 도농 격차는 2.8배 수준이다.

지난달 24일 랴오둥성(廖東生) 징강산시 시장이 외신 특파원단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신경진 특파원

지난 1월 31일 개최된 인민대표대회(시의회)에서 랴오둥성(廖東生) 징강산시 시장은 2023년 성장률을 4.5%로 발표했다. 목표치 8.5% 달성에 실패했다. 중국 전국 성장률 5.2%에도 못 미쳤다. 올해 성장률 목표는 6%. 관광객 수를 10% 이상 늘리고, 홍색 교육 훈련생 목표 48만명을 제시했다.

24일 만난 랴오 시장은 “해마다 징강산을 찾는 국장급 이상 고위직 간부만 2000명 선”이라며 “혁명의 초심을 새기는 홍색 교육 훈련과 천혜의 녹색 환경을 결합한 홍녹(紅綠) 융합이 발전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아프리카 잠비아 대통령이 징강산을 방문했다며 “홍색 관광이 전체 산업의 70%를 차지한다”고 했다. 각종 마오 굿즈 매출과 홍색 관광 소득을 앞세운 ‘레드노믹스(홍색경제)’ 전략인 셈이다.

중국 장시성 징강산시 진입로에 세워진 대형 조형물. 붉은 깃발을 형상화 했다. 신경진 특파원


‘징강산 모델’ 공동부유로 진화


이론화 작업이 한창인 ‘징강산 모델’은 시 주석의 소득 분배 전략인 공동부유로 연결된다. 장진(張瑾) 장시 재경대학 교수는 논문에서 징강산 모델을 “홍색 학습, 농촌 펜션, 홍색 명승지를 결합한 홍색 관광으로 향촌진흥을 돕는 모델”이라고 정의했다. “옛 혁명 근거지와 같은 저개발 지역에서 향촌진흥을 추진하고 공동부유를 실현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결론지었다. 지난 세기 마오쩌둥을 시 주석이 공동부유로 계승한다는 취지다.

징강산은 마오의 첫 번째 혁명 근거지였다. 1927년 8월 1일 중공은 장시성 난창(南昌)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키며 독자적인 군사투쟁을 시작했다. 오는 2027년 100주년을 맞는 인민해방군의 창건기념일이 난창봉기에서 유래했다.

중국 장시성 징강산혁명박물관에 전시 중인 마오쩌둥의 16자 유격전 전술. “적이 진격하면 도망친다. 적이 멈추면 교란한다. 적이 피로하면 공격한다. 적이 퇴각하면 추격한다(敵進我退 敵駐我擾 敵疲我打 敵退我追)”는 내용이다. 신경진 특파원

마오는 1934년 10월 대장정을 시작할 때까지 징강산 일대에서 지주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에게 나눠주는 ‘토지혁명’을 전개했다. 이한페이(易晗菲) 장시간부학원 강사는 “마오쩌둥의 신화가 시작된 징강산이 지금은 중공 간부 교육의 필수 순례지가 됐다”고 말했다.

빈곤탈출에서 공동부유로 진화 중인 징강산 모델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윤종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징강산 주민 소득이 지난 10년간 많이 증가했지만, 도농 격차는 여전하고, 언제라도 다시 빈곤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며 “징강산은 그나마 마오의 혁명 유산이라는 ‘행운’으로 관광객과 당 간부가 찾지만 대부분의 낙후 지역에서 마오와 홍색을 내세운 징강산 모델은 한계를 갖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징강산=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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