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시선] 뒤숭숭한 해병대 군심(軍心), 무한정 방치할 것인가
해병대 일부 예비역들은 지난 15일 대법원-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주변을 행진하며 '채 상병 순직 사건' 진상 규명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명예회복을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2월 해병대 2사단이 있는 경기도 김포에서 출발해 내년 1월에 해병대 1사단이 있는 경북 포항까지 700km를 행군할 계획이다.
지난 15일은 '제1연평해전' 기념일이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1999년 6월 15일 북한군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도발하자 우리 해군이 격퇴하고 승전한 날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과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전 등 북한의 서해 도발이 잇따르자 2011년 6월 15일 정부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를 창설했다. 합참 직속 사령부이지만 사실상 최초의 육·해·공군 합동부대이고, 경기도 화성의 해병대사령부 건물에 같이 입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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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채 상병 순직을 정쟁화
해병 지휘부 재판·조사 불려다녀
경찰·공수처는 속히 결론 내놓길
」
북한은 최근 엽기적인 '오물 풍선'을 수차례 살포해 불쾌감과 불안감을 자극하고, 남·남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맞서 윤석열 정부는 2018년 9월 문재인-김정은 2차 정상회담에서 서명한 9·19 군사합의의 전체 효력을 정지시키고,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도발에는 한 치 양보 없이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북한이 서해에서 GPS 교란 공격을 계속해 자칫 NLL 인근에서 우리 어선들이 방향을 잃고 월선하면 북한이 이를 구실로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데 위태로운 NLL 일대 방어를 책임진 서방사 사령관이 누구인가. 바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겸직하고 있다.
김 사령관은 채 상병 사건으로 군복을 입은 채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신세다. 지난 2월에는 박 전 수사단장 항명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법정에 출두했고, 5월 초엔 공수처 조사를 받았다. 정종범 해병대 2사단장도 대북 경계태세 유지를 이유로 법정에 증인으로 나가지 못하자 재판 2회 불출석에 따른 300만원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남북의 일촉즉발 긴장 상황에서 해병대 고위 지휘관들이 모든 정신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지난해 7월 경북 예천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중에 순직한 채 상병 사건이 12개월이 지나도록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다. 이 와중에 100만명을 넘는 해병대 예비역들이 정치적 진영에 따라 분열·갈등 양상을 보이고, 해병대 자원입대 모집 열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귀신 잡는 해병', '무적 해병'을 자부해오던 해병대 안팎에서 사기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예비역 해병들은 "해병대 정상화를 위해 군 수사당국과 공수처·경찰은 수사 결과를 신속히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한 이상훈 해병대전우회 총재는 "정치와 군사를 분리해 처리하고 해병대 군심(軍心)을 조속히 안정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다른 전직 해병대 사령관은 "채 상병의 순직은 안타까운 사고"라면서 "정치 쟁점으로 확대재생산 되면서 험지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장병들의 헌신조차 폄훼돼 서글프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도발하면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사건 관련자 수사와 해병대 지휘 체계를 분리하자"고 제안했다. 지휘부 인사 쇄신이 필요하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1주기를 앞두고 공개한 편지에서 "아들 장례 기간에 국민께서 함께 위로해주시고, 윤 대통령과 국가에서 최대한 예우해 주신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 말씀 올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경찰 수사를 언급하면서 "한 점 의혹 없이 빨리 경찰 수사가 종결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국방부 장관 등 관계 당국에 박 전 수사단장의 명예 회복과 선처를 부탁했다. 이어 "장마철을 앞두고 정부가 약속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해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주고, 아들이 좋아했던 해병대로 거듭나길 기원한다"고 했다. 편지 말미에 "1주기 전에 경찰 수사가 종결되고 아들이 희생된 원인과 진실이 꼭 밝혀져 공방이 마무리되고 이후에는 아들만 추모하며 여생을 보내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공수처 수사와 특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공수처 등 수사가 납득 안 되면 (제가) 먼저 특검하자고 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수처 수사도 끝나기 전에 특검하자는 야당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경찰과 공수처는 채 상병 유족의 바람처럼 최대한 신속히 수사 결론을 제시해야 한다. 안보는 위기 상황인데 정쟁에 휘말려 골병들고 뒤숭숭한 해병대의 비정상 상황을 무한정 방치해서야 되겠나.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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