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베이징 이자성 동상은 왜 철거됐나
중국 베이징 도심에서 팔달령(八達嶺) 만리장성이나 명십삼릉(明十三陵)으로 가려면 창핑(昌平)구를 지나게 되는데 이때 꼭 보게 되는 청동 기마상이 있다. 1994년 만들어진 높이 4m, 무게 6t의 이자성(李自成) 동상이 그것이다. 이자성은 명을 무너뜨린 반란군의 수장으로 동상은 이자성이 베이징으로 진군할 때의 모습을 담았다. 이자성은 순(順)나라를 세웠지만, 베이징 통치 40여 일 만에 명과 청의 연합군에 패해 단명했다.
베이징의 자금성 뒤 징산(景山)공원에 가면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목을 맸다는 나무가 마치 전설처럼 거론되기도 한다. 명 입장에서 이자성은 천하의 역적이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달랐다. 이자성이 농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며 긍정 평가했다. 농민 반란을 찬양하는 민중사관에 따른 것이다. 마오는 모든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造反有理)는 말도 하지 않았나.
마오는 장제스의 국민당을 밀어내고 베이징에 입성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자성처럼 되지 말자”는 다짐도 했다. 두 가지 함의가 있다. 이자성 부대가 베이징 점령 때 저지른 만행을 되풀이해선 안 되고 또 이자성 정권처럼 단명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자성은 중국 공산당 정권에서 농민 출신의 영웅이자 한족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창핑구의 동상도 그런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한데 30년 자리를 지키던 동상이 지난달 말 조용히 철거됐다. 동상은 이자성의 고향인 산시(陝西)성 상난(商南)현의 틈왕채(闖王寨) 관광지구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자성의 별칭은 틈왕(闖王)이다. 말이 문 사이를 박차고 나가는 것과 같이 용맹하다는 뜻이 있다. 한데 이번 동상의 이전을 두고 중국 일각에서 묘한 소리가 나온다. 민초의 반란으로 정권이 흔들리는 걸 우려한 조치가 아니냐는 것이다.
1606년 태어난 이자성은 10대 때 부모를 잃고 20대 초반에 호구지책을 위해 역졸(驛卒)이 됐다. 한데 숭정제 때 재정 악화로 역참을 줄이면서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이자성이 농민 반란에 뛰어들게 된 계기다. 중국은 현재 청년 실업률로 걱정이 태산 같다. 자연스럽게 실업자에서 반란군으로 변신해 정권 타도에 나섰던 이자성이 현대 청년의 롤모델이 될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자성 동상을 베이징에서 고향인 산시성으로 옮기는 진짜 이유가 아니냐는 억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라고 말한 베네데토 크로체의 말이 한층 더 새롭게 느껴지는 하루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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