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트로트 가수 옆 그 변호사
가수 김호중 씨의 음주 뺑소니 사건에서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지난달 21일 김 씨가 자신의 변호인인 조남관 전 검찰총장 직무대행과 강남경찰서를 함께 걸어 나오던 모습이었다. 막장 드라마 같던 운전자 바꿔치기와 허위 자백 요구, 사라진 블랙박스 메모리칩과 술 타기 수법은 취재 과정에서 자주 목격했던 터라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명품을 걸친 김 씨 옆에서 길을 안내하던 조 전 직무대행의 모습은 그런 익숙함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었다. 검찰 최고위직 출신 변호사가 법을 우습게 아는 유명 트로트 가수 경찰 조사에 동행한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수사 방해 행위라 느껴질 정도였다. 한 비(非)전관 출신 변호사는 “도대체 얼마를 받길래 경찰 조사까지 동행하느냐”고 했다. 조 변호사는 2020년 11월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정지가 됐을 때 대검 차장으로 총장 직무대행을 맡아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전 직무대행이 연예인 변호를 하던 시기, 현직 검찰총장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및 주가조작 의혹 수사와 관련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발언을 연일 쏟아냈다. 이원석 총장이 명품백 전담 수사팀 구성을 지시하고 약 2주 뒤인 지난달 13일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교체되는 물갈이 인사가 단행됐다. 인사가 메시지라면, 꽤 뚜렷한 시그널이었다. 이 총장은 “조율된 인사였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7초 침묵으로 불쾌감도 드러냈다. 하지만 국민의 호응이 예전 같지 않다.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반감은 “청탁금지법에 배우자 처벌 조항이 없다”며 관련 사건을 종결한 국민권익위의 결정 뒤 치솟고 있지만, 그 열기가 검찰 지지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당시 시민들이 광화문 거리를 메웠을 때와는 차이가 있다.
그건 한편으로 검찰이 자초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유명 가수의 경찰 조사까지 동행한 조남관 변호사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떠올랐다. 다시라는 표현을 쓴 건, 조 변호사 외에도 국민에게 실망을 준 전직 검사들이 적지 않아서다. 현직에선 검찰 개혁을 앞세우다 퇴직 뒤엔 다단계 수사 경력 등을 활용해 수십억 원 매출을 올린 한 전관 변호사도,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법무부 장관직을 내려놓은 당일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수락했다는 전직 특수부 검사도, 그 누구보다 자신과 주변인에게 엄격한 대통령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던 전 검찰총장도 모두 이 총장의 선·후배 동료 아니었던가.
야당은 그런 속사정을 아는지 특검법을 비롯해 검찰 존재를 부정하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에 앞장서는 의원 대부분도 검찰 출신이다. 묵묵히 일하는 일선 검사들에겐 송구하나, 검찰의 위기는 검찰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박태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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