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상 모인 평화회의, 그 시각 윤 대통령은 귀국길
[오태규 기자]
▲ 2024년 6월 15일, 스위스 오브뷔르겐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에서 참가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AP=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투르크메니스탄(10~11일)-카자흐스탄(11~13일)-우즈베키스탄(13~15일)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15일, 스위스의 중부 휴양지 루체른의 외곽 뷔르겐슈톡 리조트에 세계 92개국의 정상과 각료, 8개의 국제기구 대표가 모였습니다. 이곳에서 16일까지 이틀간 열리는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회의에는 13~15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7개국 정상들이 그대로 자리를 수평 이동했습니다. 미국만 조 바이든 대통령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으로 대표를 바꿨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불참했지만, 브릭스(BRICS) 진영에서도 인도, 브라질, 남아공 등이 참석했습니다. 동남아시아와 남미에서도 많은 국가가 대표를 보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참석했습니다.
잇달아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의와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는, 최근 진행된 국제 외교의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당연히 외신도 이 두 회의를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젤렌스키 적극 지원하면서도... 평화회의는 외면
그런데 두 회의에 모두 윤 대통령은 참석하지 못했거나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주요 7개국 정상회의는 초청국에 들어가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주최국 초청을 받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까지 외면한 것은 '글로벌 중추 국가(Global Pivot State)', 영어 약자로 GPS를 추구하는 나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글로벌 중추 국가는커녕 글로벌 주변 국가(Global Periphery State)라고 조롱을 받을 만한 짓입니다. 그러고 보니, 글로벌 주변 국가도 영어 약자로 GPS군요.
더구나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차에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한 바 있습니다. 그때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생즉사, 사즉생 정신'으로 연대하겠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견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탄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마다하지 않고 해오고 있습니다. 지뢰 제거 장비, 긴급 후송 차량 등 비살상용 군사 장비와 인도적 지원 등에 1억4000만 달러를 제공한 데 이어, 올해부터 2~3년간 총 23억 달러(3조700억 원) 규모의 지원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 준 우크라이나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 지원을 생각하면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라는 국제 외교의 주요 무대를 외면한 것은 일관성이 없는 행동입니다.
윤 대통령이 이런 국제사회의 주요 관심사를 외면하고, 중앙아시아 3개국을 순방에 나섰을까요. 몇 가지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2일 오후(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드라마극장에서 열린 '한-카자흐스탄 문화 공연'에 참석해 양국 예술인과 고려인의 공연을 관람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
ⓒ 연합뉴스 |
첫째, 소련의 붕괴와 함께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 국가는 다양한 측면에서 한국 외교에 중요한 지역입니다. 이들 국가는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끼어 있고 모두 남북한 동시 수교국입니다, 고려인으로 불리는 동포들도 50만 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 강한 나라 옆에 붙어 사는 나라로서 한국에 관해 동병상련의 심정을 가지고 있고, 경제적으로 발전했으나 침략 가능성이 적은 한국을 좋아합니다. 8000만 명 정도 되는 인구에 원유와 가스, 우라늄 등 광물이 풍부해 경제면에서 협력할 필요가 큽니다.
▲ 한국 역대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방문 기록(1994~2024). |
ⓒ 오태규/김지현 |
둘째, 중앙아시아 지역이 아무리 중요한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꼭 이번에 순방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만약 이탈리아가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을 초청했다면, 당연히 이번 중앙아시아 순방은 없었을 겁니다. 이탈리아 정상회의 초청 무산이 결정된 게 대략 4월 말이니, 윤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은 그 이후에 결정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주요 7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준비하다가 무산되니까 빨리 추진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 순방 일정이 급히 만든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글로벌 중추 국가' 외교
셋째, 결과적으로 주요 7개국 정상회의의 참석 무산의 대안으로 중앙아시아 일정을 잡다 보니까, 순방 마지막 날에 열린 스위스의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 참석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주요 7개국 정상이 회의가 끝난 뒤 했듯이, 윤 대통령도 마지막 순방지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스위스로 바로 날아갈 수 있었을 텐데 바로 귀국길을 선택했습니다. 일정이 길어지는 데 대한 부담 때문일 수도, 수많은 국가의 정상이 참석하는 회의에 참석한다 해도 돋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으로 한국은 말로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내세우지만, 행동으로는 그런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이유로 지난해 12월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이후 6개월 만에 재개한 윤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크게 빛이 바랬다고 봅니다. 윤 정권이 이번 순방에서 'K-실크로드 협력 구상'에 대한 지지를 얻고 북한 비핵화 공감대를 이루고, 자원·경제 외교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아무리 자랑해도, 그것은 국제사회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국내용 홍보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 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의 한 호텔에서 열린 고려인 동포·재외국민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고려인 동포 청소년 무용단의 문화 공연을 관람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저는, 윤 대통령이 홍범도 장군이 마지막 생을 보냈고 무덤이 있었던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3개국을 방문한다고 해서 육사의 홍 장군 동상 이전 소동으로 빚어진 그곳 고려인들의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져 줄 것인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적어도 홍 장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카자흐스탄 동포간담회에서는 그와 관련한 말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두 차례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홍 장군과 관련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를 연상할 만한 종류의 표현조차 없었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투르크·카자흐·우즈베크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16일 새벽 경기 성남 서울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