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어디서 어떻게 보내고 싶습니까

곽규현 2024. 6. 1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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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 세대의 소망이 이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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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현 기자]

 외삼촌의 별세를 알리는 모바일 부고장이다.
ⓒ 곽규현
 
며칠 전에 외사촌 누나로부터 둘째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모바일 부고장을 받았다. 외삼촌 건강이 좋지 않아 부산의 외사촌 누나 집에서 보살핌을 받고 계신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지난해 가을 어머니 기일에 고향을 방문했을 때, 외가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둘째 외삼촌 댁이 비어 있어서 외사촌 누나와의 전화 통화로 그간의 사정을 들었었다(관련 기사: 부모님 기일에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https://omn.kr/263g8 )

외삼촌을 추억하며 작별의 큰절을

만 94세로 연로하시고 노환이 깊어 별세하셨지만 외삼촌은 우리 가족들에게는 특별하셨던 분이라 더욱 가슴 아프고 슬프다.

고향마을 바로 이웃 동네에 사셨던 외삼촌은 생전에 어머니를 '당신의 누님'으로 살뜰하게 생각하셨다. 고향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그냥 가시지 않고 꼭 우리집(본가)에 들러서 어머니의 생전 안부를 챙기셨다. 젊어서 목수로 일하셨던 외삼촌께서는 인건비도 받지 않고 손수 우리집을 개조하시거나 수리해 주시기까지 하셔서 항상 고마웠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신경써 주셔서 그 감사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외삼촌이 이제 세상을 떠나셨다. 외사촌 누나 집으로 한번 찾아뵙는다는 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문상을 가게 됐으니 진작 찾아뵙지 못해서 후회스럽다. 형님과 함께 외삼촌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 술 한 잔을 따라 올리면서 마지막 작별의 큰절을 드렸다.

감사함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와 콧날이 시큰하고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외삼촌, 그동안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진작에 찾아뵙는다는 게 이렇게 늦게 왔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평온하시길 빕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외사촌 형제들과도 인사를 나누면서 외삼촌의 생전 모습을 추억했다. 외사촌들을 만나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집안의 경조사 때 가끔 만나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만나지 못했던 외사촌도 있다.

외삼촌은 생전에 우리에게 사촌 형제들끼리 서로 연락을 하면서 친하게 지내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바쁜 일상에 쫓겨 그러지를 못했다. 이것 또한 죄송할 따름이다. 외사촌 형제들과 어린 시절 외가에서의 추억담을 나누며 외삼촌과 함께한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그동안 서로 자주 연락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앞으로는 외삼촌의 바람대로 자주 연락하고 한 번씩 얼굴도 보자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저물어 가는 부모 세대 마지막이 평온하시기를 
 
 고모가 스티로폼 상자와 고무통으로 마당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가꾸고 있다.
ⓒ 곽규현
   
부모님 세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 어머니 4형제 중 맏이인 어머니를 시작으로 첫째 외삼촌, 둘째 외삼촌이 차례로 세 분 모두 90대에 접어들어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니 형제는 이제 89세인 막내 외삼촌 한 분이 남으셨다. 아버지 7형제도 막내 고모까지 모두 세상을 뜨시고, 90세인 셋째 고모 한 분이 생존해 계신다. 마지막으로 남아 계시는 두 분 모두 고령의 연세에도 아직은 건강에 큰 이상이 없으셔서 당신들의 본가에서 소일하시며 홀로 여생을 보내신다.

우리 형제들은 지난해 가을 어머니 기일에는 막내 외삼촌 댁을, 올해 봄 아버지 기일에는 셋째 고모 댁을, 부모님 묘소 성묘 후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두 분 모두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큰 어려움 없이 지내시는 듯했다.

막내 외삼촌은 소탈한 웃음을 지으시며 죽는 날까지 집에서 건강하게 지내다가 갔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내보이셨다. 셋째 고모도 귀가 좀 어둡기는 했으나 마당에 스티로폼 박스와 고무통으로 텃밭을 만들어 상추와 쪽파 같은 채소를 가꾸며 건강하게 지내고 계셨다. 이처럼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면 막내 외삼촌이나 셋째 고모는 평생 당신들이 살아오던 집에서 여생을 보내시다가 임종하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고령의 연세에는 언제 어떻게 건강이 나빠질지 모른다. 둘째 외삼촌도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댁에서 읍내에 있는 복지관에 다니며 즐겁게 지내셨다. 그러다가 기력이 떨어져 더 이상 거동이 어려워지자 외사촌 누나가 자기 집으로 모셔 간 것이다. 다행히도 둘째 외삼촌은 외사촌 누나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시다가 임종하셨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함께 노후를 보내시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말년에는 혼자 생활하시기 힘들어서 고향마을 근처에 사는 누나의 보살핌을 받으시다가 영면하셨다.

인생의 마지막 시기, 자신들이 살았던 집에서 건강하게 살다가 가족들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임종을 하고 싶은 것이 부모 세대의 마지막 소망일 것이다. 그 소망대로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는 것은 자식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행여나 건강이 나빠져서 자신의 집에서 지내지 못하게 되면 자식들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갈 수도 있다. 그것도 여의찮으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도 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에서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든 평온하게 지내시다가 가족들의 따뜻함 속에서 임종하시길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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