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미드에 나오는 우아한 주택살이는 없더라고요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김보민 기자]
주택살이 2년째에 접어든다.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에서 두 번째 여름을 맞이하니 주택살이의 좋은 점과 어려움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선명해진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아파트 생활만 했다. 아스팔트 위만 걷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까지 이동하고, 집에 문제가 있으면 관리실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이 삶이 엄청나게 편리하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느낄 여지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파트살이를 했으니 단순하고 기본적인, 남들도 살아가는 특별한 것 없는 거주 공간이 아파트였다.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이사를 하며 렌트할 집을 구할 때 1순위 고려 대상이 있었다. 바로 '주택'이어야 했다. 땅덩이가 넓은 미국으로, 그것도 도시가 아닌 외곽으로 이사 하는 마당이니 꼭 한번 주택살이를 해보고 싶었다. 미드의 한 장면처럼 커다란 개를 키우고, 뒤뜰에서 밤이면 모닥불을 피우고, 화단에 꽃을 심고 텃밭을 가꾸는 꿈을 꿨다. 주택살이가 얼마나 고단한지 알지 못했기에 가질 수 있었던 꿈이었다.
엄마도 주택은 처음이란다
넓은 앞뜰과 뒤뜰이 있고, 집 앞 도로를 건너면 호숫가에 닿을 수 있는 작은 주택을 빌려 2022년 겨울부터 살기 시작했다. 주변에 이웃이 거의 없어 낮에도 고요하기 그지없다. 주변에 불빛이 거의 없어 밤마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과 커다란 보름달을 누릴 수 있다. 꿈과 희망이 가득했던 주택살이의 로망은 겨울 추위를 만나며 와장창 깨졌다.
주택의 겨울은 아파트의 겨울과 다르게 말 그대로 추웠다. 특히나 공기를 데우는 미국식 난방 시스템은 극복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온돌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 차디찬 바닥을 디디는 일은 맨발로 흙길을 걷는 것만큼 어려웠다.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벽마다 단열재가 추가되었다고 하나 벽에서는 언제나 찬바람이 새어 나와 냉장고 문을 열어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눈이 오는 날은 치우느라 온종일 중노동을 해야했다.
▲ 지난 겨울, 아이들은 온종일 눈밭에서 노느라 땀을 흘렸고, 나와 남편은 눈을 치우느라 진땀 흘린 날. |
ⓒ 김보민 |
지하실에 보관하는 여행 가방을 가지러 내려가다 소스라치게 놀란 날도 있었다. 엄지손가락보다 약간 더 큰 어린 쥐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쓰레받기에 담아 집밖에 내다 버리며 우리 집에 인간 외 다른 생명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현기증이 났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 없는 나에게 동물이란 동물원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는데, 그들이 우리 집 어딘가를 드나들고 있다니.
첫 번째 여름은 즐거우며 고통스러웠다. 길고 긴 겨울이 끝나고 온종일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은 천국이었다. 앞마당은 오케스트라 대향연이 열린 듯 이름을 알 수 없는 들꽃들이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다. 비가 온 다음날은 들꽃들이 어여쁨을 뽐내기라도 하듯 한 뼘씩 더 자라 있었다. 내가 씨앗을 뿌린 것도 아니니 자연이 보내준 선물 같아 더없는 감동이었다.
▲ 꽃집에서 절화를 사와 화병에 꽂는 것보다 앞뜰에 핀 들꽃을 들여다보는 게 더 즐거운 날들이다. 피고지는 들꽃이 예뻐서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들여다보듯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
ⓒ 김보민 |
이뿐이면 다행이다. 난데없이 샤워실 구멍이 막혀 역류하고, 이층 어딘가에서 물이 새어 일 층 천장에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문제를 찾아 고쳐주는 해결사들은 부른다고 곧장 오지 않는다.
불편한 채로 몇 주를 지내기도 하고, 비싼 비용을 치르기도 해야 한다. 2년에 한 번 정화조를 관리해야 하고,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전기가 끊기기도 한다. 텃밭에 심어둔 상추는 동물들이 와서 따먹는 통에 정작 나는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동물들과 경쟁하며 상추를 수확한다.
렌트한 집이기에 집주인보다 관리 영역이 훨씬 적음에도 집을 둘러싼 노동은 상당하다. 그렇다면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나는 또다시 주택을 선택할까?
주택에 사는 일상은 흥미진진하다
왕초보 주택살이지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주택을 택할 것이다. 지금 사는 곳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이웃이 많지 않아 달리러 나가지 않는 한 하루 종일 사람 구경할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온 지구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봄이 오면 분주한 딱따구리와 허밍버드의 노래를 배경 음악 삼아 설거지를 한다. 올해는 앞마당 계단 아래에 토끼 가족이 입주를 해 거주 중인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에 마주치면 둘 다 머쓱하게 멈춰 서 있다 제 갈 길을 가는 재미가 있다. 마치 순서라도 정해놓은 듯 피었다 지고 또 피는 풀꽃의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살포시 자리를 잡고 고요히 꽃을 피우는 장면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호수에서 노는 게 즐거워 하루라도 빨리 뜨거운 여름이 찾아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
ⓒ 김보민 |
나는 해가 뜨기 직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을 좋아한다.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세상이 어둠에서 주황빛으로 변하는 순간을 고요하게 바라보는 것이 나의 명상이자, 하루를 아름답게 시작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새벽녘에 우리 집 뒤뜰을 배회하며 풀을 뜯어 먹는 사슴과 열 마리가 넘는 칠면조 대가족이 뒤뜰을 우아하게 거니는 모습은 생경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아름답다.
▲ 주말이면 아이들과 동네 농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돌아온다. 들판과 하늘이 마주하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
ⓒ 김보민 |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살다 보니 인간이 동∙식물과 조화롭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이 풍덩 뛰어들어 수영하는 호숫물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인간과 동물이 살아가는 건강한 지구를 위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일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
기후 위기, 탄소 배출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구입하는 방법을 찾고, 대형 마트 출입 횟수를 줄이고,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소비도 줄이고, 중고 물건을 얻어 쓰고,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을 나누기도 한다.
▲ 계단 아래에 사는 토끼 가족들은 뜰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풀을 뜯어 먹는다. 가끔 예상치 않은 순간 마주치는 경우가 있는데 서로 멀뚱멀뚱 서 있다 제 갈 길을 간다. |
ⓒ 김보민 |
혹시 모르겠다. 여름과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시 왔을 때, 옷을 서너 겹 껴입고 양말을 신고 털실내화를 주섬주섬 꺼내 신으면서, 쌓여 있는 눈을 땀 뻘뻘 흘려가며 치워야 할 때 고단한 주택살이를 아주 잠깐 후회할지도.
하지만 주택에 살면서 눈 뜨게 된 노동의 참맛과 자연의 아름다움, 나아가 더 없는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된 순간을 놓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알기에 자연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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