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방식으로 아버지를 '죽인' 딸의 기록

조유리 2024. 6. 1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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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가 상상하는 인생의 다양한 마지막

초고령화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노인 문제를 알기 쉽게 이해하고 생각해보기 위해 다양한 노년 관련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기자말>

[조유리 기자]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죽음을 준비하는 다양한 상황 설정

나의 죽음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고 준비한 적이 있는가? 물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여행 준비를 하듯 유쾌하거나 설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막막할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지인의 갑작스런 죽음을 한두 번 겪고 나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준비를 해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Dick Johnson is dead)>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딸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여러 상황을 제시하여 죽음을 미리 경험해보게 하고 이를 카메라에 담은 내용이다. 감독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7년 전 세상을 떠났고 정신과 의사로 일하다가 은퇴하게 된 아버지는 경증 치매를 앓으며 일상을 살고 있다.

이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카메라의 담는 여느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다양한 설정 투성이다. 아버지가 걸어가다가 넘어져 죽는다거나, 집 계단에서 떨어져 죽게 되는 상황을 아버지와 대역배우의 연기를 통해 연출해 내고, 아버지가 천국에 있다는 설정 하에 세트를 제작해 인위적인 촬영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아버지가 죽음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가공한 설정과 실제 생활이 교차하여 벌어지는 이 작품만의 특성 때문에 영화에서는 색다른 입체감이 느껴지고 신선함을 준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고찰해 보려고 영화를 찾아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약간 혼란을 느낄 수도 있다. 실제 아버지가 죽는 장면이 나왔다가 다시 살아난 아버지를 보니 그것이 연출이었음을 깨닫고, 이것이 극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영화를 한창 보는 중에서야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러나 영화의 독특한 구성과 개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질병과 나이 들어가는 과정, 죽음에 관심을 갖고 이를 카메라에 소상히 담으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딸 커스틴은 자신이 30년 동안 다큐멘터리 감독을 했지만 엄마의 건강했던 모습을 찍은 영상은 거의 없었다는 데 자책하고 안타까워하며 그런 아쉬움이 아버지를 촬영하게 된 이유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커스틴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천국 장면 안에서는 아버지의 평소 소원도 성취하도록 연출한다. 이런 딸의 요청에 일반인인 아버지 딕 존슨씨가 어색해하지도 않고 다양한 표정을 생생하게 연기하는 모습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질병도 죽음도 모두 생의 한 부분

한편,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버지 딕 존슨씨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인상적이다. 아니, 오히려 삶에 대한 태도라고 봐야 할까? 그는 신기할 정도로 담담하게 촬영의 모든 과정을 받아들이고 또 딸과의 대화에서 삶에 대한 단호함도 보여준다.

오랜 시간 살아온 집을 떠나야 하는 데에 미련이 많이 남지만 딸과 살기 위해서는 집을 처분하고 뉴욕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너와 함께 사는 것은 집을 바꿀 충분한 이유가 되지"라고 말하거나, 커스틴이 치매가 걸렸던 엄마가 요양원에 가기 싫어했던 기억을 상기하자 지독할 정도로 담담하게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 또 일어나고 있구나"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 삶을 포기하잖아요. 아버지는 어때요? 엄마와 같은 상태가 되어도 계속 살고 싶으실 것 같아요?"라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나는 사는 게 좋거든. 하지만 너에게 언젠가 나의 안락사는 허락해 줄게. 허허"라고 농담처럼 대답하는 모습에서 삶과 죽음을 행복하고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일관된 태도에 놀라게 된다. 사람들이 매우 흔하게 '늙으면 죽어야지' '치매 같은 병에 걸린다면 난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

30년간 10여 명의 환자를 돌본 경력자로서 딕 존슨씨를 돌보게 된 요양보호사는 "제 경험상, 질병에 놓인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삶은 훨씬 쉬워집니다. 상황을 부정한다고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특히 질병 상태와 사람도요.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태도야말로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막상 질병이 나에게 왔을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이 필요한 것이다. 무조건 '내가 아파서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어떻게 죽어갈 것인지, 죽기 전에 아프게 된다면 난 가족들에게 어떻게 도움받고 살아야 할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질병과 죽음에 대한 단단한 마음 근육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여러 번 돌려보는 죽음 시뮬레이션

영화의 마지막에는 딕 존슨씨의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일어나 추도사를 읽고 절친한 친구가 울먹이기도 한다. '드디어 딕 존슨씨가 사망한 걸까?'라고 궁금해하다 보면 어느새 장례식장 뒤편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며 그가 나타난다. 이 또한 딸인 커스틴이 아버지를 '죽인'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관객은 '또 속았네!'라며 실소를 머금게 된다.

시종일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아버지를 '죽인' 커스틴은 이런 기회가 실제 다가올 일에 대한 예측이 될 수 있고 또 그 일을 늦출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이 '늦춘다'는 것이 물리적인 부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언뜻 실제로 죽음을 많이 생각해볼수록 삶을 더 의미있게 생각하게 되어 실제로 생이 길어지거나 혹은 사는 동안 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매우 심도 있게 다룬, 그러면서도 독특한 형식을 통해 유쾌하게 죽음을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질병과 죽음을 준비해 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이 있다면 한 번쯤 영화를 보며 나만의 '죽음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플랫폼 alookso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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