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막자" 佛 시민 수십만 거리 시위…극좌파 연합은 내홍
조기 총선을 보름 앞둔 프랑스에서, 극우 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대규모 시위가 15일(현지시간) 진행됐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총선에서 압승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극우의 승리를 막길 원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 해산으로 실시되는 이번 조기 총선은 오는 30일과 내달 8일 각각 1차 투표와 결선 투표를 치른다.
로이터통신과 르몽드·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프랑스 내무부 발표를 인용해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25만4000명이 RN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시위는 파리·마르세유·낭트·리옹·릴 등에서 총 150회 이상 벌어졌다. 시위를 주도한 극좌 성향의 노동연맹인 CGT는 참석자가 전국 64만명, 파리 25만명이라고 주장했다.
“극우 정당 막자” 유권자 거리로
이날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학생·근로자 등 다양한 시민들이 시위에 동참했다. 프랑스 노동조합 대표인 소피 비네는 “참가자들은 국가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 속에 행진하고 있다”면서 “다가오는 총선에서 극우가 승리할 위험이 크고, 우리 모두 이 재난을 막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시위에 참여한 필립 노엘(45·교사)은 “극우 정부가 들어설 실제적 위기 앞에 놓였지만 좌파 정당이 모두 단결한다면 이 위기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기업 임원이라고 밝힌 로라 미쇼(31)는 “인종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정당에 투표하겠다는 사람이 50%나 된다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지지하진 않지만, 극우를 막기 위해 그의 당에 투표할 생각”이라고 했다. 집회는 대부분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지역에 따라 시위 참여자가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곳도 있었다.
2위 극좌파 연합, 내홍 휩싸여
이번 시위는 지난 9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RN가 압승한 가운데 마크롱 대통령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31.37%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은 RN은 오는 30일(1차투표)과 다음달 7일(결선투표) 치러질 조기 총선에서도 1위가 예상된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RN이 프랑스 하원 577석 가운데 과반(289석)에 가까운 270석을 얻을 것이란 결과도 나왔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의 여당 연합(3위, 18~20%)은 극좌파 성향 정당들의 연합인 신민중전선(NPF)보다도 지지율이 낮다. NPF는 지지율 25~28%로 2위다.
이번 시위를 계기로, 극우·극좌 2파전 양상이던 흐름이 여당연합 위주로 뒤집힐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02년 RN이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하고 결선 투표에 오르자, 프랑스 전역에서 약 150만 명이 시위에 나선 뒤 RN의 집권이 좌절된 적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NPF도 내분에 휩싸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NPF는 지난 13일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사회당·녹색당·공산당 등 좌파 4개 정당이 뭉쳐 출범했는데, 장뤼크 멜랑숑 LFI 대표가 하룻밤새 당내 온건파 인사들을 몰아내면서 다른 좌파 지도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멜랑숑 대표는 과거 자신의 입장에 반대했던 정치인들을 LFI 후보자 명단에서 제외하고, 아내를 폭행하는 등 가정 폭력 혐의로 기소된 적 있는 최측근 안드리앙 콰텐넨스는 명단에 올렸다. 콰텐넨스가 출마 예정인 도시 릴의 시장 마티네 오브리는 이에 반발해 경쟁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FT는 “멜랑숑의 행동이 좌파 공동 전선을 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프랑스와 올랑드 전 대통령은 NPF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해 관심을 끌었다. 올랑드 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의 전임자(2012~2017년 집권)다. 그는 출마를 선언하면서 “예외적 상황에선 예외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극우파의 위험이 분명해진 상황에 어떻게 무관심할 수 있겠냐”고 발언했다. 그가 당선될 경우, 프랑스에서 전직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된 두번째 사례가 된다.
한편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해산과 조기총선 결정으로 파리증시의 캑 콰란테(CAC40) 지수는 지난주 6% 넘게 급락하며 시차총액 1500억유로(약 222조원)가 증발했다. 제프리스의 유럽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모히트 쿠마는 “프랑스 조기총선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개혁 지연, 등급 강등, 유로존 해체 우려 증가까지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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