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정류장서 일어난 소수의 우아한 투쟁
[박순향]
▲ 서울외곽순환도로 갓길 양방향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고 있다. 2015.12.29 |
ⓒ 연합뉴스 |
고속도로에 버스정류장(이하 B/S)이 있다는 사실도, 그곳을 청소하는 노동자가 있다는 것도 많은 이가 모른다. 고속도로 요금소 수납원이었던 우리는, 2019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직접고용 투쟁'을 거쳐, 2020년 5월 한국도로공사에 직접 고용되며, 고속도로 졸음쉼터 및 B/S, 교량 밑 녹지대 청소 업무를 맡게 됐다.
그러나 업무에 안전 대책은 없었다. 100km 속도로 내달리는 차량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일. 너무 위험하다는 호소에 안전 관리자는 달려오는 차를 마주 보고 뒷걸음질로 비질하면, '차도 피하고, 안전도 지킬 수 있다'고 말해 모두를 분노케 했다.
그뿐 아니라, 업무도 늘어났다. "B/S에 화장실을 만들고 청소를 하랍니다. 어쩌죠?" 작년 수도권 지회 지회장의 보고. 조합원들이 못 하겠다 하니 사측은 업무 거부 징계를 말했다. 조합원을 보호하며 업무 범위의 확대와 일방적이고 부당한 지시를 막아내야 했다.
위험성 평가에서 돌파구를 찾다
그때 알게 된 것이 위험성 평가였다. 본사로 공문을 보냈다.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자, 노조가 전문기관을 섭외하겠다. 비용도 노조가 댈 테니 회사도 참여하라!
그러나 회사와 각 지사는 그동안 진행한 위험성 평가에 문제가 없다고 거부했다. 현장 조합원에겐 업무 거부로 경고장이 날아왔다. 노조는 조합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한편,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업무를 할 수 없으니 위험성 평가를 해 대책을 마련한 후 업무를 하겠다고 본사에 공문을 보냈다.
때마침 국정감사가 있어 이를 폭로했다. 도로공사 사장은 국정감사장에서 '국민의 안전도 중요하고 직원의 안전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5000명 조합원이 있는 교섭대표 노조에 비해 260명의 소수 노조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투쟁은 자신 있는 조직 아닌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투쟁한다는 게 방침이었다. 본사에 집회 신고를 하고 지사에선 조합원들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누적된 3차례 경고장은 국정감사장 폭로로 휴지 조각이 됐고 위험성 평가까지 모든 작업은 중지됐다(쫌 멋지지 않나요? ^^).
결국 그렇게 본사, 지사, 노조가 참여한 위험성 평가가 시작됐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지사 차원의 위험성 평가에선 '업무에 문제 없음'이라던 업무가, 노조 주관으로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가 실시한 위험성 평가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인력으로 청소 불가! 화장실 설치로 인해 B/S 정차 구간 및 무단 횡단 고객의 안전 문제 또한 심각하며, 화장실은 철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근거로 노조는 해당 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작업 중지를 하겠다는 공문을 본사로 보냈다. 곧바로 본사는 만나서 말하자고 했지만, 우리의 위험성 평가 결과는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노조도 단호했다. '위험성 평가 결과를 수용하지 않아도 된다, 언론을 통해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노동부도 찾아갈 것이다'라는 뜻을 아주 정중히 전했다.
소수지만 강력한 우리들의 작업중지
이후 해당 지사뿐 아니라 전국 30여 곳의 B/S 작업 중지를 조합원들에게 지침으로 내렸다. 그랬더니 사측은 잠깐 일하면 휴식이 보장되는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이라면서, 전국민주연합노조 조합원을 제외한 타 노조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노조 조합원들은 해당 업무를 거부하고 있다. 왜 노조가 한 곳에서 시범 실시한 위험성 평가의 결과로 전국에서 작업 중지를 단행했는지, 이 또한 투쟁이며, 우리의 안전할 권리라고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소통하면서 말이다. 안타깝지만 현재 우리 노조가 멈춘 해당 업무는 타 노조가 하고 있고, 함께 행동하고 업무중지한 곳은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 인터뷰 중인 박순향 지부장 |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순향님은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톨게이트지부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일터 6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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