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의 활약은 이순신 함대의 2차 출전부터
이순신 장군 해전 현장 탐사 대원들이 15일간 항해를 마친 후 쓴 항해기입니다. 1차 항해는 5월 22일부터 5월 28일까지 동방항로, 2차 항해는 6월 3일부터 6월 11일까지 서방항로로 15일간입니다. <기자말>
[오문수 기자]
▲ 율리안나호가 항해하던 중 바람이 좋아 돛을 활짝 폈다. |
ⓒ 오문수 |
이순신 해전 현장을 답사하기 위해 동쪽으로 항해한 율리안나호의 둘쨋날 항로는 전라좌수영 함대의 2차 해전 현장이다. 5월 23일 오전 6시 40분, 순풍을 받아 노량을 떠난 배가 메인세일을 올리고 한참 가니 사천해전 현장이 가까워졌다.
▲ 율리안나호를 타고 항해하던 중 '숭어들망'을 만났다. 숭어들망은 전통어로 방식이다. |
ⓒ 오문수 |
연안항로 주변에는 어민들이 설치해 놓은 전통 숭어잡이 방식인 '숭어들망' 그물이 보인다. '숭어들망'은 '망쟁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산 중턱 망루 등 높은 곳에서 숭어떼가 지나는 길목을 지키다 숭어떼가 그물에 들어오는 순간 신호를 보내면 그물을 들어 올려 숭어를 가둔다.
삼천포화력발전소 인근을 지날 때... 44년전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 율리안나호를 타고 삼천포화력발전소 인근을 지나던 중 44년전 기억이 상기됐다. |
ⓒ 오문수 |
삼천포화력발전소라는 걸 확인한 순간 44년전 경험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1980년 5월 18일 광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필자는 전남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생회 총무를 맡고 있었다.
계엄군이 광주시내에 들어오고 최루탄이 난무하던 때 길거리에서 만난 지도교수가 "학생회 간부가 왜 이러고 있나? 빨리 피하라!"는 말을 듣고 자취집에도 못 들르고 고향에 돌아와 있는데 경운기 부속을 사러 광주에 갔던 형님이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형님으로부터 "광주 난리났더라. 집에 있으면 너 잡혀 갈지도 모르니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피신해라"는 말을 듣고 삼천포화력발전소 건설 현장으로 갔다. 당시 둘째 형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형과 함께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밤에 숙소로 돌아와 TV를 켜면 계엄사령관 이희성이 "광주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며 연설하곤 했다. TV에서는 오락프로그램과 노래가 나오며 광주를 폭도의 도시로 매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TV를 켜면 일본 TV방송국에서 송출하는 광주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광주가 계엄군에 의해 진압되고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사달이 났다. 사천비행장 인근에서 경비 중이던 계엄군이 버스에 올라와 신분증을 요구했다. 당시 주민등록증을 분실하고 전남대학교 학생증만 가지고 있던 나는 버스에서 내려야만 했다. 군인과 대화가 오갔다
"전남대학교 학생이네요. 내리세요."
"주민등록증을 분실해 학생증만 가지고 있습니다. 학생증 뒤편을 보세요. 예비역 출신 아닙니까? 이 나이에 무슨 데모를 하겠습니까?"
그러자 자신도 대학교 다니다 휴학하고 군에 왔다면서 "잡혀가면 큰일 날 수도 있으니 빨리가세요"라며 통과시켜 줬다. 만약 그 군인이 통과 시켜주지 않았더라면 어찌됐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일행을 태운 율리안나 요트가 이순신 장군의 전투 현장이었던 당포를 향해 계속 달리자 머리속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이 다시 떠올랐다.
이순신 함대의 두 번째 출전과 연합함대의 형성
제1차 출전에서 큰 전과를 얻은 이순신 함대는 1592년 5월 9일에 본영으로 돌아왔다. 휴식과 무기 마련 등 전투 준비에 치중하며 6월 3일에 2차 출전할 요량으로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 합류할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5월 27일에 원균으로부터 "일본 배 10여척이 사천 곤양 등지로 육박해 왔기 때문에 함대를 노량으로 이동했다"는 급보가 왔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 "뒤따라 오라"는 공문을 남긴 이순신함대는 5월 29일 노량에서 원균과 합류했다.
사천해전은 이날 근처를 지나는 왜선 한 척을 추격하던 중 선창에 나란히 정박한 일본 군선 12척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썰물이어서 선체가 큰 판옥선은 진입할 수 없었다.
왜군은 유인작전에 말려들지 않고 조총으로만 대항하고 있었다. 때마침 조수가 밀물로 바뀌고 판옥선이 포구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 해전에서 처음으로 거북선이 돌격하여 각종 총통을 발사해 일본 군선 13척을 분쇄했다.
▲ 거북선 모습 |
ⓒ 오문수 |
"우수사 이억기가 오지 않으므로 새벽에 혼자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노량에서 경상우수사와 만났다. 함께 의논하다가 왜적이 머물러 있는 곳을 물으니 적들은 지금 사천 선창(사천군 읍남면 선진리)에 있다고 하였다. 곧 그곳에 가보니 왜놈들은 벌써 상륙하여 봉우리 위에 진을 쳤고 배는 산밑에 매어 놓아 항전하는 태세가 매우 견고했다.
나는 여러 장수들을 독려하고 명령하여 한꺼번에 달려들어 화살을 빗발치듯 퍼붓고 각종 총통을 바람과 우레같이 쏘아 보내니 적들이 겁에 질려 물러나는 데 화살을 맞은 왜적의 수가 몇 백 명인지 헤아리기 힘들었으며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에 맞았으며 나도 왼쪽 어깨 위를 탄환에 맞아 등으로 뚫고 나갔으나 중상은 아니었다. 활쏘는 군사 중에서도 탄환 맞은 사람이 많았다. 적선 13척을 불태우고 돌아왔다"
▲ 사량대교 아래를 통과하는 율리안나호 모습 |
ⓒ 오문수 |
사천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함대는 1592년 6월 1일 고성 땅 사량도 뒷바다에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두 개의 섬으로 분리된 사량도는 외해에서 다가오는 큰 파도를 막아줄 양항을 가지고 있다. 힘든 전투를 치르고 난 이순신 함대는 이곳에서 피로를 풀며 다음 전투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당포해전 승리 후 전라우수영 함대 합류... 조선수군의 사기가 충천하다
다음날인 1592년 6월 2일, "일본 군선들이 당포에 정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순신 함대는 곧바로 함대를 이동하여 10시쯤부터 전투가 시작됐다. 일본 함대는 대선 9척과 중·소선 12척이었고 그 중 한 척에는 높은 층루가 있었다.
층루 밖으로는 붉은 비단 휘장을 둘렀고 사면에 '황(黄)'자가 써져 있었고 그 속에 일본 장수가 있었다. 일본 함대 중 판옥선 만큼 큰 배를 '아다케'라 부르고 작은 배를 '세끼부네'라고 부른다. 조선수군의 주력인 판옥선은 단면이 U자에 가까운 '평저선'인데 반해 일본 수군은 V자에 가까운 '첨저선'이다.
일본의 군선은 속도가 빠르지만 회전반경이 넓어 서로 격돌할 때 불리했다. 조선수군배는 그 자리에서 회전할 수 있었고 선체가 크고 튼튼해 일본 수군의 기본 전법인 '등선육박전술'을 사용하기 어려웠다.
이순신 함대는 거북선으로 아다케를 들이받으면서 용머리 입으로 현자 철환을 쏘고 천·지 대장군전을 쏴 그 배를 깨부쉈다. 이때 중위장 권준이 활로 일본 장수를 쏘아 맞추자 곧 휘하 군관들이 뛰어들어 그 머리를 베었고 장수를 잃은 일본 수군 배 21척을 분쇄했다.
6월 4일, 당포 앞바다에서 전라우수영 이억기 함대가 합류해 전선(판옥선)이 51척으로 배가되자 그동안 힘든 싸움에 지쳤던 조선수군의 사기가 충천했다.
6월 5일, 귀화인 김모 등이 "당포에서 쫒긴 일본 군선들이 고성 땅 당항포에 있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조선수군의 연합함대가 당항포에 들어가자 일본 수군의 대선 9척. 중선 4척, 소선 13척 등 26척이 정박해 있었다.
▲ 당항포 요트학교에 정박한 율리안나호 요트 모습 |
ⓒ 오문수 |
▲ 고성 공룡테마공원에 전시된 공룡모습 |
ⓒ 오문수 |
율리안나호 대원들이 고성 당항포에 이르러 바다를 살펴보니 당항포는 육지 깊숙이 숨겨져 있는 천혜의 양항이었다. 생김새나 크기가 노르웨이 피요르드 해안 같았다.
고성 당항포구에 정박해 주변을 살펴보니 공룡박물관이 있었다. 고성 땅에는 오래전 수많은 공룡들이 살았던 늪지대였다가 바다로 변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을 위시한 연합함대는 11일 동안의 제2차 해전 동안 네 차례 해전에서 일본 군선 72척을 분쇄하고 일본군 수백 급을 벴다.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자헌대부로, 이억기와 원균을 가선대부로 포상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와 광양경제신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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