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말도 디테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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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기자]
▲ 위로하는 사람. |
ⓒ pexels |
"신경 쓰지마" 이말은 위로가 될까?
나 역시 남들에게 곧잘 사용하던 언어였다. 그러나 막상 그말을 내가 듣게 되자 크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힘들때가 있었는데 그때 가까운 지인들은 한결같이 '신경 쓰지 마'라는 말을 했다.
힘내, 파이팅,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같은 위로의 말들도 그저 의미 없이 들릴 뿐이다. 매일 마주하고 들리는 말들에 신경안 쓰일 수가 없고 파이팅 외친다고 힘이 나진 않기 때문이다. 위로도 잘못했다간 괜히 화만 돋구어 마음만 상한다. 못난 마음이다. 나를 위로하려 했던 말임에도 나의 상황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신경이 안 쓰이지? '신경 쓰이겠지만 차분하게 잘 극복하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게 현실적 일지 모른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애써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면서 잠시 다른 세상에 빠지는 것이다. 진정한 위로는 단순함을 넘어서는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작은 것도 내가 될 때는 크게 느끼기에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언어가 있다.
'공부를 잘하고 싶어요'라고 고민하는 친구에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보다 '연필로 쓰면서 공부해 보세요'라는 말이 더 깊숙이 다가오는 것처럼 위로에도 디테일이 필요하다. 말에는 힘이 있지만 위로라는 게 쉽지 않은 이유다. 얼마전, 힘들어하는 Q에게 C는 예의' 신경쓰지마' 라고 위로를 했다. 위로를 거든답시고 나는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지"라고 말을 했는데 C가 버럭 화를 내는 바람에 '신경이 쓰이겠지만 가능한 차분하게 잘 극복하는 수밖에 없어'라는 뒷말을 하지 못했다.
위로의 방법이 다 다르고 누구나 자신의 언어가 옳다고 믿는 결핍엔 침묵할 수밖에 없지만 뻔한 이야기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적절한 타이밍에 적합한 말과 글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사유하며 타인의 삶을 경청하는것인지 모른다. 한계 그 이상의 언어를 알고 있는 연륜과 지혜가 담긴 말은 반짝반짝 빛나기 때문이다.
요즘 즐겨보는 유일한 방송은 <한일톱텐쇼>다. 한일 트롯 가수들이 대결하던 <한일가왕전> 후속 프로그램인데 거슬러 올라가면 트롯오디션 <현역가왕>에서 시작된 방송으로 스토리 서사가 확실해 흥미롭게 보고 있다.
서사가 있는 스토리는 뭐든 감동이 배가 된다. 출연자 중 스미다 아이코(16)를 좋아한다. 기획된 아이돌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항상 씩씩하다. 낯선 타국에서 펼쳐지는 상황의 설렘과 긴장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감정이 표정에 드러난다. 그럴듯하게 시늉하는 '척' 하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박력 있고 건강해서 예쁘다. 대결에서는 매번 졌지만 나에게는 1등이다.
지난 11일 방송된 <한일톱텐쇼>는 한일트롯의 전설 계은숙 가수 특집이었는데 심사위원 계은숙은 우승자를 선택할 때 주저하지 않았다. 뻔한 빈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좋았다. 보통 그런 상황엔 뜸을 들이며 고민하는 연출을 하는데 계은숙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 연출을 유도하려던 사회자가 오히려 당황스러워했다. 그래서 새로웠다.
이날도 아이코는 졌다. 막상막하였기에 한 번쯤은 승리할 법도 한데 매번 진다. 그럼에도 아이코는 여전히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다른 가수에겐 별 코멘트 없던 계은숙은 아이코에게 이런 말을 힘주어했다. "빛날 시간을 기다리는 지금이 가장 매력적이다!"
짧은 그 순간 그 말은 내게도 빛처럼 반짝거렸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 열혈 애청자지만 어디에서도 그런 위로를 건네는 심사위원을 본 적이 없다.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포장하지 않고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그래도 잘했어요. 수고했어요. 고생했어요'라는 단순한 멘트보다 훨씬 더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말이다.
아이코도 그랬을 것이다. 매번 져서 속상하고 울먹거릴 때도 애써 웃었던 아이코에게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시련을 겪으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계은숙 가수였기에 그 말의 의미는 어떤 부연설명 없이도 알 것 같았다.
아이코에게 힘이될 위로의 언어. "빛날 시간을 기다리는 지금이 가장 매력적이다!" 말하는 표정도 어투도 단호했다. 친절하게 웃거나 부드럽지 않아서 더 반짝거렸다. 당시의 반짝거림이 내게 닿았던 이유가 지금의 내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진다고는 할수없지만 묘하게도 그 말은 나에게도 힘이 되었고 위안이 되었다.
사실 나는, 몇 주 전 방과 후 참관 수업이 있다는 알림을 받은 후부터 긴장되기 시작했다. 애써 태연한척 하며 생활했지만 가슴이 쿵쿵거려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경험이 많다면 전혀 문제 되지 않겠지만 방과 후 강사가 처음인 나는 나이만 많은 신참이다. 이런 규정이 있는 줄 알았다면 애초 방과 후강사를 지원하지 않았을 거라는 자책까지 했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나이에 맞지 않는 고민이고 걱정이었다. 아무도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습지만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러니 쉽게 던지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감은 없고 잘하려는 욕심에서 나오는 불안을 누가 위로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떤 말도 도움이 되지 않아 하루종일 음악을 듣거나 산책하는 것으로 신경을 돌려봤지만 점점 다가오는 그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척' 하지 않아서 예쁜 아이코의 신나는 노래를 반복해 들으며 잠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수밖엔.
오래전 방문교사를 시작하고 첫 수업을 나가기 전, 멘토는 나이 많은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선생님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초보는 티가 나기 마련이에요. 그러니까 편하게, 애써 감추지 말고 하세요." 나중에야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고객들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분명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포장하려는 자신만 모를 뿐이니 '척' 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쉬운 것을. 그럴듯하게 꾸미려 애썼던 때를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온다.
누구나 처음이 있고, 시작이 있다. 어렵고 힘들 때도 있다. 빛나기를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을 곱씹어 보면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지는 기분이다. 누구나 쉽게 할수 있는 위로의 말 보다는 자신만이 할수 있는 고유한 언어로, 디테일한 마음을 전달하는 문장을 사유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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