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태권도 관장의 우렁찬 구호 "차렷!"

이안수 2024. 6. 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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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9만 도시 라파스의 청년은 왜 태권도에 빠졌을까

필자는 멕시코를 여행 중이다. 길 위에서 조우하는 사람과 삶을 인터뷰한다. <기자말>

[이안수 기자]

 태극기 아래에서 포즈를 취한 사범과 수련생들
ⓒ 이안수
 
멕시코 라파스는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의 동쪽 만에 위치한 평화로운 도시다. 캘리포니아 만(코테즈 해)로 본토와 분리된 사막기후의 오지에 속하는 곳으로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 주의 주도이지만 인구는 29만 명에 불과하다. 이 인구의 상당수는 해변가 말레콘에 상업시설이 밀집된 곳에서 관광업에 종사하고, 나머지는 관공서의 공무원과 어업 등으로 생계를 도모한다. 한국인의 방문은 드물고 한국 식당은 없다.

그럼에도 태권도 도장이 곳곳에 눈에 띈다. 태권도의 간판은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만날 수 있어서 한국인 여행자에게는 한국 제품의 광고판이나 한국 자동차 딜러들의 전시장처럼 반가운 해후다. 하지만 멕시코 중에서도 접근 자체가 어려운 반도의 끝, 곳곳에서 태극기가 그려진 태권도 간판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다목적 체육관, GUM에도 태권도 도장이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젊은 사범의 사진이 박힌 공지문과 함께 태극마크를 단 도복 복장의 애니메이션이 친근했다.

"자존감, 반사능력, 주의력, 신뢰도, 자율성, 일관성, 규율, 존중, 자기방어를 향상시키고 스트레를 감소한다. 더불어 성공과 패배를 경험하게 한다."

태권도 수련이 주는 효능에 대한 설명에 눈길이 갔다.
 
 태권도를 통해 자존감, 반사능력, 주의력, 신뢰도, 자율성, 일관성, 규율, 존중, 자기방어를 향상시키고 스트레를 감소하는 효과늘 설명한 격문과 스승의 날에 태권도의 발전과 세계적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한 최홍희장군을 기리는 포스터
ⓒ 이안수
 
6월 12일, 라파스의 태권도 사정을 들어보기 위해 '무덕관 GUM(MDK GUM TAEKWONDO)'을 방문했다.

성인과 어린이 수련생이, '차렷, 경례, 준비, 시작' 등 우리말 구령에 맞추어 관장, 에로스 헤레라(Eros Herrera)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기초체력, 품새, 개별동작 등 2시간 동안의 태권도 수련을 지켜본 뒤 수련생과 학부모, 사범과 대화했다.

수련을 시작한 지 3개월 째라는 27세의 마를린(Marlen)이 말했다.

"건강을 위해 시작했는데 확실히 몸의 컨디션이 좋아진 것을 느낍니다. 발차기도 많이 좋아졌는데 킥을 하면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돼요."

비서로 일하고 있는 그녀에게 태권도는 상충되는 업무와 조직 속 관계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수련이 막 끝난 남매, 6살 레오폴도 라파엘 (Leopoldo Rafael)과 11살의 파레데스 가이탄(Paredes Gaytan)을 마중 온 어머니 아우레아(Áurea Gaytán)에게 왜 두 자녀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게 됐는지 물었다.

"필요할 경우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길 바랐어요. 또한 정신 수련을 통해 스스로에게는 규율을, 타인에게는 존중의 태도를 갖길 원했습니다."

멕시코에서 가장 강력하고 폭력적인 범죄 조직 중 하나인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이 뿌리를 둔 과달라하라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에게 아이들의 안전은 가장 중요한 문제였고 태권도를 호신의 대안으로 여겼다고 했다.
 
 두 자녀 모두를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는 아우레아 어머니. 그녀는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이 뿌리를 둔 과달라하라에서 나고 자랐다.
ⓒ 이안수
 
20세의 관장, 에로스(Eros Elian Herrera Lopez)와 긴 얘기를 나누었다.

- 당신은 언제, 어떻게 태권도와 인연을 맺었나?

"4살 때부터 시작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미술교사이지만 태권도 선수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놀이가 태권도였던 셈이다. 나중에 태권도 토너먼트에서 좋은 결과를 얻자 그것이 내게 격려가 되었다."

- 아버지 외에 당신의 스승이 있나?

"빅토르 로드리게스 폰세카(Victor Rodríguez Fonseca) 스승님이다. 7단으로 20년째 본인의 도장, '무덕관 포르하도레스(MDK FORJADORES)'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그 체육관에서 오른팔 역할을 맡고 있다."

- 당신이 관장이 되려면 숙련도와 더불어 강습 경험도 있어야 하지 않나?

"검은띠 2단이다. 3개월 뒤에 3단 승단시험을 신청할 예정이다. 스승님의 도장에서 계속 수련해왔고 인턴으로 가르쳐왔다."

- 자신이 수련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어떻게 가르치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나?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하나 하나 열매를 맺어가는 것을 보고 가르치는 것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 20세면 여전히 학생의 연령대인데.

"그렇다. 바하 캘리포니아 수르 자치 대학교에서 '재생에너지'를 전공하고 있다."
 
 4살부터 태권도를 시작해서 현재 자신의 도장을 갖게 된 MDK GUM의 관장, 에로스 헤레라.
ⓒ 이안수
 
- 졸업 후에는 당신의 전공과 태권도를 병행할 예정인가?

"지금처럼 오전에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태권도를 지도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 현재 학생이지만 태권도 지도를 통해 경제적으로도 자립한 것 같은데.

"태권도를 가르치는 두 곳으로부터 수입을 얻고 있다. 스승님의 체육관에서 사범으로 일하면서 주급을 받고 있고 지금의 내 체육관, 'MDK GUM'의 관장으로서 사업소득을 얻고 있다."

- 그 수입은 어떻게 사용하느냐?

"일부는 나의 취미와 성장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는 훈련 장비 구입과 체육관을 성장시키는데 사용하고 있다."

- 자신의 꿈을 실현하면서도 경제적 필요를 스스로 해결하는 부지런하고 현명한 청년이다. 그런 당신의 현재 모습이 태권도를 수련한 것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태권도가 나를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그래서 나는 계속 배우는 사람으로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기 위해 사범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어떤 분야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 당신이 태권도를 수련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무엇인가?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다. 태권도는 한 기술을 익히면 그것이 몸이 저절로 할 수 있도록 연습을 되풀이 해야 한다. 그래야 실제 겨루기에 적용할 수 있다. 스승님에 따르면 태권도의 각 단계를 제대로 익히고 적용하는 데 50년은 걸린다고 하셨다."
 
 수련생중 27세의 마를린(Marlen) 씨는 특히 발차기를 좋아한단다. 킥을 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 이안수
 
- 많은 선생들은 가르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더라. 당신은 수련생이기도 하지만 사범으로 가르치면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힘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태권도는 상대의 공격 힘을 피하면서 그 힘을 오히려 활용하기도 한다. 수련생들은 함께 가르치지만 그 힘을 이용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 수련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보편적인 가치를 갖도록 하고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물리적 또는 비물리적 힘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육체적인 힘을 기르고 기술을 연마하는데 집중하지만 갈수록 정신적인 면의 비중을 높인다."

- 승급, 승단시험은 어디에서 보느냐?

"태권도의 모든 분야에서 자격을 갖춘 높은 등급의 스승에게 심사를 받아야 한다."

- 라파즈에는 태권도 도장수와 태권도인의 수는 어느 정도인가?

"25개의 도장이 있다. 하지만 정확한 수련생의 통계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스승의 명성에 따라 40명에서 50명까지 수련생의 수가 조금씩 다르다. 또한 지금까지 도장에서 수련한 사람들을 합하면 수천 명은 될 것이다."

- 멕시코시티에서도 많은 도장을 보았다. 멕시코 전체의 태권도 인구에 대해 아는 게 있는가?

"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 이 도시의 인구수에 비해 태권도 인구가 많은 편이다. 이유가 뭔가?

"신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요소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몸의 밸런스를 유지하고 감정관리를 할 수 있는 자제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경례!"라는 한국어 구령에 맞추어 수련생들이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
ⓒ 이안수
 
- 태권도협회가 결성되어 있나?

"1976년에 설립된 멕시코 태권도 연맹(Federación Mexicana de Taekwondo, FMTKD)이 있다. 멕시코 내 태권도 수련을 감독하고 있다."

- 태권도는 언제 멕시코에 들어왔고 이렇게 많이 보급된 계기가 있나?

"한국의 문대원 스승이 1969년 멕시코시티에 도장을 설립한 것이 처음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태권도인이 급증한 것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신 종목으로 채택되면서부터다."

- 무술은 문화이다. 당신 도장 가운데 태극기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당신과 수련생들이 한국말로 구령을 하는 것을 보니 그 사실을 더욱 실감한다. 당신은 한국 문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관심이 높다. 태권도는 정신에 관한 무술이기도 하므로 특히 문화를 잘 알아야 한다. 태권도는 불교와 유교의 영향을 받았다. 최근에는 이들 문화와 종교를 탐구하면서 그 역사를 더 깊이 탐구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한국을 포함한 동양에 대해 공부를 계속할 것이다."

- 라파스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있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신이 내가 만난 첫 한국인이다."

-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은 어떤 곳인가?

"온갖 명석한 두뇌와 지식이 풍부한 좋은 사람들이 모인 깨끗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도장 방문은 군 복무 시 의무적으로 태권도 수련을 해야 했었고 내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던 때를 추억하게 했다. 도장을 나오면서 다시 격문을 봤다. 태권도는 우정, 팀워크, 존중, 성공과 패배를 경험하게 한다고 설명돼 있다.

특히 '패배'를 경험하게 한다는 문구는 의미심장했다. 성공을 지향하는 도전에 무수한 실패는 필수이다. 하지만 그 실패를 견디기는 힘들다. 태권도는 겨루기에서 실패를 맛볼 수 밖에 없다. 태권도를 통해서 실패를 극복하는 힘, '성공적인 실패'를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를린(Marlen)이 함께 셀피를 찍자고 했다. 지금까지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는 "삶이 네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던지거나, 아니면 음료를 만들어라, 둘 중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이었단다. 그러나 태권도는 신맛의 레몬을 의도치 않게 받았을 때 그것을 남에게 던져주거나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방식 외에도 또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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