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가 끝났다... 저는 성공한 건축주입니다 [고향집 다시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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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기자]
"건축주님, 어제 오후 늦게 사용승인이 완료되었는데, 너무 늦어서 아침에야 연락드려요. 처음 지으시는 거라서 힘드셨을 텐데,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축하드려요!"
5월 23일 목요일, 평범한 일터의 아침이었다. 몇 개의 회의가 이어지던 시간, 건축사 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회의 중에는 가능하면 개인적인 전화는 받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이 전화는 심상치 않았다. 급하게 상대에게 양해를 구한 후 통화 버튼을 눌렀고, 아니나 다를까 기다리던 사용승인 연락이었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이런 날이 오기는 하는구나. 야호, 나는 집 지은 여자다!
날짜를 되짚어 보자. 작년 12월 1일에 착공 승인이 되었으니, 집을 짓기 시작한 날로부터는 정확히 174일 만이고, 시공사와 계약한 2023년 3월 4일 이후로는 446일 만의 준공이다. 서른 살부터 마음먹은 것까지 계산에 넣으면, 거의 스무해가 걸렸다. 항상 기다렸지만, 해낼 수 있을까 의심했던 그날이 결국은 오고야 말았다. 꿈은 꾸어야만 이루어지는 거다. 잘했어!
▲ 조경이 마무리되며 아빠의 나무가 자리를 잡았다. 아빠가 심어놓으셨던 서른살이 넘은 나무들은, 집 주변으로 다시 자리를 잡아 옮겨졌다. 아빠가 기대하셨을 삼십년 후의 미래가, 이렇게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하여 마음이 먹먹해졌다. |
ⓒ 이창희 |
지난번 조경 사장님과의 면담 이후로, 조경 작업의 범위를 확정 짓고 계약금을 입금했다. 통장의 바닥을 파고 들어가야 하는 부담되는 작업이었지만, 하기로 결심한 마음이었다. 다만 조경은 건축물에 대한 사용승인과는 크게 관계없는 사항이었니, 집에 대한 사용승인은 먼저 진행하기로 했다.
급하게 동생네 가족들을 초대하여 집에서의 첫날을 신나게 보내고 났더니, 썰렁했던 집은 한결 더 생기를 품었다. 역시, 집은 사람들의 온기가 함께할 때 생명을 얻는 게 맞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한 노동은 집안 곳곳에 그대로 남아, 사람의 온기로 되살아난다. 집을 지어주신 모든 노동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다.
집짓기의 피날레를 장식한 조경 공사가 6월 6일에 끝났다. 오래된 시골집엔 아빠가 30년 전에 심어주신 나무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지금 내 나이쯤의 아빠는 집 앞의 작은 공간을 백목련, 자목련, 배롱나무와 공작 단풍으로 채워 넣으셨고, 동네 어르신들께 선물 받았다는 단풍나무 몇 그루와 소나무, 라일락도 심으셨다.
처음에만 해도 꼬꼬마였을 나무들은 30년의 세월을 지나며 내 키를 훌쩍 넘은 크기와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오십의 아빠가 심어두셨을 나무들을, 아빠 나이가 되어버린 내가 옮겨 심고 있자니, 아빠의 집이 사라진 자리가 훨씬 덜 쓸쓸해 보였다. 적어도 그 오랜 시간을 기억하는 나무들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콩이라도 하나 심을 것이지 쓸모없는 나무만 심는다며, 할머니께 혼나셨대."
전화기가 고장 나서 도움을 청하러 오셨던 앞집 할머니의 말씀을 엄마가 전해주셨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아흔이 훌쩍 넘으신 이웃 어르신의 증언으로, 몇 해 전 우리 곁을 떠나신 아빠의 젊은 날이 되살아났다.
30년 전의 아빠도 할머니께 새 집을 지어드렸다는 성취감으로 충만하셨을 테고, 오래도록 이곳에 건강하게 뿌리내릴 가족을 기원하며 좋아하는 나무들을 정성껏 심으셨을 거다. 새 집의 정원 곳곳으로 옮겨진 아빠의 나무들을 하나하나 쓰다듬다 보니, 감정 표현에 인색하셨던 아빠의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만 같다. 어이쿠, 자꾸 눈물이. 아…
▲ 컨테이너를 다시 칠했다. 회색의 컨테이너가 집과 너무 안 어울려서,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노란 잠수함을 떠올리며 컨테이너를 다시 칠했다. 보카주니어스 같나요? 하하! |
ⓒ 이창희 |
잠깐, 이게 끝이 아니다. 집이 지어지는 동안 엄마는, 집 근처에 가져다 둔 컨테이너에서 지내셨다. 시골집에 창고가 없는 것은 아쉬우니, 엄마가 머무셨던 컨테이너를 창고로 쓰겠다며 옮겨 놓았는데, 원래의 어색한 회색으로는 집과 영 어울리지 않았다. 완공까지의 모든 작업을 전문가들께 의지했지만, 마무리인 페인트는 내가 직접 칠하기로 했다. 처음 해보는 만큼 선생님이 필요하다. 얼른 동네 페인트 가게를 찾았다.
"사장님, 저 처음 해봐요."
"그러게. 제가 가르쳐드리려고요."
시너와 페인트를 1대 4의 비율로 잘 섞어준 후, 롤러와 페인트 붓으로 구석구석 빠짐없이 잘 칠해주면 된단다. 어려울 것 없다며 응원까지 전하신다. 일회용 작업복을 찾는 내게, 굳이 그것까지 필요하겠냐고 하셨지만, 입고 있던 애착 티셔츠에 노란 페인트가 잔뜩 튀고 나서야 겸손하게 작업복을 챙겨 입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 여기서 어떻게 탈출하나요? 지붕의 색을 칠하다보니,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한 채 갇혀버렸다. 결국, 아직 마르지 않은 페인트를 밟고, 간신히 사다리로 탈출해야 했다. 무서웠던 순간! |
ⓒ 이창희 |
이제 집 짓기의 모든 과정들이 완전히 끝났다. 동네 최고로 예쁜 집을 지어주시겠다면서, 초보 건축주를 안심시켰던 현장 소장님은 벌써 다른 현장에서 한여름의 땀을 흘리는 중이시고, 소장님의 장담 대로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제일 예쁜 것은 물론이고, 상상에만 존재하던 오직 하나뿐인 집으로 완성되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끝내 짓고야 말았다.
사용승인이 완료된 날 기분이 들떠서, 예전에 썼던 집에 대한 글들을 뒤져보았다. 그중 최준석 작가의 <집의 귓속말>이라는 책에 '보통의 집'에 대한 대화가 등장하는데, 들뜬 마음이 더 먹먹해졌다(관련기사 : 이런 집이라면 빈털터리가 돼도 좋습니다 https://omn.kr/1ohpb) 여기에도 옮겨본다.
"음…… 그냥 따뜻하고 시원하고 튼튼하고 안전하고 밝은 집. 무섭지 않은 집, 밖에서 봤을 땐 누구라도 괜찮은 집이구나 느낄 만한 집. 으스대거나 폼 잡는 허세가 없는 집, 집 안이 집 바깥보다 더 기분 좋은 집, 계절과 날씨를 담을 수 있는 집, 저녁에는 멋진 노을을 보고 밤에는 별과 달을 볼 수 있는 집, 비 안 새는 집,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일상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는 집."
"……"
"……"
"너무 어려운 집이네." - <집의 귓속말> 31쪽
▲ 완성된 보통의 집이라니! 정말 어려운 것이 보통의 집일텐데, 우리의 새 집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그대로 만들어진 꿈의 공간이다. 노을이 지는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승리를 자축했다! |
ⓒ 이창희 |
내가 짓고 싶은 집도 '보통의 집'이었을 테다. 가족들이 함께 추억을 쌓아가고, 조카들이 커가면서 찾아오고 싶은 외가. 거창하게 폼 잡지 않아도, 누구나 안도할 수 있는 편안한 집, 동쪽으로 뜨는 해와 서쪽으로 지는 노을,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그런 집 말이다.
완성된 우리 집은, 불가능해 보였던 '보통의 집'에 꽤나 가까웠다. 친구들은 성급하게 자축하지 말고 사계절을 지켜봐야 한다지만, 나는 실체로 확인할 수 있는 우리의 집이 너무도 뿌듯하다. 여기에서 당당하게 선언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집을 끝내 완성한, 성공한 건축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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