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노화가 정상적인 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가속노화’의 반대 개념으로 요즘 유행하는 ‘저속노화’ 트렌드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가 소개한 ‘저속노화 밥’ 키워드로부터 시작됐다. SNS에서 ‘가속노화 말벌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노화에 대한 지식을 올바르게 전하려는 열정과 그 영향력 또한 대단한 정희원 교수가 돌풍을 일으킨 저속노화 식단의 주요 특징은 단순당과 정제 곡물을 최대한 줄이고, 주요 단백질원인 통곡물과 콩 등을 섭취하는 것. 말 그대로 몸의 부기와 염증 억제는 물론 뇌의 노화 속도를 늦추는 음식 위주로 구성된 식단이다.
노화와 당의 관계
가속노화와 저속노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따라붙는 키워드는 ‘당’과 ‘혈당 조절’이다. 왜 노화와 당은 함께 이야기되는 걸까? 당류 섭취에 따라 혈중의 당 수치가 오르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고 ‘엠토르(mTOR)’라는 단백질이 활성화되는데, 인슐린과 엠토르는 노화의 가속페달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한편, 이 두 가지는 생활 습관을 통해 조절할 수 있는 성분이기도 하다. 단순당과 정제 곡물, 특히 액체로 마실 수 있는 당분은 빠른 속도로 혈당을 올리기 때문에 노화에 있어 가장 멀리해야 하는 음식이다. 콜라, 사이다 같은 음료수와 주스, 미숫가루를 포함해 비교적 건강할 것이라 믿었던 디톡스 주스도 포함된다고. 혈당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 혈당의 주요 소비처인 근육으로 이동하고 남은 양이 1차적으로는 지방에, 2차적으로는 간에, 3차적으론 근육에 있는 이소 지방(눈에 보이지 않는 지방)에 쌓인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방에서 ‘사이토카인’이라고 하는 염증 물질이 분비된다. 여기서 인슐린이 더 올라가면 근육은 더 적은 양의 당분을 흡수하고, 더 많은 양의 당분이 지방으로 들어가는 악순환이 발생하며 점점 만성 질환에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니 혈당 상승은 노화를 넘어 각종 질환까지 촉발하는 원인이 되는 셈이다
저속노화 × 가속노화 = 중속노화
사실 잘 알지 않는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살면서 배달 음식과 외식을 피하기란 쉽지 않고, 맛있는 것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면서 삼시 세끼 저속노화 식단으로만 밥을 지어 먹기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요즘 젠지들 사이에선 고속노화와 저속노화의 중간인 ‘중속노화’ 식단이 새로운 식단 관리 방법으로 떠올랐다. 저속노화 밥으로 알려진 잡곡밥에서 백미 비율을 조금 높이거나, 잡곡밥에 건강식이 아닌 일반식 반찬을 곁들인 식단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잡곡밥을 유부초밥이나 비빔밥, 볶음밥으로 만들어 즐기며, 정제 곡물인 흰쌀밥을 대체하고 익숙한 맛을 챙긴 식단도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중속노화 식단 인정?”이라며 수줍게 식단을 인증하는 이 흐름은 분명 건강한 트렌드로 보인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만큼 인생의 즐거움을 충전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하지만 늘 스스로 건강하려는 마음의 항상성, 즉 중용의 닻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작금의 세대가 이 비전을 받아들이고 흡수해 유행처럼 번지는 이유는 이 중용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30세대 사이에서 불고 있는 저속노화 식단 열풍은 비단 노화를 늦추려는 시도라기보다, 도파민과 쾌감에 젖은 스스로를 다시 건강하게 정화하려는 고군분투를 보여주는 흐름이 아닐까?
HOW TO MAKE 저속노화 식단
✔ 렌틸콩, 귀리, 현미, 백미를 4 : 2 : 2 : 2로 혼합해 밥을 짓는다.
✔ 나물, 채소, 약간의 고기, 생선 등 동물성 단백질을 반찬으로 섭취한다.
✔ 요리에는 올리브 오일을 사용한다.
✔ 치즈와 붉은 고기, 버터, 마가린 섭취는 소량으로 줄인다.
✔ 채소와 달지 않은 과일을 많이 먹는다.
✔ 술은 와인으로 최대 하루 한 잔만 마신다.
저속노화 식단의 가설과 효과 YES OR NO
「 탄수화물은 극단적으로 줄여야 한다? 」
건강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탄수화물은 건강의 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거나 극단적으로 먹지 않는 다이어트 방법이 만연한데,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케톤 식이요법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체중이 큰 폭으로 감소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하면 많은 근 손실이 따라오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노화를 늦추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적당한 근육량을 유지하는 것인데,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식단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노화를 부추기는 셈이다. 그러니까 적절한 탄수화물을 섭취하되 정제 곡물과 단순당은 피하고 통곡물을 통해 천천히 당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 무조건 단백질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
탄수화물에 대한 반감으로 오히려 단백질만 섭취하려는 경향이 있다. 요즘 ‘고단백’ 식품이 많이 보이는 것도 그 때문. 하지만 단백질을 너무 많이 먹게 되면 오히려 노화 속도가 가속화될 수 있다. 인간의 성장, 근육의 생성, 노화 가속의 기전은 동일하기 때문에 단백질의 대량 섭취는 근 생성 과잉을 낳고, 생애 전환기를 앞당기게 된다. 극단적으로는 통풍까지 야기할 수 있다. 뭐든 적당한 게 좋다.
「 절식과 간헐적 단식을 병행해야 한다? 」
노화를 늦추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절식이다. 평소 먹는 칼로리에서 20~25% 줄였더니 생쥐의 수명이 20~30% 늘어났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절식을 하면 다양한 유전자가 활성화되는데, 신체의 ‘오토파지(자가포식)’라는 기전이 작동되며 몸속의 불필요한 단백질을 청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일정 시간 동안 식사를 하지 않는 간헐적 단식도 같은 원리다. 덜 먹거나 공복 상태가 되면 오래되거나 손상된 세포소기관과 단백질을 자체적으로 분해하는 시스템이 활성화돼 깨끗한 세포 환경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