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수염 기른 김구 선생... 컬러로 복원한 옛 희귀 사진들
[이영천 기자]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 옛 모습이 담긴 3권의 사진첩을 들고 쉬충마오(徐宗懋)라는 낯선 이름의 대만 국적 중국인이 우리 앞에 섰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관 기자간담회에서다. 사진첩엔 1800년대 후반부터 1945년까지 희귀 사진 390여 점이 실렸다. 한눈에도 소중한 자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각 권 표지 '당신이 보지 못한 희귀 사진'의 각 권 표지. |
ⓒ 서해문집 |
'한양 그리고 도시'라는 1권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1897년~1910년 경) 서울과 평양, 개성 등 여러 도시의 옛 모습이 실려 있다. 아련한 옛 도시로의 여행이다. 100년보다 더 이전의 과거, 그 시기 도성을 비롯한 희귀한 우리 도시 공간구조가 책 안에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 도성 내부 전차선이 지나는 것으로 보아 서울 동대문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추정되는 구한말 종로 거리의 모습. |
ⓒ 서해문집 제공 |
2권 '전통과 사람들'엔 당시 생활상과 시장, 노점상 등을 통해 퍽퍽한 한 시대를 살아 낸 사람들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다.
▲ 활쏘기 당시 여성들이 머리를 쪽진 채 활을 쏘는 생경한 모습의 희귀 사진. |
ⓒ 서해문집 제공 |
3권 '망국과 광복'엔 사료적 가치가 높은 사진이 다수다. 여기 따로 싣지는 않았지만, 독립운동가였던 김성산, 이춘근, 안순서 등 세 의사가 나무 십자가에 몸이 묶인 채로 일본 헌병에 총살당하는 연속 사진은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 충격이 클 정도다.
▲ 끌려 가는 순국열사 독립운동가였던 김성산, 이춘근, 안순서 의사 3명이 당시 일본군에 의해 끌려 가는 사진. 공사중인 것으로 보이는 도로를 보아 한일 강제 병합 전후로 추정한다. |
ⓒ 서해문집 제공 |
콧수염을 기른 1945년 9월 백범 김구 선생의 모습 또한 무척 이채롭다.
▲ 김구 선생 1945년 9월 콧수염을 기른 김구 선생 모습. 늘 보던 모습과 전혀 다른 백범 선생의 사진이다. |
ⓒ 서해문집 |
저자 쉬충마오는 기자 출신으로 지난 20세기 세계 곳곳의 주요 역사 현장을 취재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만큼 현장과 이미지를 중요시한다.
지난 1989년 6월 4일 톈안먼 사태 취재 도중 피격되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이력이 특이하다. 이를 계기로 역사적 소명 의식을 갖게 되었다 한다. 이때부터 사진 자료 수집에 천착하여 세계를 누비며 희귀 사진을 모아 왔다. 유럽의 경매시장과 일본의 고서점이 그의 주된 자료 수집처라고 한다.
우리나라 관련한 그의 작업은, 지난해 2023년 6월 <日帝 朝鮮(일제 조선) 사진집 > 출간을 계기로 국내에 처음 알려졌다. 이번 3권의 사진첩 외에도 방대한 한국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국전쟁 자료가 주목할 만하다. 쉬충마오가 직접 인력과 장비를 투입,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에서 수만 장에 이르는 한국전쟁 사진을 확보했다고 한다. 자료에 대한 그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쉬충마오 한국전쟁 관련 그가 수집한 희귀 사진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쉬충마오. |
ⓒ 이영천 |
이번에 선보인 3권의 사진첩도 마찬가지지만, 그는 유독 컬러 출간을 고집한단다. 무척 고되다는 디지털 복원 방식이 그것이다. 낡은 흑백 사진에 천연색 옷을 입히는 디지털화는, 비싼 비용은 물론 막대한 시간이 추가로 투입되는 세밀하고도 방대한 작업이다. 이 고된 작업을 쉬충마오 자신이 직접 감수한다고.
이유를 묻자 그는 '단순한 사진이 아닌 역사의 순간을 되살려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라 답한다. 흑백 태극기보다 천연색 태극기에 더 가슴 뛰지 않느냐 반문한다.
쉬충마오가 간담회에서 말하길, 자신의 작업은 동아시아에서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소명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용과 무관하게 책을 출간하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그는 덤덤하게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듣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무엇보다 고마움이 앞섰다. 한국인도 아닌 중국인이 잃어버린 한국 역사를 다시 찾아내는 작업에 저토록 열정적으로 매달렸다는 사실이 말이다.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도 밀려들었다. 어떤 측면에서 대만 국적 중국인인 그는 한국보다 더 한국을 잘 아는 인물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 기자 간담회 사진첩 출간 기자 간담회에서, 책을 출간하게 된 서해문집 김흥식 대표가 개괄 설명하는 모습. |
ⓒ 이영천 |
역사를 기억하고 잘 보존하는 일은 미래와 잇닿아 있다. 사료적 가치는 물론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을, 서해문집 출판사(김흥식 대표)의 사명감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인지에 회의감과 의문이 들었다.
김 대표는 쉬충마오가 수집한 자료 상태의 '한국전쟁'도 차후 사진첩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비용적 부담이 뻔히 예측되는 상황에 적자가 눈에 보이는 출판을 한 출판사가 감내해야 할지, 그게 맞는 건지 안타깝고 개탄스럽다. 사료적 가치가 충분한 작업인데, 정부가 나서는 등 지혜를 더 모을 수는 없는 것일까.
서해문집은 이달 오는 26일부터 30일까지 코엑스에서 개최하는 '서울국제도서전'에 이 3권의 사진첩을 공개하고, 일반에 전시·판매할 예정이다. 출판사 측에 추가확인 결과, 사진집은 낱권이 아니라 1세트씩 판매하며, 구입을 희망하는 이는 YES24(링크) 등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 예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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