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도난 사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무서운 현실
[서부원 기자]
▲ 학교 교실. 자료사진. |
ⓒ 연합뉴스 |
얼마 전부터 도난 사건이 부쩍 늘어 이상하다 싶었는데, 물건을 훔친 아이들을 어렵사리 찾아내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적잖은 도박 빚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학교 때부터 사이버 도박을 인터넷 게임처럼 즐겨왔다고 고백했다. 그는 돈을 잃었을 때의 스트레스보다 땄을 때의 만족감이 몇 배는 더 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고등학생 열 명 중 적어도 한두 명은 사이버 도박에 중독되어 있을 거라고 확신하듯 말했다. 교실 내에서 친구들끼리 돈을 빌리는 경우가 빈번하다면, 십중팔구 도박 빚을 갚기 위한 거라고 보면 된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교실에서 에어팟이나 전자펜 등 고가의 물건들이 도난당했다면, 해당 학급 내에 도박에 중독된 아이의 소행일 확률이 100%라고도 했다.
한때 '문제아'들의 징표처럼 여겨졌던 음주와 흡연 따위는 이제 하잘것없는 문제로 치부되는 형국이다. 술과 담배를 끊게 하는 건 애초 불가능하고, 교육이랍시고 이젠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라는 자포자기식 하소연이 전부다. 서슬 퍼런 학생부장의 생활지도는 물론, 생활교육위원회(옛 선도위원회)의 징계조차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처벌 기록도 힘을 잃었다. 이게 어디 교칙만의 문제일까마는, 정작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규정을 어겨 처벌받을 일이 거의 없는 '순둥이'들뿐이다. 그렇다고 규정에 따라 처벌하려고 해도 쉽지만은 않다. 사전에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도박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이들
어떻게든 사이버 도박을 끊게 해야 하는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방법이 마땅찮다. 주위에선 도박이 담배보다 몇 배는 더 끊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끊게 하려면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 등 모든 전자기기의 사용을 완벽하게 차단해야만 가능할 거라고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모조차 두손 두발 다 든 판국에 교사가 무슨 힘이 있느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아이와 학부모에게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신고 창구나 도박 문제 예방 치유 센터 등 상담 기관을 알선해 주는 게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학교에서 절도나 금품 갈취 등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부 사이버 도박 사이트에선 수시로 '사은품'까지 내걸고 아이들의 베팅을 유도한다고 한다. 개중에는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영양제'나 '불안을 해소하는 신경안정제'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들이 절대 복용해서는 안 될 마약이라는 건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어른들의 불법적 돈벌이에 아이들의 건강마저 수단으로 삼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교육만으로 도박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이들을 건져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TV와 인터넷에선 연일 도박 중독 예방을 위한 공익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어느새 관행처럼 느껴져 아이들에게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한다.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고 부르대는 정부와 언론도 말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애초 아이들의 도박 사이트 접근을 막는 게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하지만 이건 '교과서적 정답'일 뿐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한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다른 나라에 서버를 두고 주소를 옮겨 다니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단속하는 건 경찰조차 혀를 내두르는 일이다.
오늘도 학교에선 '도박은 범죄'라는 훈화 교육을 반복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교육 영상을 틀어주고 각자 소감을 남기도록 하지만, 아이들은 심드렁하다 못해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다. 대부분 쓸데없는 숙제처럼 여기고, 교사들도 그러려니 한다. 오로지 상급 기관에 보고하기 위한 목적의 요식 행위 정도로 이해한다.
친구의 물건을 훔치다 발각되었으니, 그는 교칙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일정 기간 도박 중독 예방과 도벽에 관한 특별 교육을 이수하게 될 것이다. 이 사안을 통해 다시금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교 내에서 친구들끼리 금전 거래는 금지되며, 교칙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예방 교육이 조만간 실시될 예정이다.
▲ 사이버 도박. 자료사진. |
ⓒ 픽사베이 |
그런데 교사이기 전에 기성세대로서 뒤통수가 따갑다. 세상만사 모든 일을 돈으로 환산하고, 재단하고, 해결하려는 사회로 타락시킨 기성세대가 아이들을 훈육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에서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데, 아이들을 나무라기보다 돈에 목매단 기성세대의 속물근성을 먼저 성찰하는 게 순서 아닐는지.
'돈만 있으면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 빼곤 다 할 수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기성세대야말로 아이들마저 도박 중독에 빠진 병리적 현상의 '주범'이다. 아이들을 향해 '속물'이 되라고 등 떠미는 사회에서 학교의 예방 교육은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어느새 아이들조차 부를 과시하고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인간의 본성인 양 여기는 단계에 이르렀다.
학급 내의 친소 관계도 아이폰의 연식과 운동화의 브랜드와 디자인이 기준이 되는 시대다. 과거엔 사는 아파트의 평수와 자동차의 배기량 등으로 갈렸는데, 이젠 조금 더 일상화하고 세분화한 모양새다. 가성비와 상관없이 아이폰과 에어팟, 아이패드와 애플워치가 한 묶음이 되어 아이들 사이에서 대세로 자리 잡은 건, 그것들이 '신분증'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최신형 아이폰이 여럿이고 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운동화도 드물지 않다. 우리 아이를 또래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부모들은 자녀의 '신분증' 마련을 위해 등허리가 휜다. 비교와 선망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멈출 줄 모르고 종국엔 사이버 도박 사이트를 기웃거리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적성이고 재능이고 뭐고를 떠나, 점수만 잘 나오면 죄다 '의치한약'을 선택하는 최근 대입의 획일적 양상도 징후적이다. 얼마 전 수업 중 친구들에게 의사가 되려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다.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아이들은 단 1초의 주저함도, 거리낌도 없이 1등급 성적이라고 답했다.
최상위권 아이들이 의대 진학에 목매단 이유는 오직 하나 돈을 오랫동안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선선히 말한다. 과거에는 '돈을 밝힌다'는 말은 웬만한 욕설보다 심한 험담이었는데, 아이들은 내숭 떨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으로 여긴다. 되레 요즘 같은 세상에 '슈바이처 같은 의사'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라고 말한다.
이뿐 아니다. 학교폭력이 일어나 마음에 큰 생채기가 났는데도 다짜고짜 합의를 요구하는 강퍅한 시대다. 합의를 원한다는 건, 그냥 돈으로 퉁치자는 뜻이다. 경찰과 변호사는 물론, 생채기 난 자녀의 부모조차 대놓고 합의부터 운운하는 세상이 됐다. 바야흐로 돈의, 돈에 의한, 돈을 위한 부박한 사회에서, 학교 교육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요컨대, 유행처럼 번져가는 아이들의 도박 중독은 학교 교육으로 바룰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아이들은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려는 건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공부의 재미도, 대학 교육의 가치도, 자아실현의 수단이라는 사회생활의 의의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에서 유일하게 '돈의 위세'만 남았다.
집이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아가는 공간이 아닌, 사고팔아 이윤을 남기는 상품이 된 현실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는 세상이다. 사회가 온통 돈, 돈, 돈 하는 판국에 '돈맛을 본' 아이들이 도박 중독에 빠져드는 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일탈을 나무라기 전에 어른들이 그들 앞에 정중히 사과하는 게 먼저라는 비애감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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