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싸가지" "유이 닮았는데 백치미"…승객 태운 택시 '라방' 논란

최서인 2024. 6. 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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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저녁, 지인들과 함께 벤티 택시에 탄 회사원 이민제(34·가명)씨는 택시기사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승객들의 대화를 송출한 걸 알게 됐다. "10분짜리 콜을 줬다"고 불만을 토로한 기사 A씨는 이씨와의 통화 후 "말투가 띠껍다"는 등 이씨를 비방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 7일 저녁, 지인들과 함께 택시에 탄 회사원 이민제(34·가명)씨는 택시기사가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걸 알아챘다. 차에서 내린 뒤 찝찝한 마음에 유튜브 채널을 확인해본 그는 라이브 영상에서 어렵지 않게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냈다.

동영상에는 택시기사가 이씨 일행을 태우기 전후 사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 승차 지점을 찾기 위해 이씨와 통화한 기사는 “말투가 띠껍다(기분 나쁘다). 안 태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씨를 내려준 후에는 “얘는 티를 안 낼 수가 없다. 말투가 너무 싸가지가 없었다” “귓방망이를 진짜(때리고 싶다)”고 했다. 택시에서 이씨가 지인들과 나눈 대화 내용도 그대로 송출됐다.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지난 10일 서울 강동경찰서에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30대 택시기사 A씨를 고소했다.


운전 중 휴대폰 조작…“예쁜 여자가 매너도 좋다”외모평가도


A씨는 운행 중에는 카메라를 전방으로 돌렸지만 택시에 타고 내리는 과정에서 일부 승객의 얼굴이 노출됐다. 대화를 들으면 의사, 헬스 트레이너 등 직업·직장을 추측할 수 있었다. 사진 유튜브 캡처

택시기사 A씨가 라이브를 진행한 곳은 약 2년 된 택시 관련 정보 채널이다. 여럿이 함께 운영하는 이 채널에는 신입 택시기사에게 건네는 조언, 매출을 높이는 영업전략 등 알짜 정보를 담은 영상이 올라왔다. 지난달엔 A씨의 라이브 방송도 시작됐다. 시청자들은 대부분 택시 업계 종사자로, 도로 상황을 공유하고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구독자는 2500여명, 라이브 영상 조회수는 5~600회 수준이다.

심야에 카카오T 벤티 택시를 운행하는 A씨는 차량 전면에 카메라를 거치한 뒤 승객이 없을 때는 자신의 얼굴을 비추고, 손님이 탑승하면 전면 카메라로 전환하는 식으로 방송을 운영했다. 빈차일 때는 채팅창에 올라온 질문들을 읽고 그에 답하며 시청자들과 소통했다. 손님을 태웠을 때는 신호 정지 시에 채팅을 쳐서 대화하기도 했다.

방송에는 손님들이 택시에서 나눈 대화가 그대로 노출됐다. 승객들의 대화에는 ‘XX호텔 210호’ ‘꿈마을 라이프 아파트’ 등 행선지가 담겼고 특정 기업 직원의 이름과 직급도 거론됐다.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목소리도 담겼다. 채팅창에서는 “젊은 게 좋구만 원나잇” “여자가 한 번 자고 안 만나려는 게 보인다”라며 호응했다.

숙박업소로 향하는 남녀의 대화도 그대로 노출됐다. 채팅창에서는 ″젊은 게 좋구만 원나잇″ ″사내 놈이 저렇게 술이 약해서 어떡하나″라는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사진 유튜브 캡처


시청자들과 대화하며 승객의 외모나 태도를 평가하기도 했다. “애프터스쿨 유이 닮았다. 엄청 미인인데 백치미가 있다” “역시 예쁜 여자들이 매너도 좋다. 상당히 예쁘다” “세련된 도시 엄마상이다”라는 등이다. 한 남성 승객과 실랑이한 뒤 “사회부적응자같은 느낌이 든다. 정상인 사이즈가 아니다”라며 “(모텔에) 갔는데 여자가 트랜스젠더였으면 좋겠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금전적·물리적 피해 없어…문제라 생각 안했다”


A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승객들에게 금전적·물리적 피해를 준 적이 없다”며 “제가 말한 내용이 불편할 수는 있지만 큰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승객의 대화 내용을 노출한 데 대해서는 “라이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 보니 개선해나가는 중이었다”며 시청자들에게 비슷한 지적을 받고 며칠 전부터는 마이크를 끄기 시작했다고 해명했다. 현재 유튜브 채널의 라이브 영상은 모두 내려간 상태며, 택시 내 라이브 역시 중단됐다.

택시를 운행하며 라이브 방송을 하는 건 A씨만은 아니다.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에는 ‘택시 소통’ 방송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다만 이같은 행위는 도로교통법 위반이다. 도로교통법 제49조 제1항 10호는 운전 중 휴대폰 조작을 금지한다고 규정하며, 11호에서는 영상 재생 장치를 표시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교통 전문 최충만 변호사는 “운전자가 볼 수 있는 위치에 영상을 표시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시청과 다를 바 없으며 불법이다. 승용차 기준으로 범칙금 6만원 대상이고 벌점도 15점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승객들의 정보를 노출하는 것 또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 타고 내리는 모습이 찍혔을 경우 몰카에 준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택시회사 차고지에 카카오모빌리티의 택시 '벤티' 차량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가 타인들 간의 대화를 녹음할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필요성이나 긴급성 없이 타인의 얼굴을 노출하는 것 역시 초상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A씨와 계약을 맺은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운영정책 위반 및 위법 소지가 있는 사안이라고 판단해 제재를 적용했다. 해당 기사도 문제점을 인지 후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임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어 “재발 방지를 위해 기사들에게 운행 중 동영상 시청과 촬영을 자제하도록 안내하고 운영 정책, 서비스 교육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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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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