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수제비, 노래, 쌈밥... 우린 매일 승리하고 있다

박은영 2024. 6. 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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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천막 소식 47일차] 천막의 소중한 일상이 강을 지키는 힘

[박은영 기자]

▲ 강에 놀러온 아이들 고등학생 친구들 세명이 강에 놀러와 쉬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그냥 놀러 왔어요~"

세종보 천막농성장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세 명의 학생이 쭈뼛거리면서 강변에 나타났다. 교복에 가방을 멨다. 강변에 가서 물수제비를 뜨다가 다리 밑 그늘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헤헤거리는 게 영락없는 아이들이다. 아빠 낚싯대를 가져와서 놀다가 부러뜨렸는데, 그래도 좋단다.   

농성장에 있던 임도훈, 이경호 활동가가 물수제비 뜨는 비법을 전수했다. 10여회를 튀기며 바로 앞 물웅덩이를 가로지르는 납작한 돌멩이. 아이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교복을 입고 나란히 앉아 강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여기, 금강에서는 언제든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보고 싶다. 보에 물을 채운다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세종보가 재가동되면 '위험지역' 팻말이 곳곳에 꽂힐 것이다. 이곳은 물로 채워져 접근금지의 강이 될 것이다. 자연과 접하면서 놀 수 있는 아이들이 평화로운 일상이 빼앗는 일이다. 이처럼 쓸데없고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천막농성의 일상①] 산 강의 증인인 세종시민들
 
▲ 세종시민께서 사온 생수 생수 두 박스를 들고 온 세종시민은 산 강의 증인이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생수를 두 박스 가지고 왔는데 이게 필요하실지…"

인근 아파트 첫 입주 때부터 살았다며 세종시민 한 분이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생수를 사 왔는데 필요하면 놓고 가겠다"며 수줍게 물어보시기에 감사하게 받았다. 그분에게 찾아오신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의 집에서 녹색 천막이 보였단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지?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언론 보도를 통해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첫 입주 때면 세종보 수문이 닫혀 있을 때였다. 당시 금강 상황이 어땠는지를 묻자 표정부터 일그러졌다. "똥물"이었단다. "냄새가 나서 아주 살 수 없는 지경이었다"면서, "지금 이렇게 강이 좋은데 왜 다시 닫는지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흘러가는 강이 보기도 좋고 냄새도 안 나고 이렇게 가까이서 새소리도 들을 수 있는데 도대체 무슨 심보로 다시 보 수문을 닫으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살아있는 강을 본 이들은 모두 증인이다. 죽은 강이 어떻게 살아나는지를 목격한 이들은 모두 알고 있다.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 말이다. 아무리 세종보를 두고 이수니 치수니를 떠들어대도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천막농성장의 일상②] 노래의 힘, 강물처럼 흐르는 노래
 
▲ 노래하는 얼가니새  <도요새>를 열창하는 모습
ⓒ 문성호
"도요~ 도요~ 도요새~"

<도요새>는 천막농성장의 인기곡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사무처장이 <김병기의 환경새뜸>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로 진행되는 '슬기로운 천막생활'에서 한 번 불렀다가 큰 호응을 얻었다. 가수처럼 부르는 건 아니지만 많이 알려졌나 보다. 천막농성장에 온 이들이 혼자서 흥얼거리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새만금 갯벌을 지키려고 나선 이들 사이에 구전되던 노래인데, 고규태 시인이 작사하고 노래를 통해 민주화 운동을 한 범능 스님이 작곡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새만금 개발이 결국 천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바다와 갯벌을 파괴하는 일임을 되새기게 된다. 많은 개발사업 속에서 싸우는 활동가, 시민들에게 노래는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된다. 

처음 우리를 감동시켰던 <흘러라 강물아>가 공식 주제가가 된 후로 수많은 노래들을 불렀다. 밀양송전탑투쟁에 대한 답가, 농성장을 찾는 노동자 동지들을 위해 불렀던 <노래의 꿈>까지 농성장을 찾는 이들 모두 함께 버틸 수 있는 힘을 노래를 통해 얻고 다짐했다. 노래는 소중한 일상이자 힘이다. 천막농성장에 오면 노래가 강물처럼 흐르고, 강물은 노래처럼 흐른다.

[천막농성장의 일상③] 우리는 매일 승리하고 있다
 
▲ 세종보 재가동 중단 천막농성장 천만농성으로 이어지도록, 강이 흐르도록 계속 끈질기게 버텨나갈 것이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뭐 필요한 거 말해줘요."

천막농성장에 오는 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다. 농성장에 도착하기 전에 전화부터 해서 물어본다. 고맙다. 하지만 사실 물에 잠길 각오로 농성천막을 쳤기에 지금 있는 것도 비워내야 할 판이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다. 사실 천막에 가득 채워야 할 건, 지금처럼 금강이 계속 흘러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농성이 장기화되더라도, 지치지 않고 이어지는 연대의 발길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그 마음이 채워져서 우리는 47일 동안 매일매일 승리했다. 환경부가 당초 계획했던 지난 5월 1일 담수 목표가 계속해서 뒤로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3차 계고 없이 2차 계고 일자가 종료되면 고발 조치하겠다던 세종시도 고발을 미루고 있다. 이런 관료들의 뒷걸음질이 우리 승리의 징표이다.  
 
▲ 사랑의 도시락 틈만 나면 싸오시는 김은실님의 사랑의 도시락
ⓒ 박은영
 
이런 승리는 농성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국의 환경단체 활동가만이 아니라 세종시민, 정치인, 노동단체, 종교단체들의 이어지는 발길이 오늘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런 작은 승리가 매일매일 계속 쌓인다면 우리는 윤석열 정권이 금강을 망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 수만 년 동안 형성된 자연의 물길을 5년짜리 오만한 정권이 가로막는 것을 물리칠 수 있다.  
  
오늘 저녁은 쌈밥이다. 매일같이 정성껏 저녁을 준비해 오고 있는 김은실님이 메뉴를 정해 한 보따리 싸왔다. 싱싱한 상추와 삶은 양배추에 따끈한 밥을 얹고, 그 위에 쌈장을 올려 싸 먹는 밥맛이 일품이다. 쌈장에 찍어 먹는 고추와 오이는 더할 나위 없는 밑반찬이다. 오래전 우리 선대의 선대 때부터 이어져 오는 강변 풍경이다. 이걸 우리 미래 세대들에게도 대물림해야 하는 건 아닐까.

쌈장에 고추를 찍어 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보에 막힌 강을 호수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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