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수제비, 노래, 쌈밥... 우린 매일 승리하고 있다
[박은영 기자]
▲ 강에 놀러온 아이들 고등학생 친구들 세명이 강에 놀러와 쉬고 있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세종보 천막농성장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세 명의 학생이 쭈뼛거리면서 강변에 나타났다. 교복에 가방을 멨다. 강변에 가서 물수제비를 뜨다가 다리 밑 그늘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헤헤거리는 게 영락없는 아이들이다. 아빠 낚싯대를 가져와서 놀다가 부러뜨렸는데, 그래도 좋단다.
농성장에 있던 임도훈, 이경호 활동가가 물수제비 뜨는 비법을 전수했다. 10여회를 튀기며 바로 앞 물웅덩이를 가로지르는 납작한 돌멩이. 아이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교복을 입고 나란히 앉아 강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여기, 금강에서는 언제든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보고 싶다. 보에 물을 채운다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세종보가 재가동되면 '위험지역' 팻말이 곳곳에 꽂힐 것이다. 이곳은 물로 채워져 접근금지의 강이 될 것이다. 자연과 접하면서 놀 수 있는 아이들이 평화로운 일상이 빼앗는 일이다. 이처럼 쓸데없고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 세종시민께서 사온 생수 생수 두 박스를 들고 온 세종시민은 산 강의 증인이었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인근 아파트 첫 입주 때부터 살았다며 세종시민 한 분이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생수를 사 왔는데 필요하면 놓고 가겠다"며 수줍게 물어보시기에 감사하게 받았다. 그분에게 찾아오신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의 집에서 녹색 천막이 보였단다.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지?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언론 보도를 통해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첫 입주 때면 세종보 수문이 닫혀 있을 때였다. 당시 금강 상황이 어땠는지를 묻자 표정부터 일그러졌다. "똥물"이었단다. "냄새가 나서 아주 살 수 없는 지경이었다"면서, "지금 이렇게 강이 좋은데 왜 다시 닫는지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흘러가는 강이 보기도 좋고 냄새도 안 나고 이렇게 가까이서 새소리도 들을 수 있는데 도대체 무슨 심보로 다시 보 수문을 닫으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살아있는 강을 본 이들은 모두 증인이다. 죽은 강이 어떻게 살아나는지를 목격한 이들은 모두 알고 있다.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 말이다. 아무리 세종보를 두고 이수니 치수니를 떠들어대도 흐르지 않는 강은 강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 노래하는 얼가니새 <도요새>를 열창하는 모습 |
ⓒ 문성호 |
<도요새>는 천막농성장의 인기곡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사무처장이 <김병기의 환경새뜸>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로 진행되는 '슬기로운 천막생활'에서 한 번 불렀다가 큰 호응을 얻었다. 가수처럼 부르는 건 아니지만 많이 알려졌나 보다. 천막농성장에 온 이들이 혼자서 흥얼거리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새만금 갯벌을 지키려고 나선 이들 사이에 구전되던 노래인데, 고규태 시인이 작사하고 노래를 통해 민주화 운동을 한 범능 스님이 작곡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새만금 개발이 결국 천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바다와 갯벌을 파괴하는 일임을 되새기게 된다. 많은 개발사업 속에서 싸우는 활동가, 시민들에게 노래는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된다.
처음 우리를 감동시켰던 <흘러라 강물아>가 공식 주제가가 된 후로 수많은 노래들을 불렀다. 밀양송전탑투쟁에 대한 답가, 농성장을 찾는 노동자 동지들을 위해 불렀던 <노래의 꿈>까지 농성장을 찾는 이들 모두 함께 버틸 수 있는 힘을 노래를 통해 얻고 다짐했다. 노래는 소중한 일상이자 힘이다. 천막농성장에 오면 노래가 강물처럼 흐르고, 강물은 노래처럼 흐른다.
▲ 세종보 재가동 중단 천막농성장 천만농성으로 이어지도록, 강이 흐르도록 계속 끈질기게 버텨나갈 것이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천막농성장에 오는 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다. 농성장에 도착하기 전에 전화부터 해서 물어본다. 고맙다. 하지만 사실 물에 잠길 각오로 농성천막을 쳤기에 지금 있는 것도 비워내야 할 판이다. 그래서 부족함이 없다. 사실 천막에 가득 채워야 할 건, 지금처럼 금강이 계속 흘러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농성이 장기화되더라도, 지치지 않고 이어지는 연대의 발길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 사랑의 도시락 틈만 나면 싸오시는 김은실님의 사랑의 도시락 |
ⓒ 박은영 |
이런 승리는 농성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국의 환경단체 활동가만이 아니라 세종시민, 정치인, 노동단체, 종교단체들의 이어지는 발길이 오늘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런 작은 승리가 매일매일 계속 쌓인다면 우리는 윤석열 정권이 금강을 망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 수만 년 동안 형성된 자연의 물길을 5년짜리 오만한 정권이 가로막는 것을 물리칠 수 있다.
오늘 저녁은 쌈밥이다. 매일같이 정성껏 저녁을 준비해 오고 있는 김은실님이 메뉴를 정해 한 보따리 싸왔다. 싱싱한 상추와 삶은 양배추에 따끈한 밥을 얹고, 그 위에 쌈장을 올려 싸 먹는 밥맛이 일품이다. 쌈장에 찍어 먹는 고추와 오이는 더할 나위 없는 밑반찬이다. 오래전 우리 선대의 선대 때부터 이어져 오는 강변 풍경이다. 이걸 우리 미래 세대들에게도 대물림해야 하는 건 아닐까.
쌈장에 고추를 찍어 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보에 막힌 강을 호수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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