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극장, 이렇게 소중한데 왜 보전 못하나"
[이선필 기자]
▲ 조선인이 세운 국내 최초의 극장인 애관극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2021)를 연출한 윤기형 감독. 올해 그는 인천 내 극장의 역사를 다룬 도서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
ⓒ 이선필 |
무려 130년 역사에 그 원형이 거의 바뀌지 않고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극장이 있다. 국내 최초 극장, 정확히는 조선인이 세운 현존하는 극장 중 가장 오래된 애관극장을 아는 사람은 여전히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1895년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1921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뒤 현재까지 인천 중구 경동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중심의 산업구조, 팬데믹 여파로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인천시에서 공공매입을 추진할 것으로 보였으나 답보상태다. 2024년 6월 현재 애관극장의 미래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2021년 다큐멘터리 영화 <보는 것을 사랑한다>와 올해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라는 책을 발표한 윤기형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인천 토박이로 애관극장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는 그는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과 함께 지속 운영이 가능한 방법을 모색해왔다. 인천시에서 공공매입을 추진한다고 알려졌지만 수년째 답보상태다.
"그저 지방의 낡은 극장일 뿐이라고?"
윤기형 감독조차도 애관극장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다고 한다. 유년 시절 해당 극장을 종종 간 기억이 있지만,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극장이라는 사실은 2015년 경에야 기사로 처음 알게 됐다고. 광고업을 하는 그는 그때부터 여러 자료를 찾아봤다. 애관극장에 대한 짧은 다큐조차 없는 걸 알게 된 그는 사비를 털어 지금의 다큐멘터리를 직접 만들게 된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영화에도 잠깐 나오지만, 여러 어려움을 딛고 2대째 해당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탁경란 대표는 혹시나 극장 운영권이나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길까 봐 언론 노출을 극도로 피해왔다.
"이미 몇몇 감독들이 포기했더라. 부모님 댁과 애관극장이 가까워서 갈 때마다 제 소개를 하고 인사를 드렸다. 6개월 만에 촬영 허락을 받았지. 처음엔 이 극장 존재 자체가 신기해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정작 이런 소중한 곳을 몰랐기에 개항과정과 그 이후를 공부하는 게 재밌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애관극장 다큐가 있는 줄도 모르실 것이다. 특히 젊은 분들은 그저 지방의 낡은 극장으로 인식하고 있더라. 저처럼 몰랐던 걸 알게되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자료에 따르면 애관극장은 1927년 르네상스식 신축된 이후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2004년 1개관 (400석)에서 5개관 800석 규모로 증축할 때도 본 건물을 허물지 않고 옆 건물을 매입해 증축하는 방식을 택했다. 건축사적으로도 그 가치가 큰 셈이다.
"유일무이한 곳이다. 오랜 극장 중 남아있는 광주극장도 소중한 곳인데, 보전 면에선 애관극장을 따라올 순 없다. 서울의 대한극장은 1관 2000석 짜리를 허물고 멀티플렉스화했잖나. 단성사도 보면 멀티플렉스 극장이 들어섰다. 이런 걸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다. 광주극장을 제외하고 전국의 오랜 역사가 있는 가치 있는 공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애관극장을 보전 못 할 이유가 없는데 왜 그게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공공매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역사 문화적 가치는 있는데 건물적 가치는 없다고들 한다. 그리고 세금으로 왜 개인을 돕냐고들 하는데, 문화재라는 게 어떤 경우에 개인 걸 구매하기도 하잖나. 불에 타서 전소된 경우 새로 지어서 관리하기도 하고. 애관극장도 당연히 그 세월을 견디기 위해 일부 리모델링을 했지만, 원형의 것들이 대거 남아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본다."
▲ 애관극장은 현존하는 국내 최초 극장이라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개관 당시 건물 구조를 거의 바꾸지 않고 유지한 채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크다. |
ⓒ 윤기형 제공 |
"공공 기관 매입이 가장 좋은 해결책"
이런 마음들이 모인 덕일까. 2021년 영화가 처음 세상에 공개된 날 탁경란 대표 등 극장 운영 주체들은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몇 차례의 개축 과정을 거치는 와중에도 몇 명 안되는 직원들은 애정을 쏟았다. 9살 때 극장 앞에서 샌드위치를 팔던 고 이인갑(1921~2015)씨는 애관극장에서 86세까지 일했고, 국가에선 전국 극장을 모두 출입할 수 있는 증서를 수여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애관극장엔 칠순을 훌쩍 넘긴 전문 영사 기사가 근무 중이다.
"가진 걸 다 파는 한이 있더라도 애관만은 넘기지 말라"는 부친의 유언대로 탁 대표는 만성 적자인 극장을 운영 중이다. 외환위기 당시 경매로 넘어갔던 건물을 다시 매입하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쌓여가는 적자로 당장 건물을 매각해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게 윤기형 감독의 전언이었다.
"CGV에서 한 차례 매입 의사를 밝혔는데 그걸 또 거절하셨다. 운영만 보면 이미 한계 상황이지 않나 싶다. 처음엔 제가 떼쓰듯 계속 운영해달라 했지만, 돌이켜보면 주제넘은 말이었다. 대한극장도 간판을 내린다는데 사실 애관도 비슷한 상황이긴 한 것 같다. 탁 대표님은 기업이나 특정 개인에게 팔고 싶어하지 않아 하신다. 그랬다가 극장이 헐리기라도 하면 엄청 욕을 먹을 거라며 말이다.
인천시가 나서주면 참 좋은데 지지부진하다. 이젠 진정성이 없나 의심이 가기도 한다. 운영 방안을 가지고 오라는데 그건 매입하고 고민할 거리 아닌가. 당연히 시가 매입해도 적자는 나겠지. 근데 도서관 등 시민 편의 시설은 그럼 흑자를 바라며 운영할까. 매입만 시가 해준다면 활용방안은 어떻게든 나올 것이다. 복합문화공간으로 할 수도 있고. 매입만 이뤄지면 시민들이 어떻게든 도울 것이다. 영화 <시네마천국>을 보면 결국 극장이 허물어지며 주민들이 울잖나.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길 정말 바란다."
윤기형 감독은 여러 차례 암담하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집권당이 바뀌었음에도 애관극장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라는 게 윤 감독의 평이었다. 최근 원주시의 강행으로 무너져버린 원주아카데미 극장 사례를 들며 그는 "인천시민들도 다들 관심 가져주시고 보전해야 한다 목소릴 내주신다면 시에서 함부로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호소했다.
▲ 조선인이 세운 국내 최초의 극장인 애관극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2021)를 연출한 윤기형 감독. 올해 그는 인천 내 극장의 역사를 다룬 도서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
ⓒ 이선필 |
녹록지 않은 상황이지만 윤기형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했던 기적같은 경험을 나누며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누구나 저마다의 애관이 있다"던 한 출연자의 말처럼 최초의 극장에 얽힌 추억, 소중한 영화의 기억을 전했다.
"이 영화를 처음 기획했을 때만 해도 어떻게 진행하나 막막했는데 출연진 한분한분이 다들 다른 사람들이나 가볼 곳들을 소개해주셨다. 모든 게 연결돼있더라. 아마 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도서관이나 박물관이나 극장 등을 가면 다른 세상을 경험한 기억 말이다. 제겐 극장이 그랬다. 누나 손 잡고 낮에 들어갔다가 영화를 보고 나오면 밤이었다. 환상의 공간이었지.
영화를 싫어하는 분들은 거의 없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저마다 다르겠지만 극장에 대한 강렬한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그런 게 극장이다. 그것도 한국 최초의 극장이 우리 곁에 아직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 그 공간이 점점 사라져가는 걸 지켜보는 게 마음이 너무 아프다. 부디 인천 시민분들, 영화를 사랑하시는 분들이 이런 곳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사랑할 애(愛), 집 관(館)로 표기되던 애관극장은 시간이 지나며 보는 것(觀)을 사랑하는 곳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말처럼 보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응답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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