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놈" 고성에 욕설…법정 꽉 채운 200명의 노병들, 무슨 일
과거 베트남전에 파병됐던 노병 1200명이 “베트남 파병 용사 월급을 정부가 받아서 가로챘다”며 이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37부(부장판사 이상원)는 13일 베트남 전쟁 참전군인 및 상속인 총 1200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모두 기각‧각하했다.
“미국이 준 전투수당·전쟁준비금, 국가가 부당하게 챙겨” 주장
원고들은 1965년 10월부터 1973년 3월 사이에 베트남 전쟁에 파병돼 전투 임무를 수행했던 군인들이다. 이들은 베트남 파병 당시 미국이 파병군인 1명당 전투유지비를 연 1만 3000달러(월 1083달러)씩 책정해 지급했는데, 이걸 정부가 받아서 실제로 파병 군인들에게 지급한 건 월 116달러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국군을 파병하는 대가로 미국이 한국에 건넨 전쟁준비금 10억 달러의 경우도, 한국정부는 전쟁 준비에 실제로는 7500만 달러만 쓰고 나머지 9억 2500만 달러를 외환보유고로 비축해 부당이득을 취했다고도 주장했다.
이들은 과거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명한 결재 문서와 미국 의회 보고서 등을 근거로 삼았다. 1970년 미국 의회에서 베트남 파병의 금전지원과 관련한 청문회를 열었을 때, 당시 외무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건에서 ‘여론을 자극시킬 부분’이라며 주월한국군 장병에 대한 수당을 언급한 부분을 문제삼았다. “파병을 결정한 뒤 조건을 적은 ‘브라운 각서’에 파병 군인들에 대한 수당이 적혀있을 것”이라는 게 이들 노병들의 주장이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결산 보고서 중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위해 10억 달러를 사용했고 그중 9억 2500만 달러가 한국 외환보유액으로 비축됐다, 군인들에게 지급된 수준은 상당히 적었다’ ‘ 한국 정부는 미군이 한국군에 미군과 근접한 수준으로 제공한 급여에서도 이익을 취했다’는 내용도 근거로 제시했다.
“베트남 전쟁은 ‘국가비상사태’ 아냐, 전투수당 청구권 없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에게 ‘전투수당을 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인 전투수당지급청구권이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옛 군인보수법 17조는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전투에 종사하는 자에게는 전투근무수당을 지급한다’고 규정했다. 법원은 “이 규정에서 말하는 전시‧사변 및 국가비상사태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벌어진 일에 한한다”고 봤다. ‘국가비상사태’는 계엄을 선포하는 요건이기도 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이유다.
전투근무수당은 국가비상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위험한 근무에 투입되는 군인에게 보상을 하고 사기를 높이는 취지인데, 베트남 파병은 국가비상사태라기보단 고도의 정치적 결단으로 국익을 위해 한 전쟁이고, 대한민국이 위험에 처했다기보다는 스스로 전쟁의 주체였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베트남에서 생명‧신체의 중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전투 임무를 수행한 데 상응하는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면서도 “해외 파견 군인들에게는 별도 규정으로 합당한 보수 지급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원고들은 정부가 받아서 유용한 전쟁준비금도 나눠달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청구권이 없고, 설령 있다 해도 부당이득반환청구권‧국가배상청구권 모두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병 군인의 전투수당을 지급할 근거 법령을 만들지 않은 입법부작위에 대해서도 “기본급여 및 해외파견 근무수당 등을 별도로 받았고, 전투수당 지급 근거 법령을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입법부작위 불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이 부분은 지난해 헌법재판소 역시 “군인보수법 17조는 합헌이고, 베트남 파병 군인은 ‘해외파병수당’을 정해둔 규정이 있으므로 전투수당 지급 규정을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입법부작위로 인한 기본권 침해는 없다”며 기각‧각하했다.
선고 끝나고 30분간 법정서 고성… 재판부에 욕설도
이날 선고에는 베트남 파병을 갔던 노병들이 대거 참석했다. 민사 대법정의 방청석 206석이 꽉 찼고, 복도에 추가로 의자를 마련해두고 법정 문을 연 채 선고를 진행할 정도였다. 판결 요지를 재판장이 낭독하는 동안 노병들은 조금씩 불만을 보이다가, 선고가 끝난 직후엔 “대한민국이 도둑놈입니까”라며 고성이 나오는 등 법정이 혼란에 빠졌다. 한동안 소란이 지속되면서 다음 사건의 재판을 이어가지 못한채 재판부가 부득이하게 휴정하기도 했다. 결국 변호사가 “밖에 나가서 설명을 더 드리겠다”며 장내 정리를 하고서야 노병들은 법정을 비웠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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