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살포 때부턴 '오물' 뺐다…'휴지 풍선' 날린 김정은의 고민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부양으로 촉발된 긴장국면이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과 공개 입장에서도 미묘한 변화 기류가 감지됐고, 정부는 이를 감안해 비례적 원칙에 따라 대북 확성기 방송 송출을 조절했다. 일시적으로나마 상황 관리 국면으로 전환한 '오물 풍선 살포사건'의 막전막후를 들여다봤다.
오물풍선, 위성 실패 분풀이?
북한은 지난달 28~29일 남측을 향해 오물풍선 350여 개를 부양했다. 김강일 북한 국방성 부상이 지난달 26일 "휴지장과 오물짝들이 한국 국경 지역과 종심 지역에 살포될 것"이라고 공언한 지 이틀 만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민간단체가 보낸 대북전단을 구실로 삼았지만, 일각에선 지난달 27일 군사정찰위성 발사 실패로 망신을 산 것에 대한 반발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일본 NHK 방송이 북·중 접경지역에서 촬영한 북한 위성 공중폭발 영상을 방영한 데 이어 우리 군 당국도 서북 도서 지역에서 경계 근무 중인 경비함정이 촬영한 폭발 영상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전 세계가 사실상 실시간으로 북한의 위성 실패 장면을 목격했다.
'감내하기 힘든 조치' 경고에도 아랑곳
북한은 1차 오물풍선 도발 이후에도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미사일 카드를 번갈아 꺼내 들며 소위 '하이브리드식 도발'을 이어갔다. 이에 정부는 31일 "북한이 멈추지 않는다면, 정부는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 1일 밤 오물풍선 720여 개를 2차로 부양했다. 오물 풍선은 서울·경기도·충청도·경상북도 등에 낙하했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는 오물풍선에 의해 차량 앞유리가 파손된 사진도 올라왔다.
이처럼 실제 피해가 발생한 데다 안보 불안까지 커지자 정부는 2일 '감내하기 힘든 조치'의 실행에 나서기로 했다. 외부정보 유입에 취약한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확정이었다. "우리 정부에는 이런 더러운 협박이 통하지 않는다"(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면서다.
조건부 중단…南에 책임 넘겨
그러자 북한은 약 5시간 만에 김강일 부상 명의의 담화를 통해 오물 풍선 부양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대북 전단을 살포할 경우 풍선 살포를 재개한다고 조건을 달았는데, 사실상 전단 살포의 주체인 민간단체를 설득하라는 압박이었다. 동시에 상황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게 넘기는 전술이었다.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재개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에 북한은 일종의 '치고 빠지기'를 구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는 안보 불안 조성으로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물 풍선에 대한 혐오로 정부가 조치에 나서란 여론이 빠르게 퍼진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부의 '유턴'은 없었다. 속전속결로 9·19 남북 군사합의의 효력을 모두 정지해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고, 전방 지역에서 다양한 군사훈련을 재개할 수 있는 길도 다시 열었다. 북한이 감행한 일련의 도발로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한 데다 하이브리드식 도발의 악순환을 선제적으로 끊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게 정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칼집서 나온 확성기…南北 강 대 강 대치
강 대 강 대치 속에서 북한은 지난 6일 새벽 우리 민간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하자 이를 빌미로 8~9일 3차 오물풍선을 부양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자신들의 엄포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한편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부각하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정부는 9일 6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실제로 재개하며 대응에 나섰다. 다만 추가 방송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에 달렸다며 다시 공을 북한으로 넘겼다.
북한은 이날 밤 김여정 명의의 담화를 통해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위협과 함께 4차 오물풍선 부양으로 맞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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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물풍선-확성기' 잠시 멈춤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비례적·단계적 대응 원칙을 밝힌 정부는 북한의 9~10일 4차 오물풍선 도발에도 추가 확성기 방송을 송출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풍선의 내용물이나 김여정 담화 등에서 북한의 미묘한 변화 기류가 감지된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김여정은 "우리는 빈 휴지장들만 살포했을 뿐 그 어떤 정치적 성격의 선동 내용을 들이민 것이 없다" "우리 대응은 정당하고도 매우 낮은 단계의 반사적인 반응에 불과하다"며 풍선을 살포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새로운 대응" 엄포를 놓으면서도 대북 전단과 확성기의 "병행"을 조건으로 단 것 역시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었다.
또 북한이 살포한 3~4차 오물풍선에는 퇴비 등을 넣어 보낸 1~2차 도발 당시와 달리 폐지, 비닐만 담겨 있었다. 도발을 지속하면서도 미묘하게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던 이유다. 이에 정부도 강도 높은 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오히려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일 통일부가 대북 전단과 관련,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서도 관련 민간단체와 간담회를 추진한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정부 안팎에선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차원이라면 굳이 간담회를 진행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들어 긴장 완화 필요성을 설명하는 식으로 우회적으로 자제를 요청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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