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가 앞당긴 英 민주주의 아이러니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그분의 침실에 들어가야 한다. 밤마다 정신 못 차리게 만들어야 해.”
그녀는 분에 넘치는 야망을 가진 인물이었다. 권력 핵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비루한 삶을 사는 것도 넌더리가 나던 차. 새로운 왕이 집권했을 때 그녀는 가문을 부흥시킬 기회를 포착한다. 아름다운 자녀를 왕의 성적 파트너로 바치려는 계획이었다. 자신의 자녀 중 가장 아름다운 아이를 골랐다. ‘조지’였다. 웬 남자 이름? 왕이 동성애를 탐닉한 인물,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였기 때문이다.
엄마의 치밀한 계획은 성공한다. ‘천사의 미모’를 가진 조지에게 제임스 1세가 푹 빠져버렸다. 16세기 초 잉글랜드의 국정은 모두 조지를 통해 이뤄진다는 소리가 들렸을 정도다. 잉글랜드판 비선 실세 국정농단이다.
“저 아름다운 청년은 누군가.”
제임스 1세가 사냥을 나갔을 때인 1614년, 먼발치에서 한 청년을 목격한다. 하얀 피부에, 빨간색 입술, 매우 탄탄한 근육의 팔다리. 누가 봐도 미남이었다. 제임스 1세의 눈은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신하가 대답한다. “이번에 새로 궁에 들어온 조지 빌리어스입니다.” 몇 차례 대화가 오고 간 후, 제임스 1세 곁에는 조지가 있었다. 그는 조지에게 푹 빠져버렸다.
우연한 사랑처럼 보이지만, 철저히 계산된 만남이었다. 조지의 어머니 매리는 잉글랜드 레스터셔 지방의 별 볼 일 없는 귀족 집안 빌리어스로 시집을 왔다. 타고난 야망가였기에 그녀의 눈은 언제나 수도 런던을 향해 있었다. 자식 중 빼어난 미모를 지닌 아들 조지를 적극적으로 교육시킨 이유다. 조지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 궁정 예법과 프랑스어, 펜싱 등을 익혔다. 런던의 궁전에 들어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교양’이었다.
궁정 일각에서는 빌리어스의 등장을 무척이나 반겼다. 당시 제임스 1세를 좌지우지하던 로버트 카(그 또한 남자)를 내칠 기회였기 때문이다. 궁정에서는 이미 ‘미남계’를 활용한 치열한 정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 어린 미남자 조지 빌리어스가 새로운 애인으로 등장한 것. 조지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한다. 왕의 지근거리에서 술을 따르는 ‘로열 컵 베어러(Royal Cup Bearer·왕실 고위직)’로 임명된 뒤, 왕의 침상을 전담하는 ‘젠틀맨 오브 베드챔버’까지 올랐다. 왕의 침실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어마어마한 특권이다. 제임스 1세가 조지를 얼마나 신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자녀이자 ‘아내’인 당신을 하느님께서 축복해주시길. 예수님에게 요한이 있다면, 나에게는 조지가 있습니다.”
조지가 제임스의 사생활을 관리하는 고위직에서 끝났다면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제임스 1세의 조지 사랑은 끝이 없었다. 1619년, 왕은 조지를 영국 제독으로 임명한다. 국정을 자기 동성 애인에게 맡긴 셈. 조지는 국정을 운영할 능력이 안 되는 인물이었다. 요직에 자기 사람을 앉히고, 부와 명예와 관련된 일은 자신이 나서서 차지했다.
잉글랜드의 모든 것이 조지의 손을 통해서만 이뤄졌다. 총리직부터, 마부직까지. 잉글랜드의 유명 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도 조지에게 줄을 선 덕분에 총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잉글랜드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들끓기 시작한다. 제임스 1세가 너무 많은 권력을 조지와 사유화하고 있어서였다. 이미 그가 잉글랜드 왕좌에 올랐을 때부터 시민들은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처녀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죽은 뒤 울며 겨자 먹기로 사촌인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잉글랜드에선 제임스 1세라고 불림)’가 왕좌에 앉았다. 그러나 그는 잉글랜드와 너무나 맞지 않은 인물이었다.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에서 나고 자란 제임스 1세는 처음부터 ‘왕권신수설’을 신봉했다. 왕은 신이 내린 자리기에 누구에게도 양보하거나 공유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잉글랜드는 의회 정치로 성장하고 있는 나라였다. 세금을 부과할 때도 의회의 허락이 필요했다.
제임스 1세의 종교도 문제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전통 속에서 자랐다. 반면 잉글랜드 국교는 성공회였다. 또 여전히 많은 시민이 교황을 비롯한 가톨릭을 신봉했다. 개신교도, 그것도 장로교도 왕이 즉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성난 가톨릭교도가 모여 화약 테러를 계획하기도 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주인공이 쓴 가면이 해당 테러 주도자 가이 포크스의 얼굴을 본떠 만든 것이다.
개신교도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청교도’ 세력도 그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제임스 1세의 방종한 궁정 생활이 ‘도덕’을 지고의 가치로 삼은 청교도들에게는 죄악 그 자체로 보였기 때문이다. 반발이 일 때마다 제임스는 강경책으로 시민을 대했다. 군주를 향한 반감은 불쏘시개처럼 쌓여가고 있었다. 거기에 동성 애인의 국정농단이라니.
“조지를 탄핵하라.”
의회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판단하고 조지 탄핵안을 올렸다. 제임스 1세 반응이 가관이었다. 탄핵안을 거절한 것도 모자라, 조지를 버킹엄 공작으로 임명한다. 공작은 왕 다음가는 ‘작위’. 잉글랜드 최고 권력자 자리에 조지를 올린 것이다.
그럼에도 조지 빌리어스의 생명은 길고 질겼다. 제임스 1세가 1625년 58세를 일기로 사망하고 아들 찰스 1세가 즉위했다. 찰스의 옆에 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그가 바로 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였다. 제임스 1세만큼이나 찰스 1세도 조지를 무척이나 신뢰했다. 새 시대를 염원한 잉글랜드 시민은 다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중의 분노는 임계점에 달했다. 정치로 풀지 못한 시민의 억눌린 압력은 결국 ‘직접행동’으로 표출됐다. 1628년 8월, 잉글랜드 포츠머스의 한 여관에서 조지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육군 장교 존 펠튼이 범인이었다. 명백한 고위 공직자를 향한 ‘테러’. 대중은 그러나 환호성을 질렀다. 잉글랜드 법원은 존 펠튼을 교수형에 처한 뒤 시체를 성에 걸었다. 시민들이 이내 모여 “존 펠튼”을 외쳤다.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네.”
조지의 죽음은 그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었다. 찰스 1세는 그의 암살 소식을 듣고 침실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슬픔에 잠겼다. 잉글랜드 전체가 조지의 죽음을 기뻐했지만, 찰스 1세만큼은 예외였던 셈. 그는 그만큼이나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암군이었다.
조지가 세상을 떠난 뒤, 20년하고도 6개월이 지난 1649년 2월. 스산한 날씨, 사형장에 한 사내가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사내의 이름은 찰스 1세. 잉글랜드의 왕이었던 남자다. 흥분한 군중이 소리쳤다. “찰스 1세를 당장 처형하라.” 사형 집행인이 그의 머리를 내리친다.
올리버 크롬웰이 수장이 된 의회파는 왕당파를 제압하고 권력을 잡았다. 의회와 끝까지 불화한 찰스 1세는 결국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제임스 1세가 조지를 총애하면서 생긴 나비 효과다. 스튜어트 왕조가 한 미남에 의해 절멸 위기까지 몰린 것. 권력이 사유화됐을 때, 벌어진 비극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3호 (2024.06.12~2024.06.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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