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빵집 갈 때마다 불편한 마음, 이걸로 해결했어요

임은희 2024. 6. 1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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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건 쓰레기... 내가 텀블러와 행주를 매번 챙기는 이유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임은희 기자]

광화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궁'이나 '빌딩'이라고 대답하는데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 아이는 이렇게 외친다.

"광화문에 가장 많은 것은 바로 쓰레기라고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동네 산책을 나선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쓰레기다. 예쁘게 단장한 가게 주변에는 봉투에 담아 쌓아둔 쓰레기 더미가 있다. 쓰레기 수거 시간에 맞춰 내놓은 쓰레기더미 위로 행인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많다. 쓰레기 없는 광화문은 예쁜 곳만 찍은 사진들로 넘쳐나는 SNS에나 존재하는 환상에 가깝다. 

유명 맛집 근처도 예외는 아니다. 맛집 옆에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고, 쓰레기 더미 옆에서 음식을 구입하거나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을 매일 보고 있지만 적응이 어렵다. 마치 변기 위에 앉아서 밥을 먹는 기분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친환경 관련 행사를 진행하는 운영부스에는 관계자들이 사용하는 일회용 컵들이 잔뜩 쌓여 있다. 행사 종료와 함께 쓰레기가 될 코팅전단지, 플라스틱 부채 등 계절에 맞는 일회용품들이 가득하다.

날이 더워지면 무료로 플라스틱병에 든 생수를 배포하기도 한다. 행사의 의미나 규모에 관계없이 쓰레기를 줄이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광화문에 제일 많은 것 
 
▲ 광화문 일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쓰레기더미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광장, 서울시청 횡단보도 인근, 을지로입구역 주변의 쓰레기 더미, 정동길 행사장 주변) 행사장 쓰레기, 행인들이 버린 일회용품까지 더해져 거리마다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다. 매일 저녁 7시 이후에 청소차가 돌아다니며 수거하지만 다음날이면 비슷한 양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임은희
 
▲ 일회용품을 너무 쉽게 사용하는 모습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진행자들도 일회용 컵을 사용하던 개인컵 권장 행사, 환경 관련 행사가 끝나고 바닥에 버려진 담당자들의 이름표, 관람시간 동안 사용하고 버려진 영화관 쓰레기들, 청계천 행사장 탁자마다 놓여있던 플라스틱 생수병) 정해진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모아야 하는 일시적 행사에서 더 많은 일회용품을 사용한다. 지속가능성보다는 효율성을 우선으로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환경 관련 행사에서도 한 번 사용하고 버려진 일회용품을 쉽게 볼 수 있다. 극장에서 팝콘을 사는 사람들은 많지만 팝콘통을 들고 극장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사람들이 사용한 일회용기는 모두 쓰레기로 남는다.
ⓒ 임은희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사라지면 도심에는 경찰, 환경미화원, 고양이들 그리고 쓰레기가 남는다. 청소차가 쉴 새 없이 실어가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다시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들. 거의 매일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무섭기까지 하다.

분리수거나 재활용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버린 것을 100% 다시 사용할 순 없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일회용품을 쓰고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할텐데 너무 쉽게 쓰고 쉽게 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어봤자 40년 정도를 살다 세상을 떠날 중년의 나는 괜찮지만 나의 아이들을 포함한 남아 있을 사람들은 쓰레기가 지금보다 더 많은 땅에서 살아야 하니 전혀 괜찮지 않을 것이다.

쓰레기를 지금보다 덜 만들기 위해 다회용품 사용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가방에 자리가 있을 때만 챙기던 텀블러를 이제 꼭 챙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많은 카페에서 텀블러를 환영했다. 버블티처럼 특수한 음료들은 텀블러 사용을 불편하게 생각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난 5월, 우리 가족이 텀블러로 마신 음료는 총 27잔이었다.
 
▲ 다회용기 사용하기 1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텀블러에 음료 받기, 다회용기 수거함, 실리콘빨대, 다회용 빨대들
ⓒ 임은희
이중 24잔은 텀블러를 이용했지만 텀블러가 없었던 3일은 사용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일회용 컵이 아닌 리유저블 컵(카페에서 판매하는 수거 가능한 다회용 컵)을 판매하는 매장을 찾았고 보증금을 낸 후 다회용 컵을 받아 3회 사용하고 반납했다.

우리가 만든 일회용 컵 쓰레기는 0개였다. 일회용 빨대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실리콘/유리/스테인리스 빨대를 구비해 두고 상황에 맞게 골라 사용했다. 외출 시에는 방수 주머니에 실리콘 빨대를 담아 가방에 챙겼다.

아이들은 음식을 먹으며 옷에 흘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물티슈나 일반휴지를 사용했었다. 고민 끝에 천으로 만든 다회용 휴지를 쓰기로 했다. 실내용과 외출용을 구입하여 빨아 쓰기 시작하자 일회용 휴지 사용량이 크게 줄었다. 카페나 식당의 냅킨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구입할 땐 맛이나 가격보다 음식의 질과 쓰레기의 유무에 초점을 맞췄다. 같은 조건이라면 무포장 또는 유리병 같은 다회용기에 담긴 상품을 선택했다. 빵은 깨끗한 행주를 깐 바구니를 가져가 담았다. 빵집 쟁반에 쓰는 유산지가 늘 아까웠는데 행주를 챙겨가니 유산지와 포장지를 아낄 수 있었다.

와플은 생크림이 묻어도 세척이 쉬운 실리콘 용기를 활용했다. 와플 포장지로 사용하는 종이, 비닐봉지, 냅킨까지 아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과 디저트 가게를 고를 때는 일회용품보다는 다회용품 사용을 권장하거나 용기 회수를 실천하는 가게를 우선순위에 두었다.

영화관람을 위해 극장을 찾을 때도 용기를 챙겨가 팝콘을 담아달라고 부탁하고, 텀블러에 음료를 담았다. 영화가 끝나면 극장에 버리고 오는 쓰레기가 늘 마음의 짐이었는데 가방에 담은 반찬통과 텀블러의 무게만큼 마음은 가벼워졌다. 
 
▲ 다회용품 사용하기 2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무포장 빵(라운드앤드), 다회용기에 담긴 푸딩(푸링), 천으로 만든 휴지(소락), 무포장 와플(와플대학)
ⓒ 임은희
깨끗한 광화문을 물려주고 싶다

아이들과 자주 지나가는 무교로 어느 골목은 작년 7월까지 늘 쓰레기천국이었다 (관련기사: 광화문 오가는 '범인들' 보십시오, 할 말이 없습니다).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는데 오마이뉴스 기사가 나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쓰레기가 줄어든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 오늘은 쓰레기가 하나도 없어! 어른들이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담배꽁초도 주머니에 담아 가나 봐!"

버리는 사람이 없어서 거리가 깨끗해지고 있다고 믿는 아이에게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진 않았다. 아니, 어쩌면 아이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많은 행인들이 여전히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은 꽁초를 집에 챙겨가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아이는 깨끗해진 무교로를 지날 때마다 어른들의 다회용품 사용 때문인 것처럼 기뻐한다. 
 
▲ 무교로의 변화 (왼쪽) 2023년 7월에 촬영한 무교로 골목 (오른쪽) 2024년 6월 촬영한 무교로 골목 / 초등학생 아이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쓰레기의 양을 확인하는데 쓰레기가 많은 날에는 실망하고 적은 날에는 기뻐한다.
ⓒ 임은희
 
아이의 바람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길거리 행사에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들고 급수대에서 물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음식을 다 먹은 후 도시락통을 가방에 넣는 모습, 일회용 휴지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는 모습이 일상인 광화문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무거운 가방을 들고 외출한다. 
《 group 》 육아삼쩜영 : https://omn.kr/group/jaram3.0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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