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놓고 재계 반발하자 등장한 이복현의 '배임죄 폐지론'

김남준 2024. 6. 1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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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가 기업 지배구조 문제로 논란을 확대하고 있다.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회사 경영진의 주주 이익 보호를 상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재계가 반발하고 있어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를 묶어 논의하자며 일종의 절충안을 내놨지만, 반발 움직임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사의 주주 보호 법제화 놓고 논란


논란의 핵심은 상법 382조 3항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이른바 ‘이사 충실 의무’ 조항이다. 상법 개정을 요구하는 쪽은 여기에 회사뿐 아니라 ‘주주’까지 충실 의무 대상으로 포함하자고 주장한다. 이럴 경우 회사 경영진이 주주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하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어, 강력한 주주 보호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차준홍 기자
주가 부양을 위해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간 기업 경영이 대부분 지배 주주 의사에 따라 이뤄지다 보니 소수 주주의 이익이 침해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0년 LG화학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물적 분할 돼 이른바 ‘쪼개기 상장’이 되자 LG화학 주주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당시 이용우 더불민주당 의원은 이런 문제를 막겠다며 상법상 이사 충실 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 개념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상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후 소관 부처인 법무부가 ‘이사 충실 의무’ 확대를 반영한 상법 개정은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면서 논란은 다소 사그라졌었다. 하지만 지난 9일 윤 대통령이 ‘경제이슈점검회의’에서 “투자자 이익 보호할 수 있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하면서 논란이 재점화 됐다. 정부는 이달부터 공청회 등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재계, “주주 이익 모호 형사처벌에 ‘경영 위축’”


재계에서는 ‘주주’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 같은 주주라도 이해관계에 따라 생각하는 이익이 다를 수 있는데, 이사진에게 법으로 이를 모두 지켜야 한다고 강제하면 혼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렇게 보호해야 할 주주의 이익이 무엇인지는 소송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소송의 남발과 그에 따른 경영 위축도 문제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상법 위반 시 배임죄 등이 적용돼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박경민 기자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3~7일 153개 국내 상장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상법상 충실의무가 확대하면 ‘인수합병(M&A) 계획을 재검토(44.4%)’ 하거나 ‘철회·취소하겠다(8.5%)’고 답변한 기업이 절반 이상(52.9%)에 달했다. 또 응답 기업 66.1%는 상법 개정 시 국내기업 전체 M&A 모멘텀이 저해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제조업 중심인 한국은 산업 구조상 설비 투자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기업 이익을 주주를 위한 배당 확대보다 미래를 위한 재투자로 돌리는 것이 더 필요할 때가 많다”면서 “하지만 이사 충실 의무가 주주로까지 확대하면, 일부 소수 주주 등의 요구에 경영 판단이 휘둘릴 수 있다”고 했다.


금감원장 “상법 개정 배임죄 폐지 묶어 논의해야”


상법 개정을 놓고 반발이 따르자, 금감원장은 상법상 이사 충실 의무 확대와 배임죄 폐지 논의를 묶어서 해야 한다는 일종의 절충안을 내놨다. 이사 충실 의무 확대로 형사처벌 가능성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점을 막기 위해, 배임죄 자체를 폐지하거나 일부 수정해 구체적 면책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감원에서 상법 개정 등 이슈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이 원장은 ‘상법 개정 이슈’ 관련 기자 브리핑에서 “배임죄로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과도하게 형사처벌 대상이 되다 보니 소액주주 보호가 다소 미흡할 경우 배임죄로 귀결되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형사 법정이 아닌 이사회에서 균형감을 갖고 (경영) 결정을 하도록 하고, 만약 다툼이 있다면 민사 법정에서 금전적 보상 등으로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 상법상 이사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의 이익'을 추가하되, 이를 어겼을 때 형사처벌이 아닌 민사로 해결하게 하자는 취지다.

또 이 원장은 “형법상 배임죄를 건드리기가 쉽지 않다면,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확히 하고 상법상 규정된 특별배임죄만이라도 폐지하는 것들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러한 방안은 정부 내에서 조율되지 않은 금감원의 개별 입장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회사의 이익하고 주주의 이익이 다른 경우가 실제로 있기 때문에 이사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고려하자는 것인데 그러려면 배임죄 위반으로 인한 형사처벌 가능성을 없애줘야 한다”면서 “이와 관련해 정부 내에서 어떤 논의를 한 건 아니지만, 이 원장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도 “큰 틀에서 일반 주주를 보호하자는 취지는 정부 내 공감대가 있다”면서 “다만 상법 개정을 해야 할지, 한다면 어느 방법 어느 수준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했다.


“주주 보호, 개별 사안 구체적으로 정해야”


다만 재계에서는 이 원장 의견대로 배임죄를 폐지하더라도 상법 개정에 따른 부작용이 완전히 사라지긴 힘들다고 지적한다. 형사처벌이 면제해도 민사 소송 등을 통해서 기업을 압박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상법을 통한 소주 주주 이익의 보호는 좀 더 구체적 사례에 맞게 더 명확히 해야 경영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면, 해석에 따른 혼란을 방지할 수 없어서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만약 쪼개기 상장이 문제라고 하면 쪼개기 상장과 관련한 제도를 구체적으로 고치는 것이 맞다”면서 “주주 보호를 이사 충실 의무로 광범히 하게 정하면, 결국 이에 따른 혼란을 기업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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