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13살 사춘기 청소년, '인사이드 아웃2'의 승부수
[원종빈 기자]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라일리'(켄싱턴 톨먼)의 행복을 위해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바삐 일하는 '기쁨'(에이미 포엘러), '슬픔', '버럭', '까칠', '소심'. 그들은 라일리가 아이스하키 대회 결승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다음날 떠날 하키 캠프에 대한 걱정 없이 그녀가 잠들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 후 기쁨은 좋은 기억만을 골라서 라일리의 신념과 자아가 만들어지는 '신념 저장소'에 배치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음날 새벽 예기치 못하게 잠에서 깬다. 라일리의 사춘기가 시작돼 본부가 갑작스러운 리모델링에 돌입했기 때문. 이에 더해 새로 등장한 감정 '불안'(마야 호크), '당황', '따분', '부럽'이는 연신 최악의 상황과 미래만을 가정하며 기쁨과 충돌한다. 갈등이 이어지자 불안은 결국 기존 다섯 감정을 본부에서 내쫓아 버린다. 그렇게 기존 감정들이 본부로 돌아가려 애쓰는 사이, 라일리는 점점 불안한 사춘기에 빠져든다.
▲ <인사이드 아웃 2> 스틸컷 |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2015년에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은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그전까지 픽사는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침체기였다. 일상에서 잊고 지내던 가치를 일깨우는 픽사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찾아보기 힘들었으니까. <토이 스토리 3> 이후 개봉한 <카 2>, <몬스터 대학교> 등은 속편인데도 미묘한 평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이드 아웃>은 픽사가 건재할 뿐만 아니라, 픽사만의 영역을 개척했음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 꿈, 무의식, 기억처럼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해서 독창적인 비주얼을 선보였고, 유년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를 기점으로 <인사이드 아웃>은 픽사의 교과서가 됐다. <소울>, <엘리멘탈>만 해도 <인사이드 아웃>의 콘셉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기쁨과 불안이 만나 '나'를 빚다
▲ <인사이드 아웃 2> 스틸컷 |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인사이드 아웃 2>의 핵심은 사춘기다. 13살 청소년은 여러 변화를 겪는다. 부모님과 난 데 없이 싸우기도 하고, 과거와 다른 취미를 갖거나 머리 스타일을 바꾸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미래를 걱정하기도 한다. 순수한 어린아이가 비아냥거리는 법도 터득한다.
극 중 기쁨과 불안의 대립은 사춘기의 혼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쁨은 현상 유지가 목표다. 라일리가 즐겁고 재밌는 기억만 간직한 채 지금 모습 그대로이길 바란다. 안 좋은 기억은 무의식 저편으로 던져 버리고, 라일리의 자아를 좋은 기억으로만 채우려 한다. 하지만 새 친구와 환경을 마주한 라일리에게 기쁨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쁨의 지시를 따르자 하키 캠프에서 선배들에게 찍히고, 코치에게 한 소리를 듣기만 하니까.
이에 감정 컨트롤 본부는 이제 불안에게 넘어간다. 불안은 하키 캠프나 고등학교를 비롯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만을 걱정한다. 부정적인 예상과 미래만 라일리에게 보여주면서 라일리를 다그친다. 처음에는 불안이의 계획이 통하는 듯하다. 라일리는 롤모델인 '밸'(릴리마르)의 눈에 들고, 선배들과 코치에게도 실력을 어필한다. 하지만 불안이 이어지면서 라일리는 친구들과 멀어지고, 자기 신념과 확신마저 잃어버린다.
하지만 기쁨도, 불안도 잘못은 없다. 이 모든 변화가 '나'를 찾기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니까. '신념 저장소'의 변화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기쁨이 가져다 놓은 기억만 가득하지만, 나중에는 불안이 가져놓은 기억이 더 많아진다. 끝내는 모든 기억이 한 데 뒤엉켜서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새로운 라일리의 자아를 만들어 낸다.
픽사는 이번에도 픽사했다
따라서 기쁨과 불안의 갈등은 결국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고찰이나 다름없다. 고유한 자아와 신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감정이, 그리고 모든 기억이 있는 그대로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좋은 기억과 안 좋은 기억 모두를 있는 그대로 곱씹어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성장한 것이라고.
그러니 기쁨의 비중과 역할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쁨이 단지 유치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불안하고 힘든 순간마다 과거의 기쁜 기억이 '나'를 지탱해 줄 테니까. 이는 결국 기쁨이 다시 감정 컨트롤 본부를 제어하는 이유다. 슬픔도 다른 감정만큼 중요하다는 전편의 메시지와 유사한 귀결이지만,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다.
라일리의 성장 서사는 성인 관객이 더 감동받는 대목일 수도 있다. 특히 20대나 30대 초반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 커 보인다. 대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발돋움하는 또 한 번의 사춘기를 거치는 시기에는 기쁜 일보다 우울한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사이드 아웃 2>는 각자의 사춘기를 되짚어 보고, 지금의 자기 상황도 투영하면서 위로를 받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라일리의 성장은 생각보다 더 거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밸이나 코치가 보는 나'보다 '내가 보는 나'가 더 중요하다고 깨닫는다. 그런데 이 교훈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유효하다. SNS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따르는 게 중요해진 현대 사회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즉, <인사이드 아웃 2>는 현대 사회가 나날이 불안 사회가 되어가는 이유까지도 예상치 못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 <인사이드 아웃 2> 스틸컷 |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이러한 스토리는 <인사이드 아웃 2>의 탄탄한 구조 덕분에 더 잘 전달된다. 아이스하키 규칙을 영리하게 이용한 수미상관 구성이 대표적이다. 아이스하키 반칙 중에는 마이너 페널티가 있다. 상대를 막기 위해 신체나 장비를 과격하게 쓰는 반칙으로, 이 반칙을 범한 선수는 2분간 페널티 박스로 퇴장당한다. 라일리는 영화 시작과 끝에 한 차례씩 마이너 페널티를 범한다. 영화는 이 순간을 활용해 라일리의 사춘기를 요약한다.
사춘기가 오기 전 라일리는 퇴장을 당해도 큰 걱정을 안 한다. 오히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경기에 다시 투입되기를 기다린다. 반면에 사춘기를 본격적으로 겪는 라일리는 다르다. 홀로 페널티 박스에 앉아서 극도의 불안함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러한 공황 상태를 겪었기에 라일리는 한 단계 성장한다. 자기의 단점, 부끄러운 과거, 잘못, 비밀까지도 자각하고 받아들이고 친구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용기를 비로소 낼 수 있다.
이에 더해 자칫 따로 놀 수 있는 라일리와 감정들의 플롯을 이어주는 가교도 메시지의 울림을 극대화한다. 라일리의 플롯은 그녀가 하키 캠프에서 새로운 선배와 친구를 만나며 겪는 변화가 핵심이다. 감정들의 플롯에서는 불안을 비롯한 새 감정이 기쁨과 슬픔 같은 기존의 감정과 만드는 여러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이때 <인사이드 아웃 2>는 라일리와 불안을 '후배'라는 위치에 동기화하면서 유기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다양한 상상력의 명과 암
구조를 탄탄히 잡은 후에는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꾸미려 애쓴다. 특히 <인사이드 아웃 2>는 시각 효과나 캐릭터가 전편만큼 신선할 수는 없으니, 화려함과 다양함으로 승부를 보는 듯하다. 이는 일장일단이 있다. 우선 전편보다 다채로워진 시각효과 자체는 인상적이다. 특히 사춘기의 특성에 걸맞게 라일리의 머릿속을 더 정교하게 리모델링하는 과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예를 들어 감정 컨트롤 본부는 사춘기가 되자마자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나는데, 이는 사춘기를 겪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또 라일리가 예전과 달리 비아냥거리거나 냉소하자 '의식의 흐름' 강은 거대한 폭포로 변하기도 한다. 이에 더해 상술한 신념 저장소부터 비밀을 간직한 금고 등 스토리텔링의 배경이 되는 새로운 장소의 등장도 눈길을 끈다.
기존 픽사 작품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시도도 흥미롭다. 금고에 갇힌 다섯 감정이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블루피', '파우치', '랜스 슬래시브레이드' 같은 2D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는 라일리의 과거를 상징하는 장면이자, 3D 애니메이션의 틀을 깨면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같이 안겨주는 순간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나 <장화신은 고양이 2>처럼 픽사 이외의 스튜디오에서 시도한 연출을 픽사스럽게 응용한 듯 보이기도 한다.
다만 다양한 아이디어가 단점으로 작용하는 대목도 있다. 바로 캐릭터다. 새로운 감정이 넷이나 튀어나오다 보니 응집력이 다소 부족하다. 불안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비중을 받은 캐릭터가 없다시피 할 정도다. 또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특성상 한정된 러닝타임 내에서 여러 캐릭터의 플롯을 다뤄야 하니 템포도 급해진다. 전편에서 빙봉이 사라지는 장면처럼 눈가에 물이 고이게 하는 완급조절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한계 혹은 가능성
이에 더해 사춘기를 다루는 영화라서 남는 아쉬움도 하나 있다. 사춘기의 변화 중 빼놓을 수 없는, 이성 관계에 대한 묘사가 없다시피 하다. 라일리가 밸을 좋아하는 것도 이성애든, 동성애든, 양성애든, 사랑에 관한 내용이라 보기는 어렵다. 롤모델에 대한 동경이자 새로운 우정에 관한 이야기에 가까우니까. 이는 아무래도 가족 단위 타깃 관객과 관람가를 염두에 둔 픽사와 디즈니의 한계가 아닌가 싶은 대목이다.
한편으로는 다음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라는 기대도 할 수 있다. 3편에서 다룰 이야기를 남겨두는 게 아닌가 싶으니까. 1편도 기쁨이 '고작 12살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라고 말하며 끝났지만, 2편에서 바로 13살이 되자마자 사춘기에 접어들었듯이. <인사이드 아웃 2>가 비록 전편만큼의 놀라움을 안겨주지는 못했지만, 형 못지않은 동생이기에 가능한 기대 혹은 상상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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