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오소리가 산다고요? 이상한 일이네요"
[박은영 기자]
▲ 아기오리들의 산책 ⓒ 대전충남녹색연합 |
"찰방찰방찰방~"
아침에 세종보 천막농성장 앞 여울에서 아기 오리들의 수영연습이 한창이다. 엄마오리를 따라 짧은 다리를 휘저으니 물결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너무 귀엽다며 소리쳤지만 아기 오리들은 앞으로 살아갈 생존을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 것일까. 강 위에서 한 생을 살아갈 아기 오리들을 바라보면서 강이 이대로 잘 흘러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초승달을 봤는데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건지, 달이 많이 차올랐다. 천막농성 46일 차, 달이 한번 온전히 차오르고 또 절반에 이를 만큼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만큼 천막 농성장의 결의도 차오르고 있다. 차오르는 달을 보고 있으니 늦은 저녁에 강바람을 쐬러 온 엄마와 아이가 강변으로 내려와 물수제비를 뜨고 돌탑을 쌓는다.
한 달 반, 여기에서 물수제비 뜨고 논 세종, 대전의 아이들만 200~300명이 될듯하다. 그 친구들이 흐르는 강을 생각하고 다시 찾았을 때 수문이 닫혀 호수 같은 강을 본다면, 다가갈 수 없이 차오른 물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환경부는 아이들이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빼앗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일까?
▲ 민주노총 대전본부/세종충남본부 동조 기자회견 지난 13일 오전, 천막농성장 앞에서 진행됬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지난 13일, 민주노총 대전본부와 세종충남본부는 천막 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종보 재가동을 반대하고 천막 농성장을 강제철거 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노동단체가 세종보 재가동 계획 백지화와 물정책 정상화를 촉구하는 천막농성의 취지에 함께하겠다는 연대의 뜻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유희종 본부장은 "물이 흐르지 못하면 썩는 것은 상식임에도 정부에서 환경파괴를 자행하고 있다"고 성토했고 대전본부 김율현 본부장은 "세종보 재가동을 환경단체들과 함께 막겠다, 환경부와 세종시가 재가동 추진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노동자 민중들의 힘으로 묻겠다, 민주노총이 함께 연대하고 투쟁할 것" 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관련기사 : 생명 기도, 노동자 연대... 천막농성장에 이어지는 발길 https://omn.kr/291q4).
▲ 원불교 기도회 세종보 재가동 중단과 생명 살림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천지하감지위"
'천지시여, 굽어살피소서'라는 뜻의 기도문이 금강에 울려 퍼졌다. 13일, 원불교환경연대가 주최한 원불교 기도회가 천막 농성장 앞에서 열렸다. 세종보 재가동 중단과 생명 살림을 기원하며 노은교당, 세종교당 출재가 교도님들 10여 명이 함께 자리해 기도를 올렸다. 고요한 금강에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와 목탁 소리에 절로 마음이 경건해졌다.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는 신자들의 표정은 무척 진지하고 간절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세종보 재가동은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심이 망라된 생태 질서 파괴의 현장이자 천지 배은의 현장이 되고 있사오니, 부디 저희들로 하여금 삿된 미망에서 벗어나 천지자연으로부터 입은 무한한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며,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구공동체를 이루어가기에 힘쓰며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 무인카메라에 찍힌 오소리 오소리가 천막농성장 주변에 살고 있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이날, 천막 농성장을 찾았던 추적자학교 애벌레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기 천막에서 45도 각도로 하늘을 보고 한 바퀴 쭉 들러보면 인근에 산이 없다. 아파트뿐이다. 아파트가 있던 자리는 아마도 오소리가 산과 물을 오가던 자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서식지가 훼손되자 강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그만큼 서식지 훼손이 심각했다는 말이다.
▲ 다시 차오르는 초승달 천막농성을 시작한지 한 달 반이 지나간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비단, 오소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아기 오리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녹조가 창궐하고 펄로 가득 찬 강, 우리 아이들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의 강이 될 것이다. 세종보가 건설된 뒤 6년 동안 우리는 악취 풍기는 강을 충분히 목격했다. 그래서다. 우리는 달이 또다시 꽉 찰 때까지, 금강이 계속 흐를 수 있을 때까지 이곳을 지킬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됐고, 장마가 올 것이다. 오늘도 천막에 와서 이를 걱정하는 이들도 우리에게 '이제 그만'을 외치지는 않는다. 되레 함께하겠다고 손을 맞잡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또 엄마 오리를 따라 수영 연습을 하는 5~6마리의 아기 오리들이 아장아장 걷듯이 금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찰방찰방찰방~"
오늘 밤도 달이 차오를 것이다. 평화가 차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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