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만나는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그 후의 이야기
“내 진짜 잘 하고 있나?” (고지선)
“잘 하고 있다.” (백수선)
“그래도 안 되면?”
“그러면 또 하면 되지.”
“또 해도 안 되면?”
“또 또 해도 되지.”
“언제까지?”
“될 때까지.”
“뭐를?”
“할 수 있는 것을.”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고지선은, 외할머니 백수선에게 묻는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이냐”고. 백수선은 몇 번이고 “또 하면 된다”며 손녀를 다독인다. 백수선은 과거 한센병을 앓았다. 수용소가 있는 소록도에 강제 이주돼 오랜 시간 강제 노역을 하며 살았다. 1930년대의 소록도를 버텨낸 할머니와 2019년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손녀는 나란히 앉아 서로를 위로한다.
‘섬:1933~2019’(연출 박소영)은 1933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 사회에서 ‘섬’처럼 단절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존 인물로, 1962년 소록도에 발을 디딘 후 43년간 한센병 환자를 간호한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 마리안느 슈퇴거(90)와 마가렛 피사렉(1935~2023)이 주인공이다.
오스트리아에서 간호학교를 마친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1966년 소록도에 파견됐고, 자원봉사가 끝난 뒤에도 남아 40년 가까이 봉사를 이어갔다.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부터, 환자들에게 ‘큰 할매’‘작은 할매’로 불린 70대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환자들과 보냈다.
여기까지는 알려진 이야기다. 극은 1960년대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1933년 소록도 갱생원에서 강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한센병 환자 백수선, 발달장애아를 키우며 살아가는 2019년 고지선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준다.
‘섬:1933~2019’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실존 인물을 조명하는 ‘목소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박소영 연출, 장우성 작가, 이선영 작곡가가 힘을 합쳐 노동 운동가 전태일(‘태일’)에 이어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백인당 태영’), 소록도의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섬: 1933~2019’)을 연극 무대로 소환했다.
‘태일’과 ‘백인당 태영’이 한 명의 인물에 집중했다면 ‘섬: 1933~2019’은 두 수녀의 숭고한 삶 외에도 소록도에서 살아가는 한센병 환자들과 2019년을 살아가는 발달장애아동의 가족에게 고루 조명을 비춘다. 12명의 배우가 모두 1인 다역을 소화한다. 1930년대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는 2019년 특수학교 부지에 체육시설을 짓자고 주장하는 주민이 된다. 누구나 처지가 뒤바뀔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다.
발달장애 아동 김지원 역에는 배우를 배정하지 않았다. ‘지원’이라고 쓰여진 노란색 야구 모자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발달장애아를 특정한 모습으로 그려 또 다른 편견을 낳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연출진의 설명. 주인공 격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직접 부르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대신 환자들과 주변 인물들이 합창으로 두 수녀의 삶을 증언한다.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책과 영화가 모두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채워진 것과 비슷하다.
정부 지침에 따라 강제로 생이별을 한 한센병 환자 부모와 그 자식들이 한 달에 한 번 재회하는 장면에서 넘버 ‘바람을 등지고’가 흘러 나올 때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많았다. 소극장 공연임에도 12명의 배우가 등장하고 조명과 소품, 무대 장치를 다양하게 사용해 몰입감을 높였다. 공연 예매 사이트에는 “사랑과 희망을 눈으로, 귀로,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공연”, “모든 메세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촘촘한 극” 등 호평이 다수다.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7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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