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별난 특수교사... 그가 주말에 하는 일 [류승연의 특수교육 A to Z]

류승연 2024. 6. 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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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연의 특수교육 A to Z] 특수교사 인터뷰 : 서울인공지능고등학교 권용덕 선생님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막막하고 힘들지만 이 삶을 사는 기쁨 또한 있기 마련이지요. 장애 진단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특수교육대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하나씩 짚어가 봅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기자말>

[류승연 기자]

 지난 12일 서울인공지능고등학교 특수학급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권용덕 선생님을 만났다.
ⓒ 류승연
 
권용덕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날 저는 이렇게 외쳤어요. "우와~ 세상에 없던 별난 특수교사다!". 지금이야 우아한 웨이브가 돋보이는 단정한 단발머리지만 당시만 해도 엄청난 임팩트가 있는 베토벤 헤어스타일을 휘날리고 있었거든요.

별난 건 머리 모양만이 아니었습니다. 특수교사가 졸업한 제자의 성년후견인을 맡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막 이리저리 뛰어다녀요. 평일이면 지역 내 장애 관련 기관을 찾아다니고 주말이면 학생들을 만나 놉니다. 이런 특수교사 본 적 있나요? 저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얼핏 보면 별나 보이지만 특수교사로서의 고민은 결코 별나지 않은, 권용덕 선생님입니다. 지난 12일,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인공지능고등학교로 향했습니다.

제자의 후견인이 된 스승

권 선생님이 제자의 성년후견인을 자처하게 된 건 승환이(가명)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제도가 참 그래요.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서 제공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일일이 찾아서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많은 수의 발달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의 가족들이 '있는 제도'조차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잘 보면 '있는 제도'를 알차게 잘 활용하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부모(보호자)가 어느 정도 여유(시간적, 물질적, 심리적)가 있을수록, 부모의 정보력이 넓고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있는 제도'를 구석구석 찾아 발달장애인 자녀의 일상이 알차게 꾸려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승환이네 가족은 다섯 명인데요. 다섯 명이 전부 지적장애가 있어요. '있는 제도'를 스스로 찾아내 신청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많은 가능성이 있는 승환이가 졸업과 동시에 집안에만 귀속돼 사는 삶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권 선생님은 승환이의 성년후견인을 맡으면서 그의 성인기 삶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책과 제도를 다 찾아 먹어야 하는데 잘 모르겠는 거예요. 부전공이 진로직업인데요. 저도 졸업 후 성인기 삶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 일일이 공부하고 싸워가면서 알아봤어요. 사회복지를 새로 공부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니까요."

승환이를 위해 각종 정책과 지원을 공부하고 알아보고 물어보고 여러 기관과 싸워가면서 권 선생님은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이런 심정이겠구나"를 알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넘치는 에너자이저
 
 권용덕 선생님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
ⓒ 류승연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사정이 딱한 학생을 만나는 교사가 권 선생님 한 명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권 선생님처럼 제자의 '졸업 이후의 삶'까지 개입해 직접 실천적 행동에 옮기는 교사는 많지 않을 거예요.

그렇기에 저에게 권 선생님은 매우 강한 인상으로 와닿았는데요. 권 선생님은 "부모님이 이렇게 낳아주셨는데 어떡해요"라며 물려받은 DNA에 공을 돌립니다.

타고난 성향과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권 선생님의 에너지는 놀랍기만 합니다. 현재 근무 중인 서울인공지능고등학교에 발령받은 후 권 선생님은 송파구청 홈페이지부터 싹 뒤졌다고 합니다. 송파구 안에 있는 장애인 관련 기관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죠.

파악한 다음엔 무작정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이 기관에선 우리 애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 기관과 우리 학교 애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무작정 가서 둘러보고 상담하며 길을 뚫기 시작하는 것이죠.

"근처 복지관에 갔더니 취업 관련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는 사회복지사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를 붙잡고 우리 학생들이 사무보조 일을 많이 하는데 관련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사무보조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했죠."

학교 안에서도 사무보조와 관련된 업무를 배우긴 하지만 익숙한 공간인 학교와 낯선 공간인 사회는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를 벗어난 현장에서 직접 실무를 익힐 기회가 필요합니다. 해당 복지관은 실습하러 오는 학생들을 위해 프로그램 외에도 진짜 일거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실에 파지가 나와도 곧바로 처리하지 않고 학생들을 위해 남겨두기 시작한 겁니다.

파지를 분쇄기에 넣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테이플러가 찍혀 있는 종이에선 심을 일일이 빼야 하고, 이물질이 묻은 것은 따로 분류해야 하며,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한 번에 많은 양의 종이를 쑤셔 넣어서도 안 됩니다. 반복 실습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복지관만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직업 훈련을 지역사회 안에서 직접 실습할 수 있도록 동네 카페도 뚫고 구청도 뚫습니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권 선생님은 한 기관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요. 재학생 중 피아노를 잘 치는 학생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이 학생의 장기를 살려 취업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지역 내 관련 기관을 섭외해 놨다고 합니다. "내년에 우리 학생 보낼게요. 잘 부탁합니다."

학교와 사회 잇는 '완충지대' 필요성

권 선생님은 "나한테 온 학생들만이라도 학년이나 가정환경에 상관없이 특성에 맞는 일자리를 잘 연결해 주고 싶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맞는 일자리가 있는지 찾아다니는 거죠"라고 말합니다.

기존 방식대로 장애인고용공단 등을 이용한 공식적 구직 활동만을 할 경우 일자리가 한정적이거나, 학생 집에서 먼 곳에 취업하거나, 학생 개개인의 특성이 발현되기 힘든 곳에 취업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권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활동하면서 학생들이 지역 안에서 취업할 수 있는 영역, 문을 넓혀 두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지역사회 안에서 여러 기관을 연결해 담당자들과 소통 창구를 열어놓으면 그만큼 우리 학생들의 취업 범위가 넓어집니다. 기관에서 급하게 구인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럴 때도 소통 창구가 열려 있으면 신속하게 서로의 필요를 채울 수 있게 되죠."

부모 입장에선 참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특수교사가 그래야만 할까요. 퇴근 후에도 장애 기관 관계자를 만나러 다니고 주말이면 학생을 직접 만나고 그래야 할까요. 아니요. 이런 일들이 특수교사 개인의 몫이 되어버리면 안 되겠죠. 그래서 필요한 게 시스템입니다. 권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사실은 정책과 시스템으로 구축돼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이런 시스템 구축을 위해 권 선생님은 '완충지대'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사회로 나가는 큰 변화 앞에서 학생도, 특수교사도, 부모도, 사회구성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특수교사의 역할은 학교 안에서 교육하고 취업 시켜주는 것이에요. 졸업 후 지원은 지역사회에서 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졸업 후 자리를 잡기까지 완충지대가 없어요."

특수교사들은 제자들이 졸업하면 끝이라 생각하고, 사회복지사는 당사자가 보낸 학교생활 정보 등을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부모들은 자녀 졸업 후엔 누구와 얘기를 하고 어디에 부탁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더라는 겁니다. "완충지대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과 사람이 필요합니다".

형식적인 기관과 인력

"선생님이 말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특수학교 전공과가 맡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전공과란 특수학교에 개설된 일종의 직업반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면접(실기)을 거쳐 입학할 수 있습니다. 특수학교 학생만이 아닌 지역 내 특수학급 졸업생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전공과는 학교 안에 개설돼 있잖아요. 그러면 안 됩니다." 전공과가 실질적인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위해선 학교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완충지대 역할을 할 기관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발달장애인 훈련센터'도 있고 특수교육지원센터에도 진로협의체가 있긴 하지만 형식적인 측면이 크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실질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선 기관이 정해지고 인력도 따로 배치돼야 합니다"

기관 협력체계 구축도 중요한 일입니다. 권 선생님은 지역사회에 진로 기관 협력체가 있어서 사회복지사와 기관 관계자, 특수교사와 학부모와 당사자가 다 함께 모여 "이 학생은 이런 일을 했으면 좋겠다. 지역사회 안에서 이런 업무가 맞을 것 같다는 협의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기관과 인력이 정해져야 해당 인력이 지역 안의 협력체를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중심이 되는 사람이 필요한 거죠. 학교를 졸업했다고 그 순간부터 특수교사가 학생의 삶을 부모 몫으로 넘겨버리면 너무 많이 힘들어집니다."

권 선생님은 졸업한 제자들은 물론 부모들과도 계속해서 연락하고 지냅니다. 졸업 전 취업시켰다고 끝이 아니라 사회인이 된 제자들의 이직까지도 힘을 씁니다.

"저는 그렇게 얘기해요. 교사와 부모와 학생은 한 배를 탔다고요. 부모님들에게 중간에 가다가 내리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리시라고 얘기합니다. 아, 이 말도 해요. 제가 죽을 때까지만 연락하시라고요(웃음)."

나이 들어도 현장에서
 
 권용덕 선생님
ⓒ 권용덕
 
넘치는 에너지로 전국을 뛰어다니던 권 선생님이지만 서서히 나이를 실감하는 요즘이라고 합니다. 체력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죠. "저도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었더라고요"

사실 권 선생님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선생님하고 나는 친하니까> <장애인이랑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진로 이야기는 처음이야> <진로와 직업 워크북 취업할래요+취업했어요> 등 많은 책을 집필하고 강연도 다닙니다.

"최근 개인적 일을 줄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하고있는 활동의 본질이 무엇일지 고민했거든요. 그래도 학부모 대상 연수는 되도록이면 가려고 합니다. 가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특수교사로서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권 선생님은 "방학이랑 17일(월급날)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멋대로 부여한 '사랑의 희생과 봉사의 아이콘'으로서가 아니라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특수교사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도 학생들을 재미있게 잘 보살피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아내에게 말해요. 제가 어느 날 생각이 바뀌어서 장학사 준비한다고 하면 못 하게 말려달라고. 나이가 들어도 지금처럼 현장에 있고 싶습니다."

20년 후 학생들과 실습실에서 커피를 내리고, 복지관에서 파지를 정리하고, 카페에서 팥빙수를 먹고 있을 백발의 베토벤 머리 선생님을 그려보니 웃음이 났습니다. 그 모습이 권 선생님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울인공지능고등학교의 교문을 나섰습니다.

류승연 작가 scaletqu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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