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틈에 낀 새우’…여야 샅바싸움에 공무원만 ‘속앓이’

장정욱 2024. 6. 14. 14:1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민주, 업무보고 거부한 부처 공개 비판
“여당 지시로 업무보고 안 해? 제정신이냐”
여야 갈등 깊어질수록 공무원들만 답답
“정치적 싸움에 공무원 끌어들이지 말아야”
정부세종청사 전경. ⓒ뉴시스

여야가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두고 극심한 갈등을 벌이는 가운데 그 불똥이 엉뚱하게도 일선 공무원들에게 튀고 있다.

13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자리에서 “정부 부처에서 업무보고를 취소하거나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환경부, 기상청 등은 민주당 의원들이 요구한 업무보고를 거부하고 있다. 참고로 국회는 통상 개원하면 현안 파악 차원에서 부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기도 한다.

부처 업무보고 거부는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지시에 따른 것이란 게 박 원내대표 주장이다. 박 원내대표는 “(부처들이 업무보고를 거부한) 이유를 들어보니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지시 사항이라서 거부한다고 했다”며 “기재부 차관은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하지 말란다고 하지 않는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제정신인가”라며 “강력하게 경고한다.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때는 가장 강력한 조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일단 박 원내대표 주장은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박 원내대표가 거명한 부처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업무보고를 못 하도록 압박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A 부처 관계자는 “우리가 명확하게 (업무보고 거부) 지시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힘들다”면서도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라는 걸 한다는 점만 참고해 달라”고 했다.

그는 “국회 상황이 워낙 (갈등이) 심각하다 보니 이러저러한 문제들이 곁가지처럼 삐져나오는 것 같다”며 “업무보고 논란에 관해 확인해 주긴 힘들지만 (부처 공무원들이) 현재 곤란한 상황인 건 맞다”고 덧붙였다.

2021년 국정감사 당시 공무원들이 회의장 출입이 제한돼 복도에서 대기하는 모습. ⓒ뉴시스

이처럼 여야가 거친 힘겨루기를 계속하면서 공무원들만 중간에서 껴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 하고 있다.

부처로서는 22대 국회가 개원한 마당에 192석을 가진 거대 야당과 갈등 관계에 놓여서 좋을 게 없다. 여소야대 속 입법권력을 쥔 야당에 미운털이 박히면 정부가 발의한 법안 처리는 물론 내년도 예산안까지 발목 잡힐 게 뻔하다.

14일 현재 22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접수된 법률안은 모두 490건이다. 국회 개원 초기이고, 원 구성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정부발의 법안은 없다.

다만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법률안 국회 제출 수정계획’을 보면 올해 정부가 국회 심의를 거쳐야 할 법률안은 384개에 달한다. 법률안 외 ‘2023회계연도 예비비지출 승인의 건’과 ‘2023회계연도 결산’ 등 4건은 이미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대치 상황이 계속되면 정부가 향후 발의할 384개 법률안 심사 과정이 어떨지는 불 보듯 훤하다.

무엇보다 9월 말부터 시작할 국정감사에서 야당으로부터 강도 높은 압박을 견뎌야 한다. 가뜩이나 국감 때 ‘한 건’ 터뜨리기 위해 칼을 가는 야당 의원들인데, 갈등 국면 속 공무원들이 받을 심리적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다.

예산은 더 문제다. 국회는 예산 증·감액 권한을 갖고 있다. 국회 또한 최종 예산안에 관해 정부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마음먹고 딴지를 건다면 정부로선 속수무책이다. 산업부만 하더라도 당장 동해 유전 관련 예산 확보를 위해서는 야당 협조가 필수다. 현재와 같은 대치 국면이라면 사업비 확보는 요원하다.

B 부처 관계자는 “국회 협조 없이는 법안도, 예산도 다 처리를 못 하는 게 현실인데 공무원을 자기들이 다투는 무대 한가운데에 끌고 들어가면 어쩌자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C 부처 관계자 역시 “공무원으로서 국회 관련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정치적 갈등이나 다툼은 정치판에서 정리해야지 이런 식으로 판을 키우는 건 국가적으로 결코 도움 되는 일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