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을 전하는 힐링 영화 [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사랑은 타이밍이다.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서로에게 적절한 시기에 등장하는가가 중요하다. 미칠 듯이 끌리고 죽도록 사랑해도 서로에게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면 기막힌 타이밍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 잘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을 간절히 붙잡고 싶어도 서로의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볼 수도 붙잡을 수도 없다. 서로에게 기막힌 타이밍에 자연스럽게 등장해서 서로의 누군가가 되어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개봉을 앞둔 영화 ‘1초 뒤, 1초 앞’은 서로 다른 타이밍으로 엇갈린 두 남녀가 사라진 하루의 미스터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퍼즐을 맞춰가듯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우체국에 근무하는 청년 하지메(오카다 마사키 분)는 누구보다 빠른 사람이지만 늘 남보다 한발 앞서는 바람에 일상생활도 연애도 쉽지 않다. 반면 레이카(키요하라 카야 분)는 인생을 달관하듯 남보다 늘 한 발 느린 템포로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미모의 뮤지선 사쿠라코를 만난 하지메는 가까스로 데이트 신청에 성공하지만, 눈을 떠보니 약속한 날짜는 지나가 버렸다. 잃어버린 하루를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하지메는 우체국에서 매일 우표를 사가던 레이카가 사라진 하루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천년 도시 교토에서 살아가는 1초 빠른 남자와 1초 느린 여자, 하지메의 분실된 하루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연애에 서툰 청춘들의 모습을 다룬다. 대만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이 원작인 이 영화는 원작에서의 순진무구한 남자의 사랑 대신 한 여자의 추억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성별만 달라졌을 뿐 성인이지만 사랑에 서툰 캐릭터들이 선사하는 사랑과 시간에 관해 이야기는 그대로다. 과거의 기억과 함께 하지메를 추억하는 레이카 그리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하지메, 두 청춘 사이의 얽힌 사랑 이야기를 영화는 유쾌하고 잔잔하게 풀어간다.
느림의 미학도 전한다. 영화는 엇갈린 인연과 만남을 엉뚱하지만 유쾌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하지메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하루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인연을 깨닫고 비밀이 풀리는 과정이 한 편의 동화처럼 그려진다. 특히 전반부는 남보다 늘 한발 앞선 급한 성격 때문에 일상생활과 연애가 쉽지 않은 하지메의 이야기가 그리고 후반부는 남보다 느리지만 조용한 삶을 살아가는 레이카의 시점에서 그려진다. 무엇보다 하지메의 사라진 하루의 비밀은 예상을 벗어난 독창적이고 상상력 가득한 판타지로 펼쳐진다. 남들보다 느리기 때문에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운 이들을 위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따뜻한 응원이 담겨있다. 영화는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각자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느림의 미학을 전한다.
교토를 배경으로 한 힐링 영화다. 영화는 일본의 유서 깊고 아름다운 도시 교토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교토 소도시의 고즈넉하고 한가로운 분위기는 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연출을 맡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그동안 영화 ‘린다 린다 린다’와 드라마 ‘심야식당’ 등을 통해 위로와 힐링의 여운을 안겨줬다. 이번 영화에서도 일본 감성 로맨스 작품 특유의 잔잔한 매력이 곳곳에 묻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청량하고 맑은 여름의 교토를 아름답게 담아 우리에게 힐링을 선사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바쁘다. 1분 1초를 다툴 정도로 시간이 없다. 특히 한국에서는 빨리빨리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소중한 자신의 삶과 사랑에 대해서 잠시도 생각해 볼 겨를이 없다. 그러나 돈보다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사랑과 삶이다. 영화 ‘1초 뒤, 1초 앞’은 서로 다른 타이밍으로 엇갈린 두 남녀의 잔잔하고 나른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조금 느리게 살면서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라고 말해주는 힐링 영화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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