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도 공감한 '인사이드 아웃 2' 불안, 픽사의 영리한 진심
[하성태 기자]
▲ <인사이드 아웃 2> 포스터. |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이 영화를 우리 아이들에게 바칩니다. 있는 그대로의 너희를 사랑해.'
엔딩 크레딧의 끝자락, 제작진이 헌정한 메시지다. 소박한 듯 보이지만 그 진심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사람 간의 관계가 내 모든 영화의 중심"이라던 전편의 감독 피트 닥터는 원안자로 물러섰다. 전편의 성공 직후 "속편은 없다"고 공언했던 그다.
그 자리를 11살 딸과의 경험을 녹여냈다는 픽사의 스토리 수퍼바이저 출신 켈시 만 감독이 대신했다. 딱히 속편에 집착하지 않는 (디즈니가 아니라) 픽사가 9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건 어떤 자신감이나 확신이 있어서 였을 터. 확실한 건, 여전히 어른들의 마음까지도 훈훈하게 적시는 3D 애니메이션이 속편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리라.
맞다. 짐직하다시피, <인사이드 아웃 2> 얘기다. 에둘러 갈 필요가 없다. 사춘기의 '불안'마저도 온전한 '나'를 발견하고 완성하는 성장통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가 마음을 움직인다. 심리학적 통찰이나 인간에 대한 무한한 믿음, 특유의 시각적 즐거움이 공존하는 픽사의 영리한 진심은 속편에서도 유효하다.
전 세계 8억 5천만 달러 수익을 냈고, 국내 497만 명을 동원했으며,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전편 속 빙봉이의 압도적인 매력이나 슬픔이의 활약(?)을 뛰어넘었다고 단언하기엔 이르다(관련 기사: <겨울왕국> 뛰어넘는 애니메이션, 정말 놀랍다). 그럼에도 '있는 그대로의 너희를 사랑한다'던 순수한 의도를 영화적으로 승화시킨 제작진의 진심과 예견된 완성도에 이견을 달 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 <인사이드 아웃 2> 스틸컷 |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신은 죽었다"고 역설했던 프리드리히 니체가 사춘기 시절 종교에 탐닉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 더 기승을 부렸을 기독교적 죄의식이나 금욕주의, 형이상학적 관념이 가져올 수 있는 허무주의를 경계했던 문제적 철학자 역시 감수성이 제일 예민했을 시기 본인의 경험치를 사상의 근간으로 삼았던 것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의 주인공 라일리도 이제 13살, 우리 나이로 15살 틴에이저 시절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사춘기다. 자아가 형성되며 이유없이 까칠하고 예민하며 그렇기에 부모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동서도 막론하고 니체조차 거부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춘기. 픽사와 제작진이 영리하다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어서다.
영화 속 일명 감정 컨트롤 본부가 예고치 않는 변화를 맞는 건 당연지사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기쁨이를 비롯한 다섯 감정들은 "나는 착한 사람"이란 신념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만족하는 남부러울 것 없는 일상을 영위 중이었다. 사춘기가 닥쳐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불안'을 위시해 '당황', '따분', '부럽'이란 감정들이 위풍당당하게 출몰하기 전까지는 딱 그랬다.
▲ <인사이드 아웃 2> 스틸컷 |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전편의 귀엽지만 답답한 빌런이 슬픔이었다면 확신에 찬 속편의 빌런 불안이는 확실히 한 발 더 나아간다. 기쁨이를 비롯한 기존 다섯 감정들을 컨트롤 본부에서 내쫓아 버리기에 이르는데, 이후는 짐작 그대로다. 본부로 되돌아가 라일리의 사춘기 감정의 평정을 찾아주기 위한 다섯 감정들의 여정과 불안이가 콘트롤 하는 라일리의 드라마틱한 변화상이 펼쳐진다.
후자를 위해 제작진은 심플하면서도 확실한 서사를 마련해 놓았다. 라일리가 절친들과 참여하는 아이스하키 캠프에서 벌어지는 사흘간의 틴에이저 성장기 말이다. 전자가 혁신적이었던 전편의 답습이란 평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면, 후자는 훨씬 드라마틱하고 감정적으로 풍부하다. 무려 사춘기 아닌가.
친구들과의 갈등과 우정의 회복이란 사춘기의 성장통은 전형적이고 보편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불안이의 맹활약과 당황, 따분, 부럽이란 사춘기적 감수성들의 조력으로 인해 그 전형성은 상쇄되고도 남는다. 더 나아가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 특유의 긴장감과 감정적 고양이 일어나는 묘한 순간들을 만들어 낸다.
극복하거나 체념하거나, 그도 아니면 사춘기적 특질을 품은 채 성장하거나. 성인이 된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사춘기적 감정의 소용돌이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라일리의 성장 과정은 분명 보편적인 깨달음과 감동의 순간을 전달하며 진중한 질문을 던져준다.
이를 테면 이런 질문들. 어른이 된 당신은 충분히 불안을 극복했는가. 기쁨과 슬픔과 같은 기본적인 감정의 표현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은 복잡할 수밖에 없는 감정을, 자아를 성숙하게 조절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인사이드 아웃 2> 스틸컷 |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설명하며) 사춘기를 "자기 중심성을 극복하며 일체감을 느끼는 시기"라고 규정했다. 또 사랑의 대상에 관해서는 "진실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이 세계를,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사이드 아웃 2>가 가리키는 사춘기의 성장통도 이와 닮아있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했던 라일리는 절친들과의 우정을 등한시한 채 고교 하키팀 진학에 집착하며 (프롬이 말한 바로 그) 강박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상정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불안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본인의 '부족함'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 2>가 전편과 비등하게 탁월할 수 있는 면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하는 해법에서 비롯된다. 그저 불안감으로 대변되는 사춘기적 감정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영화 속 불안이가 불필요하다면 내쳐버린 기쁨이나 슬픔과도 같은 원초적 감정들의 회복도 해법의 전부가 아니었다.
그 해법은 불안을 포함해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 안으라는 것, 그리하여 내 주변의 사람들을, 이 세계를,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대상들을 사랑하라는 것. 그러한 단순하면서 또 어려운 진리를 수용하며 어렴풋하게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인사이드 아웃 2>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인사이드 아웃 2> 스틸컷 |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인사이드 아웃 2>는 인간을 지탱하는 신념은 모든 복합적이고 부정적인 감정들까지도 끌어안고 인정할 때야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심리학적, 철학적 진리를 멋들어진 방식으로 형상화해 낸다. 기쁨이가 지금껏 지켜왔던 신념을 내려놓을 때 라일리에게 감정적 평온과 관계의 회복, 일말의 성장이 찾아오는 장면은 분명 어떤 통찰의 감동을 전해준다. 성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감정 콘트롤과 자기 성찰에 관한 정직한 해법을 제시한다고나 할까.
전편은 분명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수많은 심리학자와 뇌과학자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던 <인사이드 아웃>은 전통적인 이성주의를 뛰어넘어 심리학과 현대 철학을 경유하는 지적 호기심을 과시하는 동시에 영화적인 아이디어와 픽사 특유의 시각적인 즐거움과 편안함을 선사하는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결론적으로, <인사이드 아웃 2>가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의 경지를 제시했다고 평가할 순 없을 것 같다. 전편 속 시각적 아이디어가 준 충격은 9년 전의 학습효과로 인해 훨씬 덜 한 것이 사실이다. 빙봉이와 같은 절창의 캐릭터도 부재하거니와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재확인하며 전 세계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던 서사 자체의 매력도 다소 약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모든 감정들이 자꾸만 들어가 있으라고 하는 노스탤지어, 즉 향수 캐릭터와 같은 깨알 유머들은 여전하지만).
다만, 성인들에게도 여전할 정서적 공감대의 확장을 이뤄낸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현대인들이야말로 40대, 50대가 넘어서도 제2의 사춘기 운운하며 불안에 시달리는 인종들이 아닌가. 기쁨이와 슬픔이가, 모든 감정들이 불안이를 따스하게 안아 주는 결정적 장면이 주는 감동 역시 그래서 일테고.
또 하나. <인사이드 아웃 2> 언론 시사 직전, 배급사 디즈니는 자사 신작인 <무파사: 라이온 킹> <에이리언: 로물루스> <데드풀과 울버린>의 예고편을 선보였다. 마블 유니버스의 시대마저 한풀 꺾인 지금, (세 편 모두 20세기에 탄생한 캐릭터들을 가져온) 거대 프랜차이즈 속편들과 코믹스와 그래픽 노블 원작에 의존하는 할리우드의 현주소를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실에서 오리지널한 서사로 승부하는 픽사의 힘은 얼마나 위대한가.
이는 OTT와 웹툰 원작 콘텐츠의 시대가 도래한 한국 콘텐츠 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 너도나도 웹툰 원작 콘텐츠의 성공 사례를 따라잡기에 바쁘거나 비슷한 소재의 웹툰 원작을 영상화하는 것이 흥행 공식인 것 마냥 점철된 버린 작금의 현실 말이다. 본인들의 장기를 한껏 끌어올린 픽사는 <인사이드 아웃 2>를 통해 또 한 번 자신들의 존재감과 산업적 필요성을 증명해 냈다. 역시나, 픽사는 픽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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