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균기자가 만난 사람] 전가람 “결혼 앞둔 아내가 잠자던 우승 본능 깨웠다”

정대균 2024. 6. 1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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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GA선수권대회 우승으로 투어 강자로 부상
12월 예정 결혼이 더욱 분발하는 계기로 작용
올 시즌 목표 제네시스 대상…현재 랭킹 6위
지난 9일 막을 내린 KPGA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전가람이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KPGA

스물여덟 살 청년 전가람의 직업은 프로 골퍼다. 하지만 요즘은 그가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전기(傳記)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는 2013년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정회원이 됐고 2016년에 KPGA투어에 데뷔했다. 투어 데뷔 후 2년여가 지나 생애 첫 우승을 거두며 세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9일 경남 양산시 에이원CC에서 막을 내린 제67회 KPGA선수권 with A-ONE CC(파71)에서 우승하면서 투어 정상급 선수로 우뚝 섰다.

하지만 과정은 절대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골프를 그만둬야 할 위기의 순간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스스로 그 위기를 헤쳐 나가야 했다. 연습 시간 외에는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다. 치킨 배달에서 골프장 캐디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2018년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에서 마침내 데뷔 첫 승을 거두었다. 당시 그의 우승은 대회장이 자신이 알바로 캐디를 했던 골프장이라는 서사까지 더해져 더욱 화제가 됐다. 전가람의 인생 역전 스토리는 당시 우승자 인터뷰 때 그의 입을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은 전가람의 의연함과 담대함에 아낌없는 박수갈채와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성원을 자양분 삼아 그는 2019년에 휴온스 엘라비에 셀러브리티 프로암에서 2승째를 거뒀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가람은 투어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기나긴 슬럼프에 빠진 것. 그래서 2020년에 군복무를 선택했다. 사회 복무 요원으로 경기도 양주 출입국 관리소에서 교도관으로 근무하다 전역한 그는 작년에 투어에 복귀했다.

돌아온 전가람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도 샷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플레이가 견고해졌다. 작년 군산CC오픈에서는 우승 기회를 잡기도 했다. 비록 연장전에서 패해 후배 장유빈(22·신한금융그룹)에게 우승을 내주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자신감을 찾는 모멘텀이 됐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여 만에 전가람은 자신의 골프 인생에서 최고 정점을 찍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 대회로 최고 권위와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 중의 메이저’ KPGA 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한 것이다.

전가람은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라며 “솔직히 우승 상금보다 5년 시드가 더 크고 기쁘다. 이제 당분간은 시드 걱정으로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된다. 힘든 시기를 이겨낸 나 자신에게 주는 보상으로 생각하고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우승 직후 가진 공식 기자 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는 전가람. KPGA

그의 이번 우승은 철저히 준비된 결과였다. 먼저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승(百戰百勝)’의 마음가짐이었다. 전가람은 “작년 군산CC 오픈에서 아쉽게 우승을 놓치고 난 뒤 실력이 출중한 후배들이 워낙 많아 판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라며 “이번 대회에서도 1라운드를 출발할 때부터 그 생각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고 말했다.

다음은 스윙에 대한 오만과 독선을 과감히 벗어 던졌다. 그는 주니어 시절 이후 레슨을 전혀 받지 않았다. 자신만의 감각적 플레이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작년 군산CC 오픈 개막을 2주 앞두고 제 발로 염동훈 프로를 찾아가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전가람은 “당시 공이 정말 안 맞았다. 염동훈 프로님께 찾아가 ‘이런 것들이 문제’라고 상담을 했고 다다음 주에 준우승을 했다”면서 “그 이후부터 계속 호흡을 맞추고 있다. 지금도 염동훈 프로에게 레슨을 받고 있다. 이번 우승으로 그 효과가 입증된 셈이다”고 웃어 보였다.

오는 12월에 예정된 결혼도 그의 이번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전가람은 “아마 결혼할 여자 친구가 없었더라면 나는 오래전에 무너졌을지도 모른다”면서 “결혼을 앞두고 온전한 가족이 생긴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임감이 더 커졌고 연습도 더 열심히 했다”고 했다.

18번 홀에서 20m 이상의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뒤 포효하고 있는 전가람. KPGA

이번 우승의 역사적 현장에는 전가람의 예비 아내가 함께하지 못했다. 전가람은 “아내가 골프를 모른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도 동행하지 않았다”며 “골프 때문에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많이 이해해 주려고 노력한다. 많은 위로와 힘을 받고 있다”고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상금 3억2000만 원을 획득했다. 커리어 하이를 찍었던 작년 1년간 획득 상금 2억7379만3185원보다 5000여만 원이 많은 금액이다. 전가람은 “결혼을 앞두고 결혼 비용 걱정이 많았는데 우승 상금은 신혼집을 구하는데 보태야 할 것 같다”고 활짝 웃어 보였다.

전가람의 올 시즌 목표는 DP월드투어와 KPGA투어 공동 주관으로 열리는 제네시스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KPGA선수권대회 우승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목표가 대폭 상향 수정됐다. 그는 “제네시스 챔피언십은 포인트 랭킹 상위 30위까지 출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이제는 출전 확률이 높아진 만큼 더 분발해 ‘제네시스 대상’ 수상을 목표로 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전가람의 현재 제네시스 포인트 랭킹은 6위다.

전가람은 지금은 많이 회복한 상태지만 시즌 초반만 해도 허리를 다쳐 꽤 고생을 했다. 더 이상의 부상 없이 단점인 쇼트 게임만 보완한다면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우승을 계기로 ‘작가’ 전가람이 써 내려갈 인생 스토리가 벌써 기대된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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