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 25%가 5060, 20대는 외국인"…한국 청년이 없다 [고령근로 빛과 그림자]
지난달 찾은 전북 김제시의 판넬 제조 중소기업 ‘광스틸’ 공장. 대기업 등에 납품되는 판넬 제조 공정이 바삐 이뤄지는 이곳의 생산직 39명 가운데 60대 이상은 5명, 50대까지 확대하면 10명에 달한다. 최고령 생산직 직원은 64세다. 생산라인의 약 25%를 고령자들이 책임지는 셈이다. 최현철 광스틸 차장은 “우리 회사 정년은 60세지만, 인력 자체가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정년이 넘은 기존 직원들을 촉탁계약직으로 계속 고용하고 있다”며 “일하는 사람은 늙어가는데, 젊은 사람은 안 오려 하고. 현장 인력이 고령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공장 전체를 둘러봐도 젊은 한국인 직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있는 20대 생산직 6명은 모두 스리랑카·베트남·캄보디아 등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였다. 광스틸은 지난해 내내 채용 공고를 올렸지만, 실제 면접에 온 20대 한국인은 10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마저도 구직 활동비를 받으려 얼굴을 비치는 경우가 많은 탓에 실제 채용 가능한 인원은 1~2명에 불과했다. 어렵사리 채용해도 한 달 이내에 대부분 그만둔다고 한다. 공장이 지방에 위치한 데다 젊은 사람들이 생산직 업무를 기피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근로자 평균 연령은 점점 높아지는데 젊은 인력은 메말라가면서 광스틸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고령자들은 확실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탓에 바쁜 성수기 등에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산업재해 위험성도 크다. 곽인학 광스틸 대표는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공정들도 있어 외국인만으로 인력을 채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기술 개발을 통해 자동화 라인을 확대해 필요 인력을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조업 ‘60세 이상’, 지난해부터 ‘20대 이하’ 첫 추월
고령화 속도도 빠르다. 제조업 근로자 중 60세 이상 비중은 2014년 5.2%에서 지난해 13.4%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20대 이하 비중은 14%에서 12.5%로 1.5%포인트 감소했다. 2022년까지만 해도 20대 미만(13.1%)이 60세 이상(12.2%)보다 높았지만, 지난해 들어 처음으로 역전됐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300인 미만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이미 2022년부터 60세 이상(14.5%)이 20대 미만(12.2%)을 역전했다. 지난해엔 60세 이상이 16%로, 20대 미만(11.7%)보다 4.3%포인트나 높았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좁혀보면 60세 이상 비중은 29.8%로 치솟는다. 20대 미만 비중은 3.3%에 불과했다.
10년 새 20대 경활 17% 감소…그마저도 숙박음식업으로
특히 중소 제조업체에 인력난과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우선 일할 수 있는 청년 자체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지난해 20대 이하 경제활동인구는 414만2000명으로, 2014년(502만3000명)보다 17.5% 줄었다. 반면 60대 이상은 229만4000명에서 638만7000명으로 무려 178.4% 급증했다.
줄어든 청년들은 몸이 고된 제조업 대신 숙박음식점업 등 서비스업으로 향했다. 20대의 산업별 취업자 수를 살펴보면 지난해 제조업 취업자는 54만5000명으로, 숙박음식점업 취업자(57만4000명)보다 적었다. 20대에서 숙박음식점업이 제조업을 추월한 것은 처음이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하반기 기준 제조업 미충원율은 23.4%로, 최근 배달업 확대로 수요가 늘어난 운수창고업(31.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여기에 열악한 근무조건,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 등으로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고착화되면서 중소제조업은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현장 “외국인만으로 한계”…중기 맞춤형 지원 필요
한국 경제 주축인 제조업이 늙어갈수록 생산성은 감소하고 국가 경쟁력에서도 밀릴 우려가 나온다. 고령층 일자리는 상당수가 저숙련·단순 노동에 몰려있는 만큼 국가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앞서 인구 고령화를 겪은 ‘제조업 강국’ 독일의 경우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올해도 0.3%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성장 동력이 약화됐다.
제조업 등 사고·질병 위험 요인이 큰 사업장에 고령 근로자가 많을수록 산업재해 우려도 커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산재 사망자의 52.1%가 60세 이상이었다. 고령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 숙련도는 높아지겠지만, 결국 전체적인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안의 하나로 고용허가제를 통한 외국인 근로자 공급을 매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것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원도 홍천군에서 중소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김금주 대표는 “외국인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오다 보니 가능한 잔업·특근을 많이 해 수당을 챙겨가려고 하는데, 이걸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다른 작업장으로 떠나려 하기 일쑤”라고 밝혔다. 경기 광주시에서 30인 미만의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이모씨도 “외국인들도 돈을 더 많이 주는 서울로 가고 싶어한다. 일부러 태업을 부려 근무지를 옮기려는 경우가 있어 인력 관리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결국 ‘청년이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기 위한 맞춤형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즘 청년 취업준비생들을 만나보면 임금 수준뿐만 아니라 안전 수준, 식사의 질 등 근로·작업 환경까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며 “시차 출퇴근제, 근로시간 유연화, 일가정 양립 등 근로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중소기업일수록 정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는 등 정책 대상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제=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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