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숫자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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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힘'이란 책을 집어 든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텐데 새 부서에서 매일같이 마주하는 숫자들 때문이었을까.
이 숫자가 말하는 건 뭘까.
숫자(여기선 '계산을 통해 얻은 값')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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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힘’이란 책을 집어 든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텐데 새 부서에서 매일같이 마주하는 숫자들 때문이었을까. 그날은 그저 손이 갔고, 이리저리 훑다 한 문장에 시선이 꽂혔다. ‘데이터를 추적하다 보면 인간이 놀라울 만큼 수치에 서사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맞는다. 불과 몇 시간 전에도 나는 메일로 쏟아진 여러 경제지표에 의미를 부여하느라 씨름했다.
지난 5일 한국은행은 기준연도 개편을 하면서 한국의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6194달러로 상향 수정됐다고 밝혔다. 개편 전에 3만3745달러였으니 기준연도 개편만으로 7.2%가 뛰었다. 새 기준에 따라 1인당 GNI 3만 달러가 넘었던 시점도 2017년에서 2014년으로 3년 앞당겨졌다.
이 숫자가 말하는 건 뭘까. 숫자(여기선 ‘계산을 통해 얻은 값’)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수식에 들어가는 수 자체에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GNI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에 국민의 해외 소득을 더하고 외국인의 국내 소득을 뺀 뒤 인구수로 나눈 값이다. 기준연도 개편으로 GDP 규모가 커지면서 GNI도 올랐다. 단순히 ‘기준연도 개편에 GNI 상승’ ‘1인당 3만 달러, 문재인정부 아닌 박근혜정부 때’ 정도의 얘깃거리가 생각났다. GNI가 오르면서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1인당 GNI 4만 달러에 보다 근접하긴 했지만 10년째 3만 달러에 머물러 있으니 여기에 의미를 두기는 모호했다.
보통 이럴 때 꺼내 드는 카드는 다른 나라와의 비교다. 지난해 초 한국은행이 ‘2022년 한국의 1인당 GNI’를 발표했을 때도 대만과 비교하면서 숫자에 의미가 더해졌다. 당시 한국 1인당 GNI가 대만에 역전당했는데 ‘1인당 GNI, 20년 만에 대만에 추월’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이번에도 그랬다. 기준연도 개편으로 오른 수치를 다른 국가와 비교했더니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했다. 일본에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게 한국인 정서다. 그런 일본을 뛰어넘었으니 얼마나 좋은 이야깃거리인가.
물론 여기에도 생각해볼 지점은 있다. ‘초엔저’ 현상에 따른 일시적 착시 효과일 수 있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달러 기준 일본의 1인당 GNI가 줄어든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날 인터넷 뉴스 창은 ‘1인당 국민소득, 사상 첫 일본 추월’로 도배됐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양적 개념이 실상을 잘 표현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비슷한 때에 ‘20’이란 숫자가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미국 심해 탐사컨설팅 업체 액트지오가 동해 심해 석유·가스 탐사 성공률로 내건 수치다. 그런데 이 20%가 어떻게 나왔는지가 모호하다. 어떤 계산을 통해 얻은 값일 텐데 어떤 수식에 어떤 수가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값을 낸 사람에게 물었더니 “굉장히 양호하고 높은 수준의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20%의 성공률은 80%의 실패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논란이 계속되자 정부가 비교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금세기 최대 심해 유전이라 불리는 남미 가이아나 유전에 사용됐던 분석 방법이 (동해 가스전에도) 동일하게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가이아나 유전의 성공 확률은 16%였는데, 동해 가스전의 성공 확률은 20%이니 성공률이 상당히 높다는 게 정부 해석이다. 단순 비교만 놓고 보면 정부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단순할까. 서울대 교수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 기억난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조건에서 비교했다면 판단의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다른 사람, 다른 집단에서 다른 데이터를 갖고 평가할 때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황인호 경제부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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