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집에서 죽을 수 있는 행복
마지막을 보낼 수 있다면…
이는 인간의 존엄 지키는 것
올해 초에 일본 오키나와로 답사를 갔다가 요미탄손의 한적한 마을을 걷던 중 한 집 앞에 걸린 장례식 표시를 보았다. 이웃집과 다름없이 평온해 보였지만, 문 앞에 놓인 꽃다발과 조의의 글귀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어째서 이런 장면을 접하기 어려워졌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도 전통적으로 집에서 또는 고인의 의미 있는 장소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을 중요시하는 장례문화를 갖고 있었다. 객사(客死)는 안 된다며 임종을 앞둔 환자를 무리해서 집으로 옮겨오는 걸 두고 지나치다는 비판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병원 부속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의례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는 장례조차 편리성과 효율성을 우선하는 시대 흐름을 거스르기 어려웠던 결과일 것이다.
외국에서는 고인의 자택이나 종교시설, 혹은 별도로 마련된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인지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목적인 병원에 장례식장이 부속된 것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대개는 그것이 거북하거나 부적절한 것 같다는 취지였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어야 하는 장례식의 정서적, 사회적, 윤리적 의미를 배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례식이 고인을 기리는 행위가 아니라 상업적인 거래로 전락할 위험도 없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다수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상황에서 고인의 장례식을 부속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편리성을 도외시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렇게 획일적인 현상이 벌어진 것에는 자신이 살던 집에서 죽기 어려운 한국적 상황도 한몫하는 것 아닐까.
현대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고 있다. 이런 기관에는 전문 의료진이나 요양 전문가가 상주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회복될 기약 없이 낯선 장소에서 차가운 의료 장비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외롭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평생을 살아 왔던 익숙한 환경에서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죽음을 맞을 수는 없는 것일까.
집에서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집에서 평범한 일상과 함께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사회로 나아가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의료 지원과 돌봄 서비스를 확대해야 하고 가족과 친구들이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인구가 고령화됨에 따라 지속적인 의료적 돌봄이 있어야 하는 만성 질환을 앓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해서도 ‘재택 의료 돌봄’ 체계가 마련되면 좋겠다.
의료 전문가가 다양한 사정을 고려해 일관된 진료와 치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가족이 병구완에 더 많이 참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것은 비용면에서도 장기 입원이나 요양원 같은 시설 간병보다 유리하다. 사회복지사나 심리상담사, 지역사회의 지원 그룹이 간병 과정에 접근할 수 있다면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존엄한 삶에는 편안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존중하는 것도 포함된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주인공 어린 모모가 병원에서 절대로 죽기 싫다는 로자 아줌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다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리 늙었다 해도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늙어서 쇠약해지고 노환이 생기더라도 여전히 인간적인 행복은 소중하다. 일상적 삶의 연장으로서 집에서 지내다가 죽음을 맞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 삶과 이별하는 과정이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할 것 같다.
허영란 (울산대 교수·역사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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