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오물 풍선’ 긴장 국면에 예고된 푸틴의 방북

2024. 6. 1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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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북한은 원래 기이한 나라인데, 최근 발생한 두 사건을 보면 더욱 그렇다. 첫째, 오물 풍선을 보면 정권의 취약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런 행위가 외부에 얼마나 유치하게 보이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불안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북한 주민과 외부를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고, 한국의 대북 전단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은 오물 풍선 살포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음이 이번에 두드러졌다. 한국의 탈북민 단체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이후 대북 전단 풍선을 날려 보냈고, 한국 정부도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이는 지극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 우크라이나 전쟁 판세 휘청거려
러시아도 남북 긴장 원치 않아
푸틴이 김정은 자제시킬지 관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노동당 핵심 간부들이 책을 펼쳐 놓고 필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고 있다. 김 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창립 78주년을 맞아 지난 1일 열린 개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강의도 참관했다. 조선중앙TV 캡처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 정지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조치는 북한에 큰 타격이다. 비무장지대(DMZ) 주변의 북한 주민과 군부대에서 대북 방송을 듣게 될 것이다. 오물 풍선 살포는 북한 정권 입장에서 얻을 게 하나도 없으니 큰 실수다.

또 하나의 사건은 지난 1일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회의에서 비친 일부 간부들이 보던 정치 교과서에 관한 것이다. 연로한 당 핵심 간부들이 초등학생들처럼 책을 펼쳐 놓고 필기하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김정은의 모습(사진)은 실로 기이했다.

생전에 김정일은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여러 조언을 듣고 자신과 다른 의견도 어느 정도 고려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 집권 초기에도 그랬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많은 고위 간부가 회담을 반대했다면서 싱가포르에 오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중앙간부학교 사진을 보면 상황이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상 속 고위 간부들은 더는 현명하거나 존경받는 위원장의 참모가 아닌 김정은의 뜻을 받드는 신하들 같았다. 김정은이 최룡해·리병철 등 연로한 소수 참모에게만 귀를 열어 둔다면, 이들의 전무한 국제 경험을 볼 때 앞으로 북한은 더 많은 실기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남북한의 긴장이 격화한 상황이라는 점이 우려스럽다.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로 한국은 최전방 지역에서 훈련이 가능해졌다. 북한도 비무장지대 근처에서 정찰이 용이하도록 상당수 토지를 정리했다. 과거와 달리 양측 군의 접촉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북한의 잇따른 오물풍선 도발에 맞서 정부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 정지를 결정했다. 조창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같은 날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정지안과 관련해 국방부의 향후 방침을 브리핑했다.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로 대북 확성기 사용과 함께 군사분계선(MDL) 일대 군사훈련 재개가 가능해졌다. 뉴스1

지금 상황은 바람 앞의 등불 같다. 지금 상태가 지속하면 북한이 지는 게임이다. 북한은 애초에 대북 전단을 중단시키려고 오물 풍선으로 대응했다. 이제 북한은 다음 행보를 조심스럽게 결정하기 바란다. 2015년 북한은 한국의 대북 확성기를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지금 그와 같은 행동을 하면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의 우방이 김정은의 자제를 촉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체질적으로 국경 지역의 불안정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놀랍겠지만 최근 관계가 급격히 가까워진 러시아가 더 큰 목소리로 북한의 자제를 촉구할지도 모른다.

북한의 대러시아 무기 공급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북한은 러시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무기 공급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휘청거리고 있으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600억 달러 규모의 군사 지원을 하면서 전세가 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반도에 충돌이 발생하면 북한의 대러시아 무기 공급은 중단될 수밖에 없고, 이는 러시아에 재앙이다. 지난 7일 러시아 외교부 장관이 한반도 긴장에 대해 유감과 우려를 표명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모습. 러시아 매체는 최근 푸틴 대통령이 이르면 6월 중에 방북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러시아 정부는 북한 정권에 자제를 촉구하려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의 직접 대화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러시아 매체는 최근 푸틴 대통령이 이르면 6월 중에 방북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과 서방 세계가 푸틴의 방북이 성사되면 1961년 북·러 군사동맹의 재점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북한에 러시아의 군사 기술 이전이 확대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에 푸틴이야말로 김정은의 자제를 끌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일 수 있다. 한반도 안정 여부가 푸틴 손에 달릴 수 있다면 이는 놀라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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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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