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죽기를 마다하지 않은 미끼 작전, 한국전 판도 바꾸다
지평리 전투의 유엔군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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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후퇴 후 밀리던 전쟁의 기로
유엔군 5600명, 5만 중공군 맞서
미 프리먼, 부상 입고도 후송 거부
몽클라르, 프랑스군 백병전 지휘
리지웨이, 적 약점 간파도 주효
펑더화이, 싸움 패하자 휴전 모색
」
후퇴 거듭 유엔군 공황 상태
지평리 전투에서 유엔군이 승리한 데는 미 8군 사령관에 막 부임한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의 역할이 컸다. 50년 12월 말 워커 장군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그의 후임으로 왔는데 당시 한국전 상황은 엉망이었다. 압록강 언저리까지 진출했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기습으로 서울마저 내주고, 평택-안성-원주-삼척 선으로 후퇴하면서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리지웨이 신임 사령관에게 당면했던 일은 청천강에서부터 후퇴만 거듭한 유엔군의 전투 의지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리지웨이는 이를 위해 부임한 지 한 달 만인 51년 1월 말에 ‘늑대 사냥개(Wolfhound) 작전’과 ‘벼락(Thunderbolt) 작전’을 전개했다. 리지웨이가 이 작전을 편 건 유엔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설 수 있음을 하루빨리 입증해 다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니게 하기 위해서였다. 리지웨이가 구상한 일련의 반격작전을 통해 유엔군은 1·4 후퇴 때 적에게 내준 서부전선의 한강선까지 진출해 서울 탈환을 목전에 둘 수 있었다.
그러자 중공군은 미군과의 전투를 피하고 화력이 약한 국군과 상대하기 위해 주력부대를 서부전선에서 중부전선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강원도 횡성의 중부전선에서 국군 8사단을 무너뜨리고 지평리로 향했다. 지평리는 미 9군단과 미 10군단을 연결하는 지점인 데다 서울-양평-홍천-횡성-여주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그래서 지평리를 뺏기면 서부전선의 유엔군 측방이 위협받아 아군이 둘로 쪼개지면서 유엔군은 또다시 낙동강까지 밀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중공군은 지평리를 노릴만했다.
미 23연대는 미 9군단의 우측을 엄호하기 위해 지평리에 진주했는데 국군 8사단이 횡성에서 무너지면서 고립되었다. 이에 프리먼(P Freeman) 연대장은 철수를 건의했는데 리지웨이는 “중공군의 이번 공세가 성공하려면 지평리를 반드시 점령해야 하니까 아군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평리를 확보해야 한다”라며 일축했다. 그래서 23연대는 중공군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는 죽음을 전제로 한 미끼였다.
리지웨이가 이런 모험을 감행한 건 앞으로 한국전의 운명이 지평리 전투 결과에 달려 있다고 판단해서다. 프리먼 대령은 리지웨이의 이런 의중을 읽자 부하들에게 ‘용감한 자든 비겁한 자든 살기 위해선 무조건 싸워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했다. 지평리 주변은 280m 내외의 고지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방어하기에 유리했어도 그 둘레가 18㎞나 달해 1개 연대 병력으론 어림없었다. 프리먼은 고심 끝에 진지의 직경 폭을 1.6㎞로 줄인 뒤 사주방어(四周防禦)를 택했다.
중공군은 2월 13일부터 유엔군의 목을 서서히 조여 왔다. 낮에는 지평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하나씩 차단하고, 해가 진 뒤에는 횃불을 올리고 특유의 피리 소리를 내면서 유엔군 방어망으로 돌진했다. 유엔군이 맹렬한 포격으로 대응했어도 중공군은 8차례의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유엔군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이때 프리먼은 지휘소 텐트 옆에 떨어진 중공군의 박격포탄에 부상당했다. 그런데도 후송을 거부한 채 진지를 절뚝거리며 찾아다니면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프리먼의 이런 행동은 전투에 지친 병사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유엔군 전사 52명, 중공군은 4900명
알몬드 미 10군단장은 프리먼의 부상을 알고 연대장을 즉시 교체했다. 그러나 프리먼은 “내가 부하들을 이끌고 여기에 왔으니 나갈 때도 함께 데리고 나가겠다”며 새 연대장이 부임했어도 자리를 그냥 지켰다. 나흘간 이어진 격전 끝에 그는 지평리 방어에 성공했다. 이 방어전의 성공은 유엔군 5600명과 중공군 5만 명이라는 10대 1의 열세 가운데서 이뤄낸 쾌거다. 또 유엔군 전사자는 52명뿐인데 반해 중공군 전사자는 4900명에 달했다. 게다가 유엔군은 전술적으로뿐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승리해 그 후 한국전의 흐름을 크게 바꿔놨다.
지평리 전투 승리에 있어 프랑스군의 분전도 무시할 수 없다. 중공군이 피리와 나팔을 불면서 새까맣게 몰려오자 프랑스군도 수동식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면서 이들의 피리와 나팔 소리를 제압했다. 나중에는 중공군이 프랑스군 진지까지 덮쳐 백병전이 불가피해지자 철모를 벗어 던지고 머리에 빨간 수건을 둘러맨 채 총검과 개머리판으로 중공군과 상대했다. 미군이 프랑스군의 이런 분전에 놀라자 대대장 몽클라르(R Monclar, 1892~1964)는 “총칼은 통조림이나 따려 준 게 아니다”라며 가볍게 응수했다.
몽클라르는 중장으로 전역한 장성인데 프랑스 1개 대대의 한국전 참전이 확정되자 스스로 4계급을 낮춰 대대장으로 참전했다. 주위에서 만류했어도 “중령이라도 좋다. 나는 늘 전쟁터에서 살아왔다. 곧 태어날 자식에게 최초의 유엔군 일원으로 평화를 위해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드골 대통령과 오랜 친구 사이였다.
지평리 전투의 승리에는 리지웨이의 정확한 적정(敵情) 분석도 한몫했다. 그는 중공군이 지닌 장단점을 하나씩 점검하다 보급 문제로 일주일 이상 전투를 지속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보급상의 이런 애로로 중공군은 전황이 유리해도 일주일이 지나면 전투를 중지해야 했다. 그래서 리지웨이 사령관이 프리먼에게 지평리에서 일주일만 버티라고 지시한 거다. 지평리 전투는 중공군의 이런 약점을 시험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는데 리지웨이의 분석이 맞아떨어졌다.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이 예상 밖의 큰 패배를 당하고, 많은 사상자까지 발생하자 사기는 바닥에 떨어지고,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는 충격에 빠졌다. 중국 전쟁사 전문가인 천젠은 지평리 전투의 패배로 모든 게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지평리 전투 이전만 해도 모든 상황이 중공군에게 유리하다고 믿고, 유엔군을 물리칠 방법도 터득했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남은 건 최종 승리인데 이 승리도 조만간에 이루어질 거라 믿었다. 그런데 유엔군이 지평리에서 승리하면서 이런 희망이 사라졌다.” 반면 유엔군은 반격의 발판을 마련해 51년 3월 말까지 38선 이남 지역의 대부분을 회복했다.
미 정부 소극적, 더 북진 못해 아쉬워
중공군은 지평리 전투의 패배를 만회하고자 약 한 달 반 후인 4월 말에 제5차 총공세를 감행했지만, 이 총공세마저 실패해 펑더화이는 비로소 한국전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다음부터 유엔군과 중공군 사이에는 사실상의 교착상태가 계속되면서 서로 휴전을 모색하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지평리 전투의 승리로 유엔군은 지금의 휴전선보다 훨씬 더 많이 북진하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이젠하워 미 행정부가 한국전을 빨리 끝내려고 해 이를 이루지 못한 점이다.
부상당해도 전투 현장을 끝까지 지키면서 책임을 다했던 프리먼의 활약은 미 육사 교재에도 실렸다. 그는 대장까지 승진해 유럽 주둔 미 육군 사령관을 지냈다. 몽클라르는 전투 때 입은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72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숨졌다. 리지웨이는 전용기로 최전선을 누비다 중공군 진지에 착륙할뻔 했지만 산속으로 황급히 숨어 들어간 뒤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그 후부터 그의 가슴에 맨 수류탄을 누구도 조롱하지 않았다. 6·25를 맞이하면서 이들의 분전이 기억에 새롭다.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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