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아트 다이어리] 흘러가는 시간을 그려낼 수 있을까
엊그제 종강을 했다. 지난봄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면서 이번 학기가 또 어떻게 펼쳐질지 설렘이 있었는데, 시작과 함께 끝이 나는 느낌이다. 나이 들어가는 탓일까. 갈수록 시간의 가속도를 느낀다. 초롱한 눈망울로 강의실에서 만났던 스무살 남짓의 제자들이 중년의 교수가 되어 찾아올 때면 특히 더 감회에 젖어들게 된다. 모든 생명은 시간 속에서 피고 지는 꽃잎과 같은 것, 인생이라고 다를 리 없다. 생각해 보면 미술도 시간 위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몸짓이고 풍경일 뿐이다. 그리고 미술사는 시간 속에 뜨고 진 수많은 별의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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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변화를 어떻게 담을까
시곗바늘 그려넣지 않은 세잔
과거·미래에 열린 현재를 표현
」
19세기 말, 시간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모든 것은 변한다고 강조하면서, “변화 자체가 시간”이라 말했다. 덧붙여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했다. 이러한 시간관에 따라 그는 리얼리티란 변화, 연속, 흐름의 속성을 지닌 것이고 우리의 의식 또한 그렇다고 설명한다. 예나 이제나 미술은 근본적으로 리얼리티를 담고자 한다.
그렇다면 미술작품으로 베르그송이 말한 시간의 리얼리티를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어려운 얘기다. 18세기 고트홀트 레싱이 문학은 시간적이고, 미술은 공간적이라 제시한 이후 “시각미술은 공간예술”이라는 공식이 통념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언제나 관습을 벗어나고 습관적 코드를 전복하려는 게 아방가르드가 아니던가. 미술사의 별들 중 시간을 표현하려던 화가들이 있었다. 우선, 눈앞의 생생한 현재를 빛과 색채로 나타내려 했던 인상주의자를 떠올릴 수 있다. 클로드 모네는 루앙 대성당을 여러 번 찾아가 특정한 시간의 빛과 색채로 순간을 포착했다. 그의 루앙 대성당 연작은 시간의 순간적 기록인 셈이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이런 작업은 시간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그는 루앙 대성당을 제대로 그리려면 그 앞의 고정된 자리에서 볼 것이 아니라, 성당을 한 바퀴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뜻과 대략 유사하게 보는 방식을 우리는 큐비스트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풍경이나 대상을 여러 시점으로 보는 다시점을 한 화면에 구현해냈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반응은 여전히 탐탁지 않았다. 몸에 달린 눈을 아무리 재빨리 움직여 장면을 그린다 해도 물 흐르듯 연속적인 시간을 그릴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애초에 베르그송에게 시간의 지속성을 고정된 하나의 화면에 나타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베르그송의 생각을 예견하듯, 일찍이 세잔은 시계를 그린 작품(사진)에서 아예 시곗바늘을 그려 넣지 않았다. 놀랍지 않은가? 특정 시간을 지정하지 않는 의도적 선택이었다. 그리고 “공기를 그린다”는 세잔의 말대로 그의 회화는 후기로 갈수록 유동적인 색채, 흔들리는 공간으로 가장 베르그송적인 작가로 인정받게 된다. 그의 풍경화에서 우리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풍경과 이를 감지하는 의식의 흐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왜 마티스에게 ‘회화의 신’이라 불리고, 피카소를 끊임없이 좌절하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모딜리아니는 왜 그의 그림 복사본을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릴 수 없다고 여겨온 것을 그려냈으니 말이다.
미술작품은 삶과 닮아 있다. 이 점이야말로 미술공부가 끝없이 흥미로운 이유다. 베르그송이 강조한 것은 시간의 핵심적 속성인 ‘지속(duration)’에 있었다. 우리 삶에서 이를 체험하며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가 서로 차단되지 않고, 어느 한 편에 치중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는 과거에만 향하면 몽상이나 슬픔, 또 후회에 빠지기 쉬운 반면, 현재 속에서 직접적 자극에만 반응하며 사는 것은 동물적 삶이라고 피력했다. 요컨대 베르그송이 제시한 가장 좋은 삶이란 현재 속에서 균형을 잡고 언제든지 과거나 미래로 왕래할 수 있는 삶인 것이다. 그에 의하면 가장 자유로운 인간은 과거를 통합하고 축적된 많은 기억을 활용하여 현재의 도전에 대응하며 동시에 미래의 비전을 그리는 자다.
대학의 교직 생활은 한 학기마다 파종하고 거둬들이는 지식 농부의 삶과 같다. 대략 50번째의 종강을 맞았지만, 시작의 설렘보다 마칠 때의 감회가 크기는 여전하다. 오늘, 강의실을 나가 이제 개별적 삶으로 돌아가는 젊은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수업에서 연속되는 그들의 시간을 그려보게 된다. 모쪼록 그 마음에 배움의 의욕이, 창작에의 씨앗이 움터지기를. 그래서 언젠가 오늘을 돌아보며 우리의 옛 수업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줬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전영백 홍익대 교수, 미술사·시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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