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뉴스터치]마크롱의 도박
2002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인종차별과 반(反) 이민의 대명사인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 후보가 2위를 차지해 프랑스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프랑스는 좌우를 막론하고 극우파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2차 투표에선 우파인 공화국연합의 자크 시라크 후보가 80%가 넘는 압도적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프랑스에선 강경 우파에 대한 장벽을 ‘라 디그’(la digue·댐)라고 표현하곤 한다. 장마리 르펜의 딸인 마린 르펜이 결선 투표에 진출한 2017년과 2022년 대선에서도 중도파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당선되는 데 댐이 기능을 했다.
하지만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선 국민전선의 후신인 국민연합이 프랑스 내에서 1위를 차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여소야대인 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하기로 했다. 도박이나 다름없다. 프랑스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다수당에서 총리를 맡는 것이 관례다. 마크롱 대통령은 12일 기자회견에서 “극우 총리가 임명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라고 호소했다.
국민연합은 조르당 바르델라라는 젊은 정치인을 앞세워 외연 확장에 열을 올린다. 공화국연합의 후신인 공화당은 당 대표가 국민연합과의 연대를 주장했다가 제명됐다. 하지만 대통령을 배출한 전통의 우파 정당 수뇌부가 극우와의 연대를 얘기한 것 자체가 금기를 깬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와는 사정이 다르지만 한국도 댐에 금이 가는 경고음이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가 커지고 양극화가 심해졌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관례와 상식이 무시되는 일이 잦아진다. 극단주의와 포퓰리스트가 세력을 키울 조건은 이미 마련됐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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