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개인감정은 없다”는 가해자의 변명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사상 최악의 마약 범죄 세력을 와해시키기 위한 작전을 다루고 있다. 미국 CIA가 주도하는 작전에 FBI 요원 케이트와 정체불명의 ‘작전 컨설턴트’ 알레한드로가 투입된다. 그런데 두 사람의 생각은 180도 다르다. 케이트는 법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고 믿는다. 반면 알레한드로는 “시계의 구조(법)보다 시계바늘(현실)을 보자”는 입장이다.(※스포 있음.)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알레한드로가 마약조직 보스의 저택을 급습하는 장면이다. 그는 경비원들을 차례로 쓰러뜨린 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던 보스에게 총을 겨눈다. 이들의 대면 과정에서 감춰진 진실이 드러난다. 과거 검사였던 알레한드로는 마약조직에 아내와 딸을 잃었다. 보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개인감정은 없었다”고.
개인감정은 없었다? 이 얼마나 깔끔한 말인가. 하지만 이토록 비정한 말도 없다. 자신의 한마디에 사람이, 가족이 죽었는데 “개인감정은 없었다”니….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동일한 대사가 숱한 영화들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의 딸을 인신매매한 브로커가 목숨을 구걸할 때(‘테이큰’)도, 반란군 장교가 상관을 불법 체포할 때(‘서울의 봄’)도 이 말이 쓰인다.
어떤 말이 영화에 자주 나온다는 건 그만큼 현실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해고나 인사불이익 같은 ‘나쁜 소식’을 전할 때 “개인감정은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비즈니스 차원에서’ 혹은 ‘조직을 위해’, ‘모두를 생각해서’ 그런 것이지 당신을 미워하거나 싫어해서 이러는 게 아님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 변명은 이기적인 거짓말이다. 비즈니스나 조직 뒤에는 말하는 그 개인의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단지 “미안하다”고 말하기 싫을 뿐이다. 그리고, 진짜로 감정도 없이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면 더 끔찍한 일 아닌가?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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