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매치 데뷔골까지 34년 54일…“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죠”

피주영 2024. 6. 1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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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매치 데뷔 골 당시 세리머니를 재연하는 주민규. 팬들의 환호를 더 크게, 더 오래, 더 소중히 듣겠다는 의미다. 김경록 기자

“이 한 골을 넣기 위해 버티고 또 버텼나 봅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감격의 첫 골을 터뜨린 주민규(34·울산 HD)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6일 열린 싱가포르와의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5차전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해 1골 3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이 7-0으로 이기는 데 앞장섰다. 지난 3월 태국과의 경기에서 ‘만 33세 343일’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역대 한국 선수 최고령 A매치 데뷔 기록을 세웠던 주민규는 세 번째 경기였던 싱가포르전에서 ‘34세 54일’의 나이로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렸다. 한국 축구 최고령 A매치 데뷔골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그는 지난 11일 중국과의 아시아 2차 예선 최종 경기에선 결승 골에 힘을 보탰다. 후반 16분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은 주민규가 페널티 박스를 파고들자 중국 수비수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렸다. 그 덕분에 2선에 있던 공격수 이강인(파리생제르맹)에게 슈팅 찬스가 열렸다. 중국전 이튿날인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의 한 축구장에서 주민규를 만났다. 그는 “A매치 데뷔 골을 기록한 덕분에 부담감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넣은 골 중 가장 값지다”라고 말했다. 주민규는 K리그에서 138골을 기록 중이다. 이동국(228골), 데얀(198골·이상 은퇴)에 이어 통산 최다 골 3위를 달리고 있다.

주민규는 A매치 데뷔 골을 기록한 뒤 양손을 귀에 갖다 대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는 “대표팀 경기에서 팬들이 ‘주민규’를 외치기까지 무려 34년이 걸렸다. 팬들의 환호를 더 크게, 더 오래 그리고 더 소중하게 듣겠다는 뜻의 세리머니다. 앞으로 더 자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팬들은 주민규에게 ‘주리 케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주민규의 이름과 잉글랜드의 간판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31·바이에른 뮌헨)의 이름을 합친 말이다. 케인은 지난 시즌까지 토트넘에서 손흥민(32·토트넘)과 콤비를 이뤘던 스트라이커다. 주민규는 “(손)흥민이와 뛰면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춘 것처럼 자연스러운 플레이가 나온다. ‘주리 케인’이란 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주민규

주민규의 성장 스토리는 한 편의 드라마다. 밑바닥인 연습생으로 시작해 축구 선수로는 최고의 영예인 대표팀에 뽑혔기 때문이다. 한양대를 졸업한 주민규는 2013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했지만 지명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연습생으로 당시 2부 리그 팀인 고양 HiFC(해체)에 입단했다. 당시 연봉은 2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조건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주민규는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팀 훈련이 끝난 뒤에도 발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슈팅 훈련을 했고, 거친 몸싸움을 이겨내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2015년 2부 창단 팀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하면서 포지션도 미드필더에서 공격수로 바꿨다.

주민규는 “연습생 때 월급은 100만원도 안 됐다. 이랜드에선 평생 뛴 포지션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슬퍼하는 것도 사치였다. 프로에선 살아남는 것이 곧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탄탄한 체격(1m83㎝·82㎏)에 정교한 킥으로 무장한 그는 이랜드 입단 첫 시즌에 23골을 터뜨리며 2부 리그를 평정했다. 2019년엔 울산 유니폼을 입고 꿈에 그리던 1부 무대를 밟았다. 2020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지만, 이듬해 22골을 터뜨리며 생애 처음으로 1부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2023년 다시 울산으로 이적한 그는 그해 또다시 득점왕(17골)에 오르며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토록 염원하던 태극마크의 꿈은 지난 3월 황선홍(56) 임시 감독이 그를 발탁하면서 이뤄졌다.

주민규는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는데 끝까지 버틴 덕분에 지금 웃게 됐다. 연습생, K리거들 그리고 나이가 많아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규는 2026 북중미월드컵이 개막할 때면 36세가 된다. 그는 “팬들이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라는 플래카드를 만들어 선물해주셨다. 이제 다음 A매치만 보고 열심히 달리겠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서른넷 주민규의 컨디션이 굉장히 좋다’는 것”이라며 빙긋이 웃었다.

■ 축구선수 주민규는 …

「 ◦ 생년월일: 1990년 4월 13일(만 34세)
◦ 소속: 울산 HD
◦ 체격: 1m83㎝, 82㎏
◦ 포지션: 공격수
◦ A매치: 4경기 1골 3도움
◦ A매치 기록: 최고령 데뷔(33세 343일), 최고령 데뷔골 2위 기록(34세 54일)
◦ 주요 성과: 2021·23년 K리그1 득점왕, 역대 K리그 득점 3위(138골)
◦ 별명: 주리 케인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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