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개편 어떻게···공제 한도 10억·높은 세율 ‘요지부동’
종합부동산세 못지않게 정치권에서 개편 논의가 뜨거운 이슈는 상속세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기업 경영뿐 아니라 국민 실생활까지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상속세 공제 한도를 높이고 상속세율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지지만 법 개정이 필요해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속세율은 OECD 국가 중 최고
가장 큰 논란거리는 상속세 공제 한도다. 1997년부터 28년째 ‘10억원’에 묶여 있다. 그동안 물가가 치솟고 국민소득도 뛰었는데 상속세 기준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일례로 서울 강북권 20~30평대 아파트 한 채를 물려받아도 상속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5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1억9773만원으로 통계를 처음 낸 2009년 5월(5억2104만원) 대비 2배 이상 뛰었다.
이에 비해 미국은 물가 상승세를 감안해 상속세 공제 한도를 계속 늘려왔다. 지난해 미국의 상속세 공제 한도는 1290만달러, 우리 돈으로 176억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17배가 넘어간다.
과도한 상속세율도 논란이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상속세 제도를 유지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 중 일본(최대 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미국(40%), 프랑스(45%), 독일(30%) 등 선진국보다도 높고 OECD 평균(15%)을 크게 웃돈다. 현행 상속세율은 과세표준 1억원 이하 10%, 1억~5억원 20%, 5억~10억원 30%, 10억~30억원 40%, 30억원 초과 때는 50%다. 최고세율이 1996년 40%에서 2000년 50%로 오른 뒤 24년째 유지돼왔다.
기업인이 가업상속을 주저하게 만드는 ‘대주주 할증 과세’를 두고서도 말이 많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50%인데, 경영권 프리미엄만큼 더 많은 재산을 상속받는다고 보고 세율을 10%포인트 높여 60%를 물리는 방식이다.
실제로 한미약품그룹 창업주인 故 임성기 회장 유족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벌인 것도 수천억원에 달하는 상속세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20년 창업주인 임성기 회장이 타계하면서 임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 2308만여주가 아내와 자녀들에게 상속됐다. 이에 따라 임 회장 아내인 송영숙 회장과 세 자녀는 5400억원 규모 상속세 부담을 떠안게 됐다. 송 회장과 딸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 등 모녀 측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하자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차남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등이 반발하고 나섰다.
재계 1위 삼성그룹 역시 상속세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0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포함한 삼성가(家) 유족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전 세계 역대 최대 규모인 12조원이었다.
경영계는 국내 기업인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우려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공시대상기업집단 경영자
평균 연령은 67.5세, 제조 분야 중소기업 경영자 평균 연령은 55.3세로 집계됐다. 머지않아 거액의 상속세 부담에 직면하게 된다는 의미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가 1965~2013년 OECD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상속세수가 1조원 늘어날 때 경제성장률은 0.63%포인트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속세가 기업 공익 활동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나름 설득력 있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에 주식 출연 시 상속세 면세 한도를 5%, 그 외에는 10~20% 제한한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은 보유 주식 의결권도 제한받는다. 대다수 국가가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하는 경우 상속세를 완전히 면세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공익법인 주식 출연 시 세금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상목 “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
대한상공회의소는 ‘상속세제 문제점과 개선 방안’ 보고서를 통해 “현행 상속세제는 부의 재분배보다 경제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OECD 평균 수준인 15%까지 상속세율을 낮추고, 최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 등을 통해 상속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 전문 연구기관 파이터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 정보통신업 등 혁신 산업에 속한 기업의 가업상속세율을 30%포인트 인하하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6조원 늘고, 일자리는 3만개가 창출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태화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경제 활력을 저하시키고 최대주주가 기업가치 증대보다 상속세 재원 마련에 주력하게 만든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낮춘 뒤 장기적으로는 OECD 평균 수준으로 인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상속세를 아예 자본이득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식, 부동산 등을 상속하는 시점에는 과세하지 않고, 팔아서 현금화할 때 일반 양도세율보다 높은 세금을 물리는 개념이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은 이미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3호 (2024.06.12~2024.06.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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