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 함께 하다 동강난 화초, 그런데 부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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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로 이사오던 해에 미용실 하던 고객이 우리에게 맡겼다가 주고 간 화분이었으니, 셈해보니 10년 가까이 우리와 함께한 화분이었다.
자세히 보니 딱딱한 가지 사이로 깨 한 톨만 한 연두색순이 나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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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화 기자]
나는 동네에서 도시락 가게를 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 가게 리모델링을 살짝 했다. 처음에 여기 이사 오면서 했던 인테리어가 조금씩 색이 바래어가면서 왠지 심란한 기분이 올라오려 할 때였다. 요즘 자영업 경기도 썩 좋지 않고 해서 기분전환도 할 겸 셀프 리모델링을 시도한 것이다.
솜씨 좋은 남편이 벽에 페인트도 바르고 블라인드도 새로 달았다. 당근을 통해 중고로 대형 테이블과 결에 맞는 의자도 함께 구입했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꽃무늬 식탁보를 씌운 테이블에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눈다. 이른 아침에 남편은 여기서 성경도 읽고 나는 짬나는 대로 글도 쓰는 기분 좋은 자리가 생겼다.
일을 마친 후 잠깐씩 손을 보는데도 제법 분위기가 좋아지는 듯했다. 어느 날 피곤한 내게 남편은 먼저 퇴근을 권했고, 나는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세탁기를 돌리려 하던 참이었다.
그날 남편은 개업 때부터 애지중지 키워온 화분을 다시 다른 공간에 멋지게 배치할 요량이었단다. 큰 화분을 이리저리 옮기는 건 주로 남편이 해왔지 내 몫의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남편이 풀 죽은 모습으로 들어온다.
"어떡하지? 화분을 수레에 올려서 옮기려다가, 그만 쓰러져서 가지가 뚝 부러져 버렸어. 일단 흘러나온 화분의 흙을 도로 집어넣고, 뿌리만 남은 부러진 줄기를 심어 놓고 왔는데... 살 수 있을까? 다시 살아나면 좋겠다."
여기로 이사오던 해에 미용실 하던 고객이 우리에게 맡겼다가 주고 간 화분이었으니, 셈해보니 10년 가까이 우리와 함께한 화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제대로 이름도 모르고 있었구나. 고무나무 종류 정도로만 알았는데... 연둣빛 이파리들이 새로 나올 때마다 얼마나 신비롭고 깨끗한 기쁨을 선사해 주어 고마웠는지 몰라.'
출근해서 보니 덩그러니 큰 화분에 몽당연필 마냥 줄기만 남아있던 화초.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하고 서러워,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2주가 지났을 무렵의 어느 날, 남편이 소리를 쳤다.
"어어, 여보, 여기 새순이 나와!"
자세히 보니 딱딱한 가지 사이로 깨 한 톨만 한 연두색순이 나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대견한지, 얼마나 기특한지... 남편과 함께 돌아가며 보고 또 보고, 문을 여닫을 때마다 문 옆 화분에 '고맙다, 예쁘다' 하길 반복했다.
▲ 며칠이나 지났을까. 새싹이 올라왔다 |
ⓒ 임경화 |
아, 그렇구나. 뿌리가 죽지 않으면 죽은 게 아니구나! 너와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끝난 게 아니구나!
생각해 봤다. 만약 그날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너를 포기하고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듯 작은 식물도 최선을 다해 잎을 틔우고 살아내는데,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최근 들어 살짝 저기압이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남편도 때아닌 수다가 늘었다.
우리 부부는 화분을 사이에 두고 머리를 맞대는 시간이 많아졌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이지만 화분을 보며 조금씩 생각도 마음도 깊어지고 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일상이 이렇게나 마음을 새롭게 해주다니.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다 되었나? 이렇게 은퇴인가' 하는 아쉬움, 그리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수시로 고개를 내민다. 그럴 즈음이면 나는 일부러 큰 화분 속 여린 잎을 바라본다.
▲ 그로부터 약 2주가 지나자 제법 이파리가 풍성해졌다 |
ⓒ 임경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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