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홀로 돌아온 윤이나 “2년 전 생각이 많이 났다”
오르막 경사가 심판 15번 홀(파4) 티잉 그라운드에서 잠시 고민하던 윤이나(21)는 드라이버가 아닌 우드를 잡았다. 2년 전과는 다른 선택.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드라이버를 잡은 동반자 2명보다 더 멀리 보낸 티샷은 페어웨이를 잘 지켰다. 세컨드 샷은 조금 짧아 그린 앞 러프로 떨어졌지만, 정확한 플롭샷으로 파를 잡았다.
윤이나는 13일 충북 음성군 레인보우힐스 컨트리클럽(파72·6756야드)에서 개막한 한국여자오픈 1라운드를 마친 뒤 조금은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동료와 갤러리를 대하는 자세는 조심스러웠지만, 뼈아픈 기억이 남아있는 그때 그 홀을 무사히 지나가서인지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윤이나는 2년 전 이 대회에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1라운드 15번 홀 러프에서 찾은 공이 자신의 볼이 아닌 것을 알고도 그대로 플레이했고, 경기 직후 스코어카드에도 잘못된 타수를 적었다. 해당 사건은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결국 윤이나가 잘못을 실토하면서 대한골프협회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의 3년 출장정지 처벌로 이어졌다. 이후 이 중징계가 각각 1년 6개월로 줄어들면서 윤이나는 올 시즌부터 필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윤이나를 둘러싼 시선은 여전히 곱지만은 않다. 특히 논란의 시발점이 된 한국여자오픈을 앞두고는 과거의 잘못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윤이나는 이날 오전 6시 35분 10번 홀(파5)에서 서연정, 최민경과 함께 첫 번째 조로 출발했다. 공교롭게도 2022년 대회에서도 같은 시간, 같은 10번 홀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2년 전 잘못을 반성하라는 의미가 담긴 조편성이었다. 윤이나는 “오늘 숙소에서 나올 때 편안한 마음으로 오지는 못했다. 좋은 기억은 아니었던 만큼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2년 전 15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윤이나는 드라이버를 잡았다. 그런데 이 공이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깊은 러프에 빠졌다. 코스 특성상 볼을 쉽게 찾을 수 없었고, 순간의 유혹에 흔들려 오구 플레이를 하고 말았다. 이와 달리 이날 1라운드에선 우드로 티샷을 했고, 무난히 파를 기록했다.
윤이나는 “드라이버를 잡으면 랜딩 지점이 많이 좁은 편이다. 우드는 거리가 짧을 수는 있지만, 페어웨이를 지키는 확률이 올라가 우드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15번 홀에서 과거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지금 라운드에만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플레이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윤이나는 버디 4개와 보기 2개로 2언더파 70타를 기록했다. 1라운드를 언더파로 마치면서 무빙 데이를 선두권에서 치르게 됐다. 올 시즌 아직 우승이 없는 윤이나는 “남은 라운드는 욕심을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한다. 코스 자체가 경사가 심한 만큼 안전하게 경기를 운영할 계획이다”고 했다.
한편 1라운드에선 노승희와 배소현이 4언더파 공동선두로 나섰다. 정윤지가 합계 3언더파로 공동 3위를 달렸고, 이세희와 김민주, 한지원 등이 윤이나와 2언더파 공동 4위를 기록했다.
음성=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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