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조사본부, 최종보고서에 왜 '외압' 흔적 남겼나

김도균 2024. 6. 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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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8월 17일 회의 후 달라진 '채 상병 사망' 조사 보고서...폭탄으로 떠오른 국방부 조사본부

[김도균 기자]

해병대원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 연일 굵직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발 단독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기사들의 공통점은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조사 내용'과 연관돼 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국군의 최고수사기관으로 채 상병 사건을 처음 조사했던 해병대수사단과 마찬가지인 군사경찰 조직이다. 그런데 채 상병 사건 수사와 관련한 문서들의 생산 시기와 내용을 살펴보면 중요한 변곡점이 보인다. 바로 ' 2023년 8월 17일 이종섭 국방부장관 주재 회의 이후 판이하게 달라진 보고서 내용'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살펴보면 달라진 결과의 배경을 알 수 있는 '단서'도 확인된다.

국방부 조사본부 중간보고서 : 임성근 등 6명 혐의 있다... 그런데
 
▲ 경찰 출석하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13일 오전 경북 경산시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에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23년 8월 2일 국방부 검찰단은 이전에 해병대수사단이 경찰로 넘겼던 조사기록을 되찾아온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8월 9일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조사본부에 재검토 지시를 내린다.

그로부터 닷새 뒤인 8월 14일 조사본부는 하나의 보고서를 생산했다. '채상병 사망사고 관계자별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의 단서가 되는 정황 판단' 보고서(일명 중간보고서)가 바로 그것. <오마이뉴스>가 이 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임성근 전 사단장 등 해병 1사단 간부 8명에 대해 각각 혐의를 인정할 만한 정황이 있는지 판단한 결과가 담겨 있었다. 

이 중간보고서는 국방부 검찰단 등의 의견을 회신받기 위해 정리한 잠정 법리 판단 결과로 보인다. 해당 보고서를 보면 당시 조사본부는 임 전 사단장이 "'가슴 장화를 신어라' 등 구체적 수색 방법을 거론하는 바람에 채 상병이 장화를 신고 수중 실종자 수색을 하게끔 함으로써 안전한 수색 활동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또한 이를 근거로 임 전 사단장 등 6명에 대해 혐의가 있다는 의견을, 2명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리하면 국방부장관의 지시에 따라 재검토를 한 결과, 해병대수사단 조사결과와 비슷하게 임 전 사단장을 포함한 간부 6명에 대해 '혐의가 있다'고 본 것이다. 

참고로 2024년 3~4월 공수처는 재검토 과정에 관여했던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 10여 명을 방문 조사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8명을 다 혐의자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조사본부는 논의 끝에 하급간부(중위·상사) 2명을 제외한 6명을 혐의자로 적시한 보고서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2023년 8월 24일 조사본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간보고서에서의 판단을 뒤집고 대대장 2명에 대한 혐의사실만 적시해 사건 기록을 경북경찰청으로 재이첩했다. 열흘 만에 판단이 처음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2023년 8월 17일 이종섭 주재 회의 주목 

국방부 조사본부는 2023년 8월 20일 채 상병 사망사건 관련 최종보고서를 작성(21일 발표)했는데 그로부터 사흘 전인 8월 17일 이종섭 국방부장관 주재로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유재은 법무관리관과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도 참석했다. 회의 중 "처벌 대상인지 판단을 빼고 사실관계만 적어야 한다" "2명만 처벌 대상이 확실하다"는 말이 오갔다고 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이 같은 주장을 펼친 이들이 모두 군 법무조직 관계자들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법무관리관실은 "구체적으로 혐의가 인정되는 대대장 2명만 혐의자로 특정해 경찰에 이첩해야 한다"는 의견을 조사본부 재검토 기간 내내 고수했던 걸로 알려졌다. 8월 17일 회의에 참석했던 조사본부 관계자는 이를 '상당한 압박으로 받아들였다'고 공수처에 진술했다고 한다. 

결국 조사본부가 8월 24일 경북경찰청으로 넘긴 사건인계서에는 법무관리관실의 의견대로 대대장 2명의 혐의만 적시됐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남긴 '흔적' : 유관기관 의견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외압 의혹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그런데 조사본부는 2023년 8월 20일 생산한 최종보고서에 자신들의 의견과 군 법무조직 사이에 이견이 존재했다는 근거를 남겨놨다. 

조사본부 최종보고서 중 '[참고 6] 유관기관(국.법무관리관실, 국.검찰단) 의견 (요약)'에는 국방부 법무관리관실과 국방부 검찰단의 의견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중간보고서와 견줘봤을 때 결론을 바꾼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참고 자료에 이런 사실을 적시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조사본부는 왜 굳이 이런 흔적을 남겨놨을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과거 2013년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 사건, 2017년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사건 관련자들의 처벌 사례 때문이라는 데 대체적으로 견해를 같이했다.

이들 사건에서 국방부장관 등 수뇌부에 맹목적으로 충성했던 군사경찰(헌병) 관련자들이 대부분 처벌대상이 된 반면, 군 법무관들은 거의 처벌을 피해갔다는 것이다.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들이 책임을 지면 그다음부터는 '꼬리자르기'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군 법무조직 구성원들은 징계조차 받지 않고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조사본부 관계자들 사이에 '군사경찰은 이용만 당하다 책임만 지게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사이버사 댓글공작·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의 교훈 

이와 관련해 전 해병대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는 13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국방부 조사본부는 국방부장관의 재검토 명령에 사후 논란에 대해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면서 "국방부 법무관리관이나 국방부 검찰단장의 법률적 조언으로 책임 유무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국방부 조사본부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썼던 전례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조사본부) 재검토 결과 박정훈 대령과 같은 결론이었고, 같은 식구(군사경찰)이나 다름없는 박 대령이 국방부 검찰단장 주도 아래 집단 항명수괴, 압수수색, 구속영장 청구 등 일련의 과정을 겪는 걸 보면서 매우 안타깝고 분노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국방부 법무조직이 이종섭 장관을 앞세워 임성근 전 사단장을 혐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압력을 가하자, 이에 대해 겉으로는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하되 최종보고서에는 그 압력의 배경에 법무관리관과 검찰단장이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모든 결정은 군 법무관들이 하고 책임은 군사경찰에 미루던 관행은 이로써 새로운 이정표를 맞이하게 됐다"면서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국방부 검찰단장은 박정훈 대령 재판에 결정적인 법률 판단자로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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