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 안의 세계가 사람 사는 세상과 다르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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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권 기자]
▲ 병아리 닭장 안에서 부화한 병아리의 물 먹는 모습 |
ⓒ 권성권 |
나는 전남 목포에서 목회를 하면서, 작은 텃밭을 돌보고 닭장에 닭도 키우고 있다. 텃밭은 20평 남짓이고 닭장 속의 닭은 7마리다. 두 마리는 수컷이고 나머지는 암탉이다.
지난 4월 이전까지는 암탉만 키우고 있었는데, 그때 아는 형님이 수탉 두 마리를 더 줘서 닭장에 넣어줬다. 평소에는 달걀을 매일 같이 두세 개씩 내놓는 닭들이라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닭장 안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병아리가 처음으로 부화한 것이다. 작년에도 실은 어미 닭이 부화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되지 않았다. 그땐 이유를 잘 몰랐다. 알고보니 수탉이 있어야만 유정란이 되고 그 알이 병아리로 부화하는 것이었다. 올해는 수탉이 두 마리나 있어서 부화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물론 부화가 한꺼번에 되는 것은 아니었다. 스무 개나 되는 달걀을 처음엔 어미 닭 하나가 품기 시작했다. 10일이 지나 다른 어미 닭 하나도 함께 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주일 즈음에 첫 번째 병아리가 세상에 나왔다. 21일이 지나야 병아리가 나온다는 이치 그대로였다.
그런데 첫 번째 부화한 병아리가 이틀 만에 죽고 말았다. 그것도 어미 품에서 죽어버렸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지켜보는 나마저도 마치 갓난아이를 잃은 심정이었다.
▲ 부화한 병아리 물먹는 모습 ⓒ 권성권 |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자 두 번째 병아리가 세상에 나왔다. 이번에는 삐약삐약 소리가 나자마자 녀석을 꺼내 종이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는 내가 사는 집 거실로 데리고 갔다. 그 속에 종이컵을 잘라 물을 줘서 먹게 했고 병아리 사료까지 넣어줬다. 둘째 날까지는 잘 노는가 싶었는데 3일째 되는 날 녀석도 갑자기 축 늘어졌고, 결국은 죽고 말았다.
병아리를 살리고 키우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그때야 처음 알았다. 그로부터 2일이 지나 세 번째 병아리가 부화했다. 이번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냥 내버려 뒀다. 자식도 애지중지 키우기보다 방목하듯 키우는 게 더 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태어난 지 1주일을 넘기고 있는데, 아직까지 잘 살아 있다.
▲ 부화한 병아리가 물 먹는 모습 세번째 부화한 병아리가 아직까지 살아 있고 어미 닭을 따라 물을 먹는 모습. 다른 닭들도 병아리를 쫓아대지 않는다. |
ⓒ 권성권 |
지금까지 잘 살아 있는 병아리는 여러 어미 닭들의 틈속에서, 마치 독무대라도 즐기듯 잘 돌아다닌다.
물을 마실 때도 자신을 부화시켜 준 엄미 닭을 졸졸 따라다니지만, 다른 어른 닭들은 그를 지켜볼 뿐 쪼아대지 않는다. 그저 한 식구처럼 모두가 감싸주는 듯 했다. 갓난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온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까지 축하하고 기뻐해주듯 말이다.
닭장 안은 지금 병아리 한 마리가 온 우주의 중심이 된 듯하다. 신혼부부 집에 갓난 아이가 태어나면 온통 그 아이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듯 말이다.
아이가 엄마 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평화롭듯이 닭장 속의 병아리도 엄마 품만 졸졸 따라다닌다. 하지만 다른 어른 닭들 또한 주변에서 그 병아리를 지켜봐주고 격려해주고 있고, 어쩌면 그래서 더 녀석이 잘 크지 않나 싶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엄마와 갓난아이를 지켜보는 듯 흐뭇하다.
그렇구나, 닭장 안의 세계도 사람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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