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의 콧수염, 활 쏘는 여성들…일제강점기 '희귀사진' 첫 공개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은 직후인 1945년 9월, 백범 김구는 희끗희끗한 콧수염을 기른 모습이다. 익숙한 동그란 뿔테 안경은 그대로지만, 이마에 패인 주름과 거친 피부에서 당시 69세의 그가 겪어온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대만의 사진 수집·출판 전문가인 쉬충마오(66·徐宗懋)의 사진집『당신이 보지 못한 희귀 사진』(총 3권)에 수록된 사진 중 하나다.
이달 말 출간되는 사진집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격동기를 겪은 한국에서 촬영된 사진 390여장이 실렸다. 제목이 의미하듯 국내 최초 공개되거나 낯선 모습의 희귀 사진들이 다수다. 옛 도시 사진을 모은 제1권(‘한양 그리고 도시’)에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평양성 자락 을밀대를 비롯해 평양 대동문 앞 거리, 한양과 개성 거리를 찍은 사진들이 선명한 컬러로 복원됐다. 서민의 생활상을 담은 제2권(‘전통과 사람들’)에선 조선 여성들의 활쏘기 장면이나 김장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인상적이다.
제3권(‘망국과 광복’)은 항일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희귀 사진이 실려 역사적 가치가 크다. 김구의 사진을 비롯해 1904년 항일운동을 벌이다 일본에 체포된 김성산·이춘근·안순서의 처형장 이송 사진, 1941년 3월 1일 촬영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조소앙·신인희·김원봉의 단체사진 등이 담겨 있다.
사진을 수집한 쉬충마오는 1985년 대만의 주요 신문사 중 하나인 '중국시보'의 국제특파원으로 시작해 20년간 세계 각지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를 취재하다 총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한다. 기자를 그만두고, 한국·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적인 사진을 모아 출판하는 활동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0월에는 대만 타이베이에 서점 겸 박물관 ‘서방’을 열고 그간 모은 희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그는 “사진집이 아닌 역사책을 내고픈 마음으로 작업했다”면서 “구한말에서 해방 전후 한국의 역사는 모든 동아시아 정세와 연결돼 있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대만인이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사진을 수집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재능은 사진으로 사람들에게 얘기를 전하는 것”이라면서 “한국 독자들은 저자가 누구인지는 관심이 없겠지만, 이 책 만큼은 보는 순간 누구든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제강점기 사진들은 주로 일본인 사진작가들이 찍은 것을 일본 내 고서점이나 옥션(경매) 등 발품을 팔아가며 확보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진은 중국 국민당에서 보관해 온 것을 수집했다. 사진을 컬러로 복원한 이유에 대해 쉬충마오는“일반적인 사진이라면 흑백도 괜찮지만, 역사를 말할 땐 흑백이 되어선 안 된다. 역사를 더 잘 인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닌 실제 있었던 일 또는 나의 역사의 일부라고 느껴야 하기 때문에 컬러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출판사 서해문집 김흥식 대표는 “(수집된 사진은) 역사적 도시의 외형만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근대사의 여정에서 겪은 기쁨과 슬픔을 보여준다”면서 “특히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한 소명에서 비롯한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쉬충마오 선생님이 미국 국가기록보관소에서 확보한 한국전쟁 관련 사진들을 작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전쟁 사진은 미군·유엔군 측에서 제공한 사진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 확보한 사진은 중국·북한 측에서 찍은 것들이 태반이라 매우 흥미롭다”며 향후 출간 계획을 밝혔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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